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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번역사

Joyfule 2019. 7. 16. 00:58


 

     성경번역사

       Ⅱ. 성경 사본

 

 3. 성경의 출판


1) 히브리어 구약 본문의 출판(Printed Editions of the Hebrew Bible)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히브리어 구약 본문은 일찍이 15세기 말 16세기 초 사이에 인쇄되기 시작하였다.
① 최초의 인쇄본 구약은 1488년에 이탈리아의 손시노(Soncino)에서 나온 히브리어 성서이다.
② 두번째로 나온 것은 1491/93년에 네플(Naple)에서 인쇄된 히브리어 성서이고,
③ 세번째 것은 1494년 브레스키아(Brescia)에서 나온 것으로서 이 세 히브리어 성서는 모두 유대인들이 인쇄한 것이다.
④ 1514/17년에 알칼라(Acala)에서 인쇄되고 1522년경부터 유포되기 시작한「콤플루텐시안 폴리글롯」(Complutensian Polyglot)은 기독교 쪽에서 인쇄한 것이다. \'콤플루텐시안\'이라는 말은 ‘콤플루툼(Complutum, 곧 Alcala de Henar-es)’에서 인쇄된 것이기 때문에 그 곳 이름을 붙인 것이고, 여러 언어를 대조한 것이기 때문에 「폴리글롯」이라고도 부르게 되었다. 스페인의 추기경 프란시스코 지메네스(Cardinal Francisco Jimenes)의 감독 아래, 6권으로 편집되었다. 창세기를 보면, 보들리언도서관의 사본은 오른쪽에서부터 첫째 난에 히브리어 본문, 그 왼쪽 둘째 난에 라틴어역 불가타, 그 왼쪽 셋째 난에 그리스어 칠십인역, 칠십인역 각 행 위에 라틴어 번역(행간 성서처럼), 그 밑으로 넷째 난에 아람어역 타르굼, 그 오른쪽 다섯째 난에 타르굼의 라틴어역이 나온다. 히브리어, 그리스어, 아람어 그리고 세 라틴어역 모두 여섯 개의 번역이 실린 셈이다. 이것과는 대조적으로, 왈톤이 편집한 것을 보면, 제일 왼쪽 난에 히브리어 본문이 있고, 그 행간(行間)에 라틴어 번역, 둘째 난에는 라틴어역 불가타, 셋째 난에는 그리스어 칠십인역, 넷째 난에는 칠십인역의 라틴어역, 다섯째 난에는 아람어역(온켈로스의 타르굼), 여섯째 난에는 타르굼의 라틴어역, 일곱째 난에는 사마리아 오경의 본문, 여덟째 난에는 사마리아 오경 본문의 라틴어역, 아홉째 난에는 시리아어역, 열째 난에는 시리아어역의 라틴어역, 열한째 난에는 아랍어역, 열두째 난에는 아랍어역의 라틴어역이 나온다. 히브리어, 라틴어, 그리스어, 아람어, 사마리아어, 시리아어, 아랍어, 이상 일곱 개 언어로 번역된 본문을 대조시키고 라틴어 불가타를 제외한 여섯 언어의 번역마다 라틴어 번역을 병기해 준 것이다.
⑤ 이것에 이어 「랍비 성서」(Biblia Rabbinica)가 인쇄되어 나왔다. 펠릭스 프라텐시스(Felix Pratensis)가 편집하고, 베니스(Venice)에서 1516년에 다니엘 봄베르크(Daniel Bomberg)가 출판한 것이다.
