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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풍경화 - 홍미숙

Joyfule 2015. 3. 16. 20:36

창밖의 풍경

 

살아있는 풍경화 - 홍미숙

딸아이의 책상 앞에 앉아 구도를 잡아 본다. 제법이다. 하늘 밑으로 소나무들이 간간이 보이고, 그 밑으로는 아카시아 숲이 보인다. 그리고 담에서 떨어질세라 찰싹 붙어 있는 담쟁이 넝쿨이 화폭 안으로 들어온다. 오늘은 초록색 물감만 있으면 풍경화가 완성될 것 같다.

6월 초하룻날이다. 성하의 계절로 접어들고 있다. 내 몸까지 푸른 물이 들을 것 같다. 온 산과 들이 푸른 물결이다. 아직은 신록들이 연초록 색을 띠고 있다. 심호흡이 절로 나온다. 삼림욕하기에도 좋은 계절이다.

울긋불긋 꽃들의 모습을 그릴 수 있는 봄도 아름답고, 알록달록 단풍들의 모습을 그릴 수 있는 가을도 아름답고, 희끗희끗한 설경을 그려낼 수 있는 겨울도 아름답지만 푸르름의 계절 여름도 아름답다. 여름은 편안한 색의 계절이다. 모두가 푸르르니 넉넉해 보여 좋다. 시기· 질투가 필요 없는 계절로 욕심 없는 계절이 여름이기도 하다. 나도 푸르고, 너도 푸르니 그렇다. 마음마저도 깨끗하게 씻겨지는 것 같아 좋다.

평화를 나타내는 색도 그린 색이다. 그래서 그런지 여름의 초입 6월이 오면 기분이 상쾌해지고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푸른 숲 속의 새처럼 자유로워진다. 황사바람도, 꽃가루도 잠잠해지고, 꽃잎이 휘날릴 즈음이면 숲은 더욱 푸른빛으로 변해간다. 바로 엽록소들이 바쁜 계절이다. 태양과 한 몸이 된다. 그러면서 나무들은 점점 울창한 숲을 만들어 간다. 모두를 제압할 것처럼 울울창창 벋어 간다.

논·밭에 뿌린 씨앗들도 튼실한 열매를 맺기 위해 쑥쑥 자라난다. 나무들 못지 않게 잘 커 간다. 논둑·밭둑의 잡풀들도 제철을 만나 하루가 다르게 커 간다. 여기나 저기나 푸른 세상이다. 초여름에 야외에 나가보면 들판이 잘 정리된 모습을 볼 수 있다. 논에 심은 벼들이 줄을 맞추어 커 가고 있고, 밭에 심은 고추며, 마늘, 감자, 고구마, 참외, 수박, 토마토, 호박, 오이 등도 질서를 지키며 잘 자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집안 정리를 하루만 안 해도, 난리가 난 집 같듯이 논·밭도 시간 날 때마다 둘러보고 정성을 쏟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집안이 어수선한 거나 다름없다. 논·밭을 보면 그 주인의 성품을 알 수 있다. 주인이 엉성하면 논·밭도 엉성하다. 게으른 사람들의 논·밭은 그 집안사정이나 똑같을 것은 분명하다.

곡식들이 저절로 태어나 저절로 크는 게 아니다. 줄을 맞추어 씨앗을 뿌리고, 비가 안 오면 물을 뿌려주며 싹을 틔우게 하고, 씨앗이 배게 돋아나면 솎아 주어야 한다. 솎아줄 때 줄과 간격을 다시 맞추어 준다. 정성과 사랑을 먹고, 곡식들이 질서를 지키며 무럭무럭 커가는 것이다. 추수를 하기까지 농부들의 손이 수도 없이 간다. 그래야 거두어들이는 기쁨을 맛볼 수 있다.

나는 초여름에 농촌 들판을 거니는 것을 좋아한다. 가을 들녘은 꽉 차 보이기는 하나 왠지 부담스럽기도 하고 쓸쓸한 생각이 들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마 추수를 끝낸 텅 빈 들판이 먼저 생각나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름 들판은 희망으로 가득 차 있어서 좋다. 잘 가꾸어진 논·밭을 보면 기분이 상쾌하다. 가슴까지 벅차다. 머리 속에는 벌써부터 풍년을 맞아 추수된 곡식들이 상상된다. 그 곡식들 너머로 주름진 어머니의 얼굴이 나타난다. 70평생 농사일을 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고향 들판에 너울너울 자라고 있을 각종 곡식들도 눈에 선하다. 손이 삐뚤어지도록 밭에 풀을 뽑으며 사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어머니가 그립고, 고향의 여름 들판이 그리워진다. 바로 볼 수 없음에 아쉽다. 대신 딸아이의 창밖에 펼쳐지는 녹음들의 향연을 즐길 수 있음에 위안을 삼는다. 비록 한 쪽 창만큼의 화폭이지만 숲 속 저 너머 고향 들판의 모습도 다 그려낼 수 있다.

하루종일 매달려 있어도 좋기만 하다. 살아 움직이는 풍경을 마음껏 그릴 수 있어서다. 사실 초록색 물감도 필요 없고, 팔레트나 붓도 필요 없다. 깨끗한 마음만 있으면 그만이다. 화폭에, 넘실넘실 춤을 추는 나무들 모습과 새 소리, 그리고 내 볼을 스치는 싱그러운 바람과 고향 산천까지도 담을 수 있다. 살아있는 풍경화를 그릴 수 있는 신기한 화폭이다.

오늘따라 이름 모를 새들도 삼삼오오 화폭을 쪼아댄다. 소나무 가지에서, 아카시아 숲으로, 아니 담쟁이 넝쿨까지 내려와 날개 짓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