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이한규목사

성공하는 사람들의 공통분모

Joyfule 2008. 6. 11. 00:37


성공하는 사람들의 공통분모
이사야 58장 9-14절

< 하나님이 준비하신 성공 >

영화사에서 일하는 한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 영화사의 보조 안내원이었습니다. 그래서 파트타임으로 바쁠 때만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아주 신실했습니다. 항상 약속을 잘 지키고, 미소를 짓고, 맡은 일을 잘해서 1년 만에 정식 직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승진의 기회가 생기면 그녀가 항상 승진 1순위가 되었습니다. 결국 그녀는 입사 6년 만에 그 회사의 부사장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준비되기만 하면 그런 축복의 때가 얼마든지 우리에게도 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위대한 축복을 우리의 미래에 준비해 두셨습니다. 그 축복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모르지만 우리가 믿음 안에 있고 최선을 다하면 조만간 우리도 하나님이 마련하신 축복의 장으로 들어가는 체험을 할 것입니다.

< 성공하는 사람들의 공통분모 >

이제 보조 안내원에서 머물지 말고 부사장을 꿈꾸십시오. 그리고 더욱 찬란한 꿈을 꾸십시오. 그처럼 성공해서 그 성공의 열매를 많은 사람들에게 나눠주십시오. 어떻게 해야 성공하게 될까요?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어떤 공통분모가 있을까요?

1. 긍정적인 태도

본문 9절 하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복된 삶을 살려면 남에게 손가락질하고 남을 탓하면서 살지 말아야 합니다. 성공적인 사람들은 대개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힘든 일이 있어도 꿈과 비전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런 끈기가 있어야 합니다.

재능과 실력은 조금 부족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끈기는 꼭 있어야 합니다. 모든 것이 다 떨어지고 끊어져도 끈질기게 매달리면 축복의 때는 오지만 조금 문제가 생겼다고 툭 끊어지면 그 다음 단계의 축복은 없습니다. 자세히 보면 공부 잘하는 것도 머리 때문이 아니라 끈기 때문이고, 성공에서도 머리보다 끈기가 더 중요합니다. 아이작 뉴톤은 자신의 성과가 자신의 재능 때문이 아니라 끈질긴 관심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누가 성공합니까? 끈기 있는 사람입니다. 성공적인 사람들은 예배도 끈기 있게 나옵니다. 그처럼 좋은 일은 끊임없이 습관화시켜야 합니다. 반짝 끊는 것과 반짝 잘하는 것은 누구도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고 싶지 않을 때도 해야 할 일이라면 끈기 있게 하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를 가지는 것입니다.

특히 말을 긍정적으로 해야 합니다. 본문 9절 말씀을 보면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라고 말씀합니다. 인생을 패배적으로 사는 사람은 언제나 부정적이고 비판적입니다. 살다 보면 실망할 때도 있습니다. 그때 부정적인 말을 하면 실망이 더 커집니다. 그러나 그때 긍정적인 말을 하면 희망이 더 커집니다. 그리고 현실도 긍정적인 말을 따라 펼쳐질 것입니다.

무엇보다 긍정적인 자기 독백을 잘해야 합니다. 남이 못생겼다고 해도 자신이 자신을 존중하면 그런 말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때는 스스로 긍정적인 말을 해주십시오. “저런 말에 흔들리지 말자!” 반면에 성공한 사람을 보면 비판보다는 도전이 되는 자기 독백을 하십시오. “그의 성공을 시기하지 말자! 나도 그의 장점을 잘 배우고 활용하자!” 그처럼 긍정적인 자기 독백을 통해 마음을 키우면 축복의 크기도 커질 것입니다.

2. 이웃 사랑

본문 10-11절 말씀을 보십시오.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와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이 말씀은 이웃을 사랑하면 자신의 영혼에 기쁨이 샘이 넘친다는 말씀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 삶이 공허하다면 즉시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혹시 나만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내게 이웃 사랑이 부족했구나!” 그런 깨달음과 함께 새로운 헌신을 작정해야 합니다. 성도는 패자의식에서 벗어나서 항상 기뻐하고, 또한 그 기쁨이 이웃에게 넘치게 해야 합니다. 삶이 어두우면 실패 가능성이 현저하게 높아지고 기쁘게 살면 성공 가능성은 현저하게 높아집니다.