⑥ 1524/25년에 베니스에서 「제2랍비 성서」가 나온다. 이것은 야곱 벤 하임 이븐 아도니아(Jacob Ben Hayyim Ibn Adoniah)가 편집한 것인데, 20세기 초까지 대표적인 히브리어 구약 성서 구실을 하였다. 「제2랍비 성서」가 마소라 주기와 본문 비평 장치 등을 제시한 것은 사실이지만, 불행하게도 후기의 사본들을 많이 사용하였으므로 원본과는 거리가 먼 절충 본문(an eclectic text)을 편집한 셈이 되고 말았다. 이것은, 매 페이지 가운데에 히브리어 본문과 아람어 타르굼이 대조되어 있고, 좌우 여백에 라쉬와 이븐 에즈라의 주석이 들어 있는 주석 성서이다.
⑦ 1866년에 영국성서공회가 발행한 「레테리스 히브리어 구약」이 있다. 이것은 메이르 할레비 레테리스(Meir Halevi Letteris: 1800∼1871)가 편집한 것이다. 레테리스 성서는 기본적으로 야곱 벤 하임 이븐 아도니아의 「제2랍비 성서」 본문을 따른 것이다.
⑧ 그 다음에 나온 것이 영국성서공회에서 발행한 크리스천 다윗 긴즈버그(Christian David Ginsburg) 편집의 히브리어 구약이다. 「긴즈버그 구약」은 1894년에 출판되어 1908년과 1926년에 부분적으로 교정된다. 이것이 우리말 「구역」과 「개역」 구약의 히브리어 대본이다. 다윗 긴즈버그는 폴란드 출신 유대인으로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이다. 「긴즈버그 구약」의 본문은 기본적으로 「제2랍비 성서」의 히브리어 본문을 따르고 있다.
⑨ 그 다음으로는 루돌프 키텔(Rudolf Kittel)이 편집한 「히브리어 성서(Biblia Hebraica)」(1909)를 들 수 있다. 키텔의 「히브리어 성서」는 처음 두 판에서 「제2랍비 성서」를 본문으로 사용하였으나, 알브레흐트 알트(Albrecht Alt)와 오토 아이스펠트(Otto Eissfeldt)가 완성한 「비블리아 헤브라이카」 제3판(1937)부터는 「레닌그라드 코덱스」(MS B19a)를 본문으로 사용하였다.
⑩ 영국성서공회가 「레테리스 구약」(1886), 「긴즈버그 구약」(1894, 1908, 1926)에 이어, 1958년에 내놓은 것이 노만 헨리 스네이드(Norman Henry Snaith)의 「히브리어 구약」이다. 이것은 위 두 히브리어 성서의 수정이나 보완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편집이다. 이것은 1482년에 리스본(Lisbon)에서 쓰여진 성서 사본 MS Or 1482인 히브리어 구약 사본(현재 영국박물관 소장), 1460년에 쓰여진 성서 사본 MS Or 2375인 「예멘 성서」, 1312년경에 쓰여진 「솀 토브 성서」(Shem Tob Bible)에 근거하여 편집한 것이다.
⑪ 키텔의 「비블리 헤브라이카」를 40년 만에 수정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내놓은 것이 「비블리아 헤브라이카 슈투트가르텐시아」(1967/77)」이다. 본문으로서는 레닌그라드 코덱스의 마소라 본문(1008년의 MS B19a)을 그대로 사용하였으나 BHK의 오기를 많이 수정해 주었고, 마소라 주기 표기에 있어서도 BHK보다 더 상세하다.
⑫ 가장 최근의 것으로서는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에서 1965년 이후부터 출판해 내고 있는 「히브리대학교 성서」(Hebrew University Bible)이다. 위에서 말한 알렙포 코덱스에 반영된 마소라 본문을 예언서에 반영하고 있다


