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열두 살 때는 - 김 학
내 나이에서 반 백년을 빼면 나는 초등학교 6학년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타임머신을 타고 훌쩍 세월의 강을 건너 뛸 수가 있다.
초등학교 6학년! 시골에서 자연과 더불어 숨쉬고, 자연과 더불어 뛰놀며, 포근한 인정 속에서 묻혀 살던 그리운 호시절이다. 여름날 추자(楸子)나무에 올라 가지에 걸터앉으면 초록 잎새 사이로 비치던 따가운 햇살이 너무 눈부셨고, 푸른 하늘에선 뭉게구름이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기어가고 있었다. 마냥 여유가 넘치던 풋풋한 시절이었다.
중학교에 진학하려고 호롱불이나 남포등 밑에서 공부를 하고 나면 그을음 때문에 콧속이 까매지곤 했었다. 눈에 띄는 토종과일들이나 하지감자와 고구마, 강냉이가 간식거리의 전부였고, 땅따먹기나 자치기, 팽이치기, 딱지치기, 탄피 따먹기, 술래잡기가 즐거운 놀이였다. 비록 가난한 시절이었지만 구김살 없이 자랄 수 있던 나의 때 묻지 않은 개구쟁이시절의 이야기다.
그 시절에는 누구네 집이 논밭을 팔았고 누구네 집이 그 논밭을 샀다는 이야기가 동네의 가장 큰 뉴스였다. 그 때는 교통이나 통신이 발달하지 않아서, 면 소재지인 우리 동네조차 버스가 들어오지 않았고, 온 동네에 전화기가 한 대도 없었다. 우리 집엔 태엽을 감아야 뎅뎅뎅 시각을 알리는 괘종시계 하나가 안방 벽에 걸려있을 따름이었다. 고작 이장네 집에 라디오 한 대가 있어서 동네 사람들이 저녁식사를 마치면 으레 그 이장네 집으로 모여들어 세상소식을 귀동냥하고, 연속극이나 음악 프로그램을 들으며 하하 호호 즐기곤 했었다.
반 백년! 참으로 긴 세월이다. 어쩌다가 그 세월을 내가 몽땅 소진해 버렸는지 모르겠다. 반 백년이면 강산이 다섯 번이나 변했을 기간이니 그 동안 우리 생활환경도 얼마나 많이 변했겠는가? 농경사회 시절의 10년과 정보화 사회 시절의 10년을 어떻게 같은 값으로 매길 수 있으랴.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의식주(衣食住) 문제만 해도 그렇다. 내 나이 열두 살 때는 옷이라야 고작 무명베로 지은 옷을 입었었다. 내가 버선 대신 무명실로 얼기설기 짠 양말을 신어본 게 중학생이 된 뒤였으니까. 여름이면 누구나 거의 삼베옷 차림이었고, 잘 사는 집안의 어른이라야 백옥 같은 모시옷을 입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린이들도 메이커가 있는 비싼 옷만 입는다. 검은 색이나 흰색 옷이 전부였던 그 때에 비기면 지금은 색깔이며 모양, 재질도 놀라우리 만치 다양해졌다.
먹을거리도 엄청난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내 나이 열두 살 때는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과 제삿날이나 되어야 겨우 고기 맛을 볼 수 있었다. 어쩌다 백년손님이라는 사위나 찾아와야 씨암탉을 잡았다. 그런데 지금은 고기 풍년이다. 오히려 건강을 생각해서 고기를 피하는 세태가 되었다.
내 나이 열두 살 때는 무엇이든지 먹고 배만 채우면 되었지만 지금은 건강을 염려하여 청정음식만 찾는다. 쇠고기는 광우병 때문에 먹지 않고, 닭이나 오리는 조류독감 때문에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게 어디 소나 닭, 오리의 책임이던가? 초식동물에게 풀 대신 육류가 섞인 사료를 먹인 사람 탓인 것을. 자연의 순리보다 편리와 이익만을 노린 인간의 업보가 아닐 수 없다. 어디 그뿐이랴. 음식찌꺼기 때문에 온 나라가 골치를 앓고 있는 것도 요즘의 새로운 풍속도가 아니던가.
주거생활도 그렇다. 내 나이 열두 살 때는 초가집 아니면 기와집이 고작이었다. 큰 동네라고 해도 기와집은 몇 채 되지 않았다. 겨울이면 아궁이에 불을 지펴 따뜻한 방 아랫목에서 식구들이 오순도순 살았고, 여름이면 대청 마루바닥에서 살랑살랑 부채질이나 하면 되었다. 선풍기나 에어컨이란 말조차도 없었다.
요즘 도시는 말할 필요도 없고 시골까지도 아파트가 들어섰다. 그 아파트도 5층은 점차 사라지고 고층 아파트가 날로 늘어간다. 사람 사는 집이 태산보다 더 높아져 하늘을 찌른다. 하늘이 두려움을 느낄 만도 하게 되었다. 사람이 고층 아파트에서 살려니 엘리베이터는 기본이고, 아파트 현관문을 밀치고 들어서면 텔레비전, 에어컨, 냉장고, 세탁기, 전기밥솥 등 가전제품이 즐비하게 전시되어있다. 놀라우리만큼 달라진 우리네 생활환경이다. 내 나이 열두 살 때는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다.
버스조차 들어오지 않던 시골에서 자란 내가 승용차를 몰고 다니고, 전화기 한 대 없던 시골출신인 우리 가족들이 저마다 핸드폰을 휴대하고 다니는 세상이 되었다. 연필심에 침을 발라가며 잡기장에 글씨를 쓰던 내가 만년필을 거쳐 볼펜을 사용하고, 마침내 컴퓨터로 글을 쓰는 세상이 되었다. 집안의 우물에서 바가지로 멋대로 냉수를 떠서 벌컥벌컥 마시던 내가 조심스럽게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 마시게 되었으니 이걸 일러 팔자가 늘어졌다고 해야 할 지…….
반 백년이란 세월은 엄청난 변화를 몰고 왔다. 지금도 어느 구석에선 과학자들이 무엇인가 새롭고 편리한 기기를 발명하거나 개선하려고 땀을 흘리며 밤샘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추세로 나간다면 앞으로 반 백년 뒤에는 또 얼마나 세상이 더 달라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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