이제까지의 삶을 뒤돌아보십시오. 기쁘게 살 때는 인생에 진보가 있었지만 근심에 젖어 살았을 때는 여지없이 인생이 후퇴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고난이 있어도 인생이 다 끝난 것처럼 시들하게 살지 말고 “내가 매일 기쁘게 순례의 길 행함은...”이라고 기쁘게 찬송하면서 사십시오. 그런 기쁨이 어디에서 옵니까? 대개 남을 행복하게 할 때 옵니다. 사람은 드리고 나누고 베풀 때 행복을 알게 되고, 그런 행복한 사람에게 성공도 주어집니다.

3. 사명적인 땀

본문 12절 말씀을 보십시오.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성공하는 사람들은 황폐한 땅을 다시 세우고, 기초를 쌓고, 무너진 곳을 수리하고, 길을 만들겠다는 구체적인 목표와 사명감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목표와 사명을 따라 열심히 땀을 흘립니다.

가끔 땀이 없이 성공하는 경우도 있지만 성도들은 그런 행운을 바라지 말아야 합니다. 땀이 없는 꿈은 허망한 꿈입니다. 그런 꿈에서는 빨리 깨야 합니다. 영어로 ‘행복하다(happy)’란 말은 ‘행운(hap)’이라는 말에서 나왔지만 사실은 행운만 바라면 행복은 없습니다. 성도는 아예 땀이 없는 성공은 없다고 믿고 땀을 흘려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 교회가 이 점에서 많이 실수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간증합니다. “저는 열심히 기도했지만 공부를 많이 못했습니다. 그래서 입사 시험을 앞두고 많이 걱정했는데 시험 전날에 기도 중에 계시가 와서 어떤 책을 봤습니다. 그런데 그 책에서 문제가 많이 나와서 입사시험에 붙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간혹 그런 체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신앙생활이 그러면 큰 문제입니다. 그런 기적은 어쩌다가 한번 있어야 기적입니다.

어떤 농부는 매일 기도합니다. “하나님! 두더지를 동원해 밭을 갈아주세요. 그 다음에는 동남풍이 불어서 씨가 날아오게 해주세요. 그리고 제가 허리가 아파서 밭을 매지 못하니 개미들을 동원해 밭을 매주시고, 딱정벌레를 동원해 잡초들을 다 제거하소서.” 그렇게 기도하면서 풍성한 열매를 구하면 얼마나 불행한 모습입니까?

기적 중의 기적은 밭에 가서 정성스럽게 씨를 심자 거기에서 싹이 나는 것이 기적이고, 계속 정성을 다해서 그 싹을 돌보자 적당히 비가 와서 잘 자라는 것이 기적이고, 더 나아가 열심히 비료를 주고 밭을 매고 약을 뿌리니까 풍성한 열매가 생기는 것이 기적입니다. 성도가 열심히 일할 때 그 모습을 기쁘게 보시고 하나님이 일해주시고 생각을 초월해 축복을 내려주시는 것이 바로 기적입니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두더지를 동원해서 땅을 파게 하시는 것이 기적이 아닙니다. 그런 꿈에서는 하루 빨리 깨는 것이 상책입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철저히 하고 하나님이 그 모든 일에 응답해서 조화가 일어나야 진짜 은혜와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기적과 성공의 원리는 단순합니다. 즉 가만히 앉아 하나님을 종으로 삼으려고 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며 하나님의 종이 되려고 할 때 진짜 은혜와 기적과 성공은 주어집니다.