Ⅲ. 성경번역사


1. 성경번역의 의의


1) 성경 번역의 필요성
아프리카에 있는 어느 마을 교회 포스터에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 있었다. \"당신은 오늘 성경을 읽으셨습니까?\" 그러나 마을 사람들에게 이 질문에 답하라고 한다면 80%가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성경을 읽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자기 말로 된 성경이 업소 그 밖의 다른 말로 된 성경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머지 20%에 해당되는 사람들도 그들이 알고 있는 유일한 성경이라고 해야 외부 사람들과 거래를 할 때 사용되는 교역어(trade language)로 된 성경이 고작인데, 교역어는 서로 간의 의사소통을 위해서도 잘 쓰지 않는데다가 마음을 나누기에는 전혀 불가능한 언어였다.
사람들은 문화적으로 독특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이 수많은 부족들을 대상으로 여러 가지 일들을 계속 추진해 왔지만, 여전히 많은 부족들이 자기네 말로 된 성경을 갖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번역하려고 애써야 할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근본 하나님과 본체시나 몸소 인간의 육신을 입으시고 갈릴리 해변의 어부들이 쓰던 인간의 방언으로 말씀하셨던 그리스도의 마음을 우리도 가져야 한다는 것 외에 다른 이유는 없다. 우리는 갈릴이 지방에서 쓰이던 \'아람어\'가 아니라 헬라어로 그리스도의 말씀을 번역하여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한다. 또한 우리들의 모국어로 우리의 심령에 호소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모본을 따라야 한다.
또한 인간적인 이유도 있다. 인간의 자의식은 자신의 모국어로 자유스럽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때 온전히 발달된다. 모국어 이외의 다른 언어는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의 경우에 큰 부담이 된다. 특히 선교의 사명을 가진 우리는 우리가 그들의 말을 배우기 어렵다는 이유로 의도적으로 그들이 그리스도에 대해 알기 어렵게 하는 것은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짐은 먼저 믿은 \'우리\'에게 있다. 결코 그들이 우리의 짐을 지게 해서는 안된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성경 번역의 정도는 기독교 신앙을 전파하고 확립시키는데 한 지표가 된다. 복음이 언어의 변방지역으로 퍼져감에 따라, 번역된 성경이 필요하게 되며 기독교 공동체가 성장하여 자리를 잡아갈수록 개역과 새번역의 필요성도 생겨나게 된다. 한 공동체내에 일부분이라도 자기네 말로 번역된 성경이 없을 경우에는 기독교 신앙이 어느 정도 확립되어 있다 할 지라도 별반 큰 영향력은 갖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에 관해 친해 계시하신 진리를 보존하시고 전달하시기 위해 문자로 기록하는 방법을 택하셨다. 하나님은 일반적으로 직접 말씀하시는 방법을 쓰셨지만 적어도 한번은 친히 문자로 기록하셔서 그의 뜻을 전하셨다. 또한 하나님께서 성령에 의해서 그 기록 과정에 친히 참여하셨기 때문에 그 기록된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2) 교회사적 의의
성경번역 과업의 긴박한 필요를 강조하는 주요 원칙들은 교회사를 통해서도 찾아볼 수 있다. 1,800년까지 이뤄진 개척적인 성경번역의 대부분은 이중언어를 구사하는 신자들이 자기 민족 가운데 있는 기성교회를 취해 자신의 모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예를 들면, 마틴 루터는 독일인들을 위해 성경을 번역했으며 존 위클리프는 영국 사람들을 위해 성경을 번역했다. 이 두사람의 경우 모두 자신의 모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이러한 번역이 이뤄지기까지 성경은 라틴어나 다른 외국어를 아는 사람들, 그것도 운좋게 성경 사본을 구할 수 있는 사람들만이 읽을 수 있는 것이었다. 단적으로 말해서 성경은 교회지도자들만을 위한 책이었다.
근대 선교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외부에서 들어간 선교사들이 자신의 사역의 한 부분으로 성경번역에 착수했다. 때로는 교회를 개척하기 위한 기초작업으로 일찍부터 성경을 번역하기도 했다. 성경번역이 개척 선교사들의 사역으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19세기 선교사역의 급속한 확장과 더불어 전세계를 휩쓸게 되었다.
그렇지만 모든 선교단체들이 선교지 사람들을 위해 성경을 번역하는 것은 아니다. 신자들의 좌석이나 강단에 모국어로 된 성경을 놓지 못하는 교회의 수는 아직도 많은 형편이다. 따라서 자기 민족을 위하여 처음으로 모국어 성경을 번역해 줄 제2, 제3의 위클리프와 루터가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2. 성경번역의 역사 구분


