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수 한 사발 - 이정아
오래 전 무르익은 여름에 식구들이 무창포로 휴가를 갔었다.
가족끼리의 휴가는 이것이 유일하다 싶을 정도로 다른 건 기억에 없다.
남자 친구를 사귀면 무조건 데려오라는 아버지 말을 믿고 남자 친구와 여행도 보내주려니 하였는데 아버지가 보시곤 허락을 안 하셨다.
대천으로 가기로 덜컥 약속하고 승인을 받으러 갔는데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어린 딸을 둔 당연한 아버지의 거절이었는데 그땐 야속하기만 하였다.)
부어터진 대학생 딸을 달래고자 나선 휴가였던 듯하다.
민물낚시만 다니시던 아버지가 바닷가로 휴가를 가시기로 정 한것은.
아버지가 낚시 갔을 때 알게 된 서산근처의 민박집 주인은 아버지로부터 약간의 도움을 받아 어려운 처지를 면하자,
아버지를‘정의의 사또’라고 지칭한 편지를 보내와서 우리식구 모두를 뒤집어 지게 한 분이었다.
마침 자기 집에서 유하면 영광이겠다는 편지를 보내온 터였다.
그때만 해도 개발이 덜된 무창포에서 조기 비슷한 생선도 잡고 그 당시 유행이었던 비키니 수영복 입고(에그머니나^^)
증명사진도 찍은 후 서산으로 향하였다.
그러니 말이 무창포 휴가이지 서산에서 지낸 휴가가 더 길었다.
그 댁에서는 사또와 그 일행을 얼마나 칙사 대접을 했는지 황송할 지경이었다.
특히 우물에 담가두었던 시원한 열무김치는 환상적이었다.
과일도 우물 안에 넣어 두었다 꺼내 주었는데 아주 시원하였다.
그 앞에서 우리엄마가 우리 집 것이 더 시원하다고...큰 냉장고에서 얼음도 나오고... 하며, 며칠 전에 새로 들인 냉장고 자랑을 하는 바람에 내 소견에도 엄마가 매우 유치하게 보인 기억이 있다.
사실 우리 엄마는 냉장고를 들이고 난 후 얼음이 채 완성되기도 전에 시원한 미수가루를 타서 집에 놀러오는 이들에게 퍼주기 바빴다.
손님뿐 아니라 야채장수 아저씨나 달걀장수 아주머니 혹은 신앙촌 메리야스를 팔러 오는 이에게도 대접하였다.
그래서 냉장고 안에는 큰 양푼으로 미수가루가 타져 있었다.
사양하면서도 마신 사람들은 아주 고마워하였다.
그 답례로 싼값에 물건을 주거나 덤을 주기도 하였지 싶다.
속으로 냉장고 자랑이 하고 싶거나 아니면 물건을 덤으로 얻으려는 잔머리 굴림으로 생각되어 엄마의 유난이 싫었다.
이사하면서 회사로 드나드는 사람이 다 보이는 자리에 책상을 놓았다.
그러자 일주일 에 한번 오는 쓰레기 청소회사의 차부터 매일 오는 우체부의 차와 도면을 배달하러오는 UPS나 Fedex의 차가
창 밖으로 보인다. 파킹장 한편에 설치한 간이 화장실을 청소하러오는 Porto San 사람도 보인다. 가끔 쓰레기통을 뒤져 깡통을 주워 가는 무숙자도 보인다. 날씨가 요즘처럼 더운 때엔 다들 고생이 많다.
그들이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이면, 나는 냉장고에 차갑게 보관 해 둔 생수 한 병을 꺼내어들고 게이트 앞에서 서성거린다.
일을 마치고 차로 돌아와 시동을 걸면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물병을 건넨다.
더위에 건네 받는 차가운 생수에 반가워하지 않는 이는 없다.
청소회사의 인부는 손가락 두 개를 흔든다
처음엔 손가락으로 브이를 표시하며 고맙다고 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두 병을 달라는 소리이다. 솔직함이 밉지가 않다.
비서인 쥬디는 화장실 청소차가 오면 창문을 닫고 출입문을 닫고 호들갑을 떤다. 아무래도 냄새가 나기에...
운동하는 이들이 건물 안 화장실까지 들어오는 것이 번거로울 것 같아 주차장에 간이 화장실을 하나 두었다.
비록 푸세식 간이 화장실이어도 소변기도 따로 있고 손 닦는 싱크도 있는 럭셔리 스타일이다.
럭셔리 하여도 냄새까지 피할 수는 없다.
그걸 소독하고 청소하는 동안 냄새를 피해 도망가지 않고 일부러 문밖에서 기다렸다 물을 건네는 내게, 화장실 아저씨는 무척이나 감격하는 눈치이다.
나이 들으면 그 냄새는 사람 사는 냄새 정도로 여겨져서 참을 만 하다.
화장실 아저씨는 페이퍼 타올 한 롤을 덤으로 반드시 주고 간다.
남들 보기엔 맞바꾸는 것 같이 보여도 실은 마음이 오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매일 아침 출근하여 냉장고에 생수병을 체크하는 것이 일과의 첫 시작이 되었다.(일 같지도 않은 일을 열심히 챙긴다)
냉수사발에 버드나무 잎은 띄우지 않아 물에 체할까 까지는 간섭 못해도....
흑인 우체부가 흰 이를 드러내며 "탱큐 스위티(sweetie)~~~" 하면 그만 물 한바가지 건네던 우물가의 동네 처녀의 마음이 되는 듯하다.
어젠 조금 선들 했다.
날이 시원해지면 냉수 말고 다른 걸 주어야하는 데...하고 미리 걱정하고 있으려니 "으히구 이 오지랖 여사야"하고 옆에서 한마디한다.
별로 닮고 싶지 않은 어머니를 내가 어느새 닮았나보다.
오지랖은 유전인가?
냉수 한사발이 가져다주는 행복. 즐거운 여름이다.
미주판 중앙일보 칼럼/이 아침에/ 8월 9일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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