4. 주인의식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교만한 주인행세는 없지만 겸손한 주인의식이 있습니다. 그래서 늘 주인처럼 몸과 마음을 쏟아 일합니다. 주인은 힘들어도 덜 힘들게 생각하고, 피곤해도 덜 피곤하게 생각합니다. 원래 끌고 가는 사람은 피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끌려가는 사람은 피곤합니다. 그러므로 어디가든지 앞서서 헌신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 가슴을 펴고 소리치십시오. “내가 주인이다! 나는 내 인생을 멋진 작품으로 만들겠다. 최대한 능력을 발휘하자!” 실패하는 사람들은 성공하는 사람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되어야지.”라고 하는데 몸을 바치는 일에는 뛰어들지 않습니다. 반면에 성공하는 사람들은 구경꾼이 아니라 일꾼입니다. 그래서 “저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그 일에 뛰어들어 기필코 성공을 만들어냅니다.

한 재벌 회장이 있었습니다. 그는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가 6.25때 폭탄 파편에 맞아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그때 지나가던 미군에 의해 간신히 살게 되었습니다. 얼마 후 그는 12살에 한 공장에 들어가 제품 만드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항상 주인처럼 일했습니다. 손님이 와서 주인이 어디에 갔느냐고 물으면 그 12살짜리 소년이 말했습니다. “내가 주인인데요.” 그처럼 철저한 주인의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청년 때도 그 성실성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한 유대인이 그 모습에 반해서 미국 시장 개척을 맡겼습니다. 그 일도 성실하게 잘하니까 그 유대인이 말했습니다. “네가 믿는 하나님이 내가 믿는 하나님보다 낫구나!”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시장을 거의 다 줘서 지금은 그 회사가 세계에서 동종 제품에서 거의 60퍼센트 가까이 시장 점유율을 가진 회사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주인의식을 가지면 진짜 주인이 됩니다.

나중에 그가 크게 성공하고 옛날에 육이오 때 자기를 살려준 미군이 생각났습니다. 너무 오래되어서 ‘스티브’란 이름밖에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미군이 옛날에 교회를 지을 때 참여했던 것을 생각하고, 미국 펜타곤에 연락하고, 백악관에 연락하고 해서 드디어 찾았습니다. 알고 보니까 그 미군은 시골에서 작은 교회를 돌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미군을 초청해서 자기 집에 모시고 극진하게 대우해 주었습니다.

그 얘기를 미국 방송이 알았습니다. 그때 한미 간의 관계가 대단히 불편할 때였는데 방송을 통해 좋은 미군 병사가 소개되고, 그 병사의 은혜를 잊지 못한 한국인이 소개되면서 한미 간에 불편함도 많이 해소되고, 그 얘기를 한 영화사가 거액의 로열티를 주고 사기도 했습니다. 그처럼 주인의식을 가지고 성실하게 일하고, 또한 은혜를 아는 자가 되면 대개 돈과 성공은 자연히 따라옵니다.

5. 주일성수

본문 13-14절 말씀을 보십시오.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 이 말씀은 주일성수의 축복을 약속한 말씀입니다.

주일성수는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겠다는 최소한의 기본 태도입니다. 결국 신앙생활의 기초는 주일성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안에서 성공하기를 원하면 주일성수를 하고, 이 땅에서 가장 성공적인 삶을 사신 예수님의 마음을 인격화시키고 습관화해야 합니다. 마음에 세상적인 욕심이 가득차면 성공할 수도 없고, 성공해도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미국에 빌이란 남 침례교 성도가 있었습니다. 그는 교회 다니면서 몰래 경마를 했습니다. 어느 날, 경마장에서 그가 보니까 한 관리인이 경주하는 말에 안수하며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1등으로 들어왔습니다. 그 다음 경주에서 그 관리인은 또 다른 말을 안수했습니다. 그러자 그 말이 다시 1등을 했습니다. 그 다음 경주가 되었습니다. 그때는 그 관리인이 어떤 말의 머리뿐만 아니라 말의 눈과 귀, 그리고 코까지 일일이 안수했습니다.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남은 모든 돈을 그 말에 배팅했습니다. 그런데 경주중에 그 말이 넘어져서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그처럼 잘못된 욕심을 부려서 좋은 결과가 생기는 경우는 하나도 없습니다. 성공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돈과 배경이 없거나 기회가 오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직 내 마음에 고쳐야 할 부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을 주님 중심적인 마음으로 변화시키면 오늘부터라도 새로운 변화의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6. 변화된 삶