성경 번역의 역사는 크게 세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제1기는 기원전 3세기경 구약 성경이 희랍어로 번역된 일로 시작하여, 성경이 고대의 언어들로 번역된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신약의 정경이 완성되고 복음이 계속 전파되면서 시리아어, 구르지아어, 콥트어, 고딕어, 슬라브어, 라틴어 번역본들이 등장했다. 15세기 중엽까지 모두 33개의 언어로 성경이 번역되었다.
제2기는 르네상스와 종교개혁과 때를 같이하여 성경이 유럽의 주요 언어들 즉, 영어, 독어, 불어, 스페인어, 포르투칼어, 체코어, 헝가리어 등으로 번역된 시기이다. 새로 발명된 인쇄술이 성경 인쇄에 곧바로 사용되어, 신앙과 생활의 모든 문제들에 대한 최종적인 권위로서의 성경을 평민들로 직접 가질 수 있게 되었다. 18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성경이 번역된 언어의 수가 34개 늘었다.
제3기는 미주(美洲), 아시아, 아프리카에 교역의 문을 연 유럽 탐험가들의 등장에 뒤이은 근대 선교와 같이하여 선교사들에 의해 많은 언어로 성경이 번역된 시기이다. 그들은 문자가 없는 언어를 배워야 함은 물론, 각 언어의 문자까지도 고안해내야 했다. 이 시기는 인도에서 34개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 출판한 윌리암 캐리(William Carey)와 세람포르 삼인조(Serampore trio)의 기념비적인 업적으로 첫발을 내딛게 된다. 또한 이때 성서공회 운동도 활기를 띠어 성서공회가 성경의 출판과 보급을 담당해줌으로써, 온 세계 선교사들이 성경 번역에 더욱 힘을 쏟을 수 있었다. 최근 175년 동안 성경은 무려 1,50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그 중 1/3은 마지막 25년 사이에 이루어졌다. 오늘날에는 평균 14일마다 하나 꼴로 성경이 새로운 언어로 출판되고 있다.

 
3. 시대사적으로 본 번역성경


신약이 쓰여지던 무렵, 지중해 동반부에서는 코이네 그리스어가 통용되었으나, 다른 곳에서는 다른 언어가 사용되고 있었다. 로마가 지배 세력으로 군림하였을 때, 북아프리카, 소아시아, 갈리아(일명 골), 스페인 등에서는 라틴어가 새 언어로 등장하였다(3세기경). 그리하여 고대 라틴어 곧 이탈라(Itala) 번역 신약이 나오기 시작한다. 신약성서의 경우, 제롬이 고대 라틴어역과 그리스어 사본들을 참고하면서 라틴어 복음서 개정 작업을 했다. 4세기에는 신약전서 라틴어 번역 불가타가 나온다.


1)아람어 타르굼 (The Aramaic Targum)
기원전 5, 6세기경부터 페르시아 제국에서 아람어가 공식 언어로 사용되고, 팔레스타인 유대 사회와 디아스포라(여러 나라로 흩어진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아람어를 쓰게 되자, 유대인 회당에서는 예배 때에 ‘통역자(메투르게만, meturgeman)’가 등장하여 낭독되는 율법서와 예언서에 관련된 본문 등을 히브리어에서 아람어로 통역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구두로 통역되고 전승되던 것이, 후대에 이르러서는 통역 내용이 일정한 형식으로 굳어지게 되고 드디어 그것이 기록으로 정착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타르굼이다. 

 
2) 칠십인역
알렉산드리아에서 처음으로 번역된 칠십인역이란 기원전 3세기 중엽에 번역된 구약의 오경 곧 율법서 부분을 일컫는다. 히브리어 구약성서가 모두 그리스어로 번역되기까지는 그 후 한 세기 이상이 걸렸다고 본다. 기원전 1세기까지는 번역이 완료되었으리라고 본다. 이렇게 하여 칠십인역 성서는, 한편으로는 유대교를 이방 세계에 알리는 통로가 되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기독교의 전파에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제일 먼저 인쇄된 칠십인역은 「여러 말 대조 성서(Complutensian Polyglot (1514∼17)」이다. 이것이 1522년에야 비로소 유포되었으므로, 1518년에 베니스에서 나온 알다인판(the Aldine edition)이 실제로는 맨 처음에 나온 인쇄본이라고 할 수 있다. 1587년에 로마에서 나온 식스타인(Pope Sixtus V)판이 있고, 19세기와 20세기에 들어서서 여러 가지 비평적 편집본들이 나왔다.


3) 오리겐의 여섯 본문 대조 성서(Origen\'s Hexapla)
여러 가지 상이한 번역판을 갖게 된 기원후 3세기에 이르러서는 성서 본문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가 빚는 혼란을 함께 감당해야만 했다. 기원후 230∼240년경에 가이사랴에서 활동을 하던 알렉산드리아의 신학자 오리겐(Origen)이 「여섯 본문 대조 성서(Hexapla)」를 편집하였다. 서로 다른 여섯 개의 본문을 대조해 놓은 이 성경에서 오리겐의 주요 관심은 다섯째 난의 칠십인역이었다. 그는 칠십인역 본문을 히브리어 본문과 비교하여, 히브리어 본문에는 없는데 칠십인역에만 있는 첨가된 본문에는 앞과 뒤에 의구표(疑句標)를 하였고, 히브리어 본문에는 있는데 칠십인역에 그 본문이 번역되어 있지 않는 곳에서는, 다른 그리스어 번역에서 그 부분을 가져와서 칠십인역에 삽입시키고 앞뒤에 의구표를 붙여 놓았다. 의구표란 고사본의 의심스러운 본문이나 재생시킨 본문을 표시하던 단검표(+)나 마이너스표(-)나 나누기표(÷)나 별표(*) 등을 일컫는다. 헥사플라의 원본은 600년 경까지는 존속되었던 것 같으나, 오늘날에는 단편만 남아 있다.


4) 고대 라틴어 역본(The Old Latin Translations)
기원후 2세기 중엽에 라틴어역 구약성서가 북아프리카와 갈리아(Gaul)지방에 유포되고, 3세기 초에는 로마에서도 유포된 흔적이 있다. 아프리카의 로마 점령지에 살던 라틴어를 쓰던 유대인들이 번역한 것을 기독교가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있다. 원본도 히브리어가 아니고 그리스어역이다. 고대 라틴어 역본은 ‘라틴어 옷을 입은 칠십인역(the Septuagint in Latin clothing)’이라고(J. Ziegler) 할 수 있을 정도로 칠십인역과 관계가 있다. 

 
5) 라틴어 불가타(The Vulgate)
신학적 토론과 예배 의식에서 사용할 통일된 본문이 필요하게 되자, 다마수스가 제롬(Jerome, 일명 유세비우스 히에로니무스, Eusebius Hieronymus)에게 성서 번역을 맡긴다. 제롬은 라틴어와 히브리어 실력을 고루 갖춘 기독교인 성서학자로 알려져 있다. 제롬은 성서를 히브리어 원문에서 직접 라틴어로 번역하였다. 390년에 시작하여 405년에 끝냈다. 그러나 이미 서방 교회 안에서는 그리스어 칠십인역이 굳게 자리를 잡고 있었으므로, 제롬의 라틴어역은 처음에는 교회 안에서 정착하기가 어려웠다. 더우기 제롬의 라틴어 번역은 칠십인역의 내용과도 다르고 고대 라틴어역과도 다른 곳이 많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읽어오던 본문과 다르다고 하여서, 오히려 그의 라틴어역의 권위가 도전을 받았다. 어거스틴 같은 지도자는 제롬의 라틴어역 성서가 그리스 교회와 라틴 교회를 갈라지게 할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제롬의 새 라틴어역의 우수성이 인정을 받게 되기까지는 많은 세월이 걸렸다. 8세기에 가서야 비로소 그의 번역은 \'라틴어 불가타(라틴어 보통말 번역)\'가 되어서, 종교개혁 때까지 서방 교회의 성서로 자리를 잡는다. 1546년 트렌트 회의에서 「불가타」를 공인함으로써 개정본의 필요성이 더 절실해졌고, 거기에다가 15세기 중엽부터 발달된 인쇄술은 번역 본문을 정착시키는 데 큰 공헌을 한다. 교황 클레멘트 8세가 1592년에 새 개정판을 간행한다. 이것이 로마 교회의 공인 「불가타」가 된다. 

 
6) 페쉬타 역본(The Peshitta Version)
시리아 교회가 가지고 있던 시리아어역 성서는 일명 \'페쉬타(Peshitta: 단순한 번역)\'라고도 알려져 있다.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 누가 언제 번역했는지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이 번역은 본래 기원후 1세기경에 번역된 것으로 알려져 있고, 메소포타미아의 아리아베네(Ariabene) 지역에 있던 유대인 사회에서 번역하여 사용한 것 같다. 현존하는 「페쉬타」 사본 중 가장 오래된 것은 442년에 나온 것이다. 완전한 네 벌의 코덱스는 5세기부터 12세기 때의 것이다.


7) 아랍어 역본(The Arabic Versions)
최초의 것으로서 가장 중요한 역본은 사아디아 벤 요셉(Sadia ben Joseph 892-942)이 번역한 것으로 히브리어에서 번역되고, 히브리어 글자로 쓰여진 아랍어 역본이다. 이 번역은 이집트의 기독교인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아부 알-하산(Abu al-Hasan)이 이것을 대본으로 하여 오경을 번역하였으며, 11∼12세기에 아랍어역 사마리아 오경으로 받아들여졌다. 또 다른 아랍어역 사마리아 오경은 아부 사이드(Abu Said)가 13세기에 번역한 것이다. 히브리어에서 번역된 다른 여러 번역들 중에 10세기에 야핏 이븐 알리(Yaphith ibn Ali)가 번역한 것이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이다.
946년에 스페인 코르도바의 기독교인이었던 발라드 케즈의 아들 이삭(Isaac son of Velasquez)이 복음서를 라틴어에서 번역하였다. 아랍어역 신·구약 전서 사본으로는 16세기에 번역된 것이 레닌그라드에 보관되어 있다. 파리와 런던에 있는 19세기의 것인 「여러 언어 성서(Polyglots)」에 아랍어역이 보존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아랍어역 사본들은 히브리어에서 번역된 것들과, 그리스어에서 번역된 것과, 시리아어와 콥트어와 라틴어 중에서 번역된 것 등이 함께 전해져 오기 때문에 번역판들마다 큰 차이를 보인다. 19세기와 20세기에 개신교와 가톨릭이 번역한 현대 아랍어역들이 있다. 

 
8) 페쉬타 시리아역
시리아의 에뎃사와 서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라틴어나 그리스어가 사용되지 않고, 시리아어(아람어와 관련된 셈어 중 하나)가 사용되고 있었다. 2세기에 나온 「디아테사론(Diatessaron)」의 원어는 시리아어였을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고대 시리아어역 사본은 단편만 남아 있다. 「페쉬타(쉬운 보통말) 시리아어역」은 4세기에 이루어진 번역이다. 신약 27권 중 22권이 들어 있는데 번역 본문이 잘 보존되어 있다. 필록세니아판(Philoxenian)과 하클리판(Harclean)은 6∼7세기의 것으로서 신약 27권이 다 들어 있다. 팔레스타인 시리아어역(Palestinian Syriac)은 5세기에 번역된 것이지만 지금은 11∼12세기의 성구집을 통해서 알려져 있을 뿐이다.


9) 이집트의 역본들
이집트에서는 3∼6세기에 콥트어 번역이 나왔다. 남쪽(상 에집트)에서는 사히딕역이, 북쪽 (하 이집트)에서는 보하이릭역이 나왔다. 둘 다 그리스어에서 번역된 엄격한 직역이다.


10) 기타
고트어역은 4세기에 선교사 울필라스(Ulfilas)가 그리스어역에서 번역한 것이다. 5세기의 아르메니아어역은 시리아어역에서 거듭 번역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리스어 본문에서 번역되었을 가능성도 지적되고 있다. 아르메니아 번역이 4∼5세기에 나온다. 5세기에는 조지아역이 나오고, 6세기에는 누비아역이 나온다. 6∼7세기에는 에티오피아역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