성공하려면 변화는 불가피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변화를 거부하고 편하고 익숙한 것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더 성장하지 못하고, 우리 안에 있는 놀라운 가능성이 발휘되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냥 멈추어 서 있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익숙한 것이 우리의 가치를 떨어뜨리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변화의 새로운 장으로 들어가도록 때로는 불편한 상황도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은 신기하게 문도 여시지만 신기하게 문도 닫으십니다. 어떤 것도 우연히 일어나는 법은 없습니다. 그처럼 문이 닫힐 때 변화를 도모하면 탁월한 삶이 펼쳐지지만 변화를 거부하면 정체된 단조로운 삶을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물론 힘든 일이 생기면 이런 탄식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그러나 그때 긍정적으로 반응하십시오. 그런 어려운 상황을 변화하라는 하나님의 싸인으로 받아들이십시오. 그처럼 변화를 수용하면 우리를 힘들게 했던 역풍이 우리를 축복으로 떠미는 순풍이 될 것입니다.

현재 상황이 나빠지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비참하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변화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야 창의성도 커지고 더욱 차원 높은 축복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친구도 떠나게 하시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30년 친구가 새로운 변화를 막고 내 삶을 정체시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군가 곁을 떠나도 결코 낙심하지 마십시오. 그 아픔에는 우리를 향한 찬란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언뜻 생각하면 그 떠난 사람들이 원수처럼 행동한 것 같지만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면 그렇게 떠나주면서 변화를 도모할 수 있도록 호의를 베풀어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남과 이별로 인한 슬픔과 상처를 완전히 훅 불어 버리십시오. 그리고 다시 되돌아보지 말고 마십시오. 앞으로 전진하십시오. 그리고 찬란한 축복의 때를 향해 나가십시오. 그처럼 어떤 일이 생기면 그때가 변화의 때라고 생각하십시오.

한 개척교회가 있었습니다. 그 교회가 아픔을 당했습니다. 스스로 힘이 있다는 사람은 다 떠났습니다. 결국 연로하신 권사님과 몇 분의 성도만 남았습니다. 그들이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새롭게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 교회가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교회 중의 하나가 되었고, 그 교회를 통해서 수십 개의 교회와 기관이 생겼고, 수많은 국제사역자를 배출하고, 수많은 선교사들을 도울 수 있었습니다.

그 교회 목사님은 가는 곳마다 역설합니다. “그때 몇 분의 성도님만 남은 시련은 새로운 축복의 가능성을 높여주시려는 하나님의 조치였습니다. 그 일이 없었으면 새롭게 출발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일이 고통스런 일이었지만 하나님은 그 일의 배후에서 그 모든 상황을 지휘하고 계셨고, 보다 큰 그림을 그리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교회의 시련과 변화를 통해 큰일을 하셨습니다.”

<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십시오 >

하나님은 새로운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기고, 시련으로 떨어뜨리기도 합니다(신 32:11-12).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때 하나님이 안전한 날개로 우리를 받아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변화를 품으십시오. 그래야 축복의 영역도 넓어집니다. 변화할 줄 모르면 현재의 모습 그대로 정체됩니다.

어떤 분은 교회에 가족석이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그 가족은 대대로 그 자리에만 앉았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한 가문이 127년 동안 같은 자리에 앉기도 했다고 합니다. 또한 어떤 분은 말합니다. “옛날에는 이렇게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전 교회에서는 이렇게 했습니다.” 그러나 과거에는 과거의 것이 옳지만 현재에는 현재의 것이 옳습니다. 너무 전통에 매달리지 마십시오. 때로는 현재의 자리를 과감히 떠나야 합니다.

살다 보면 핍박도 받고, 인간관계가 깨지고 어려운 일이 생깁니다. 그때 낙심하지 말고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십시오. 하나님이 새로운 축복의 장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그때 옛날 것만 찾지 말고 옛날 친구나 옛날 상황에 너무 연연하지 마십시오. 물론 옛 친구들이 나쁜 친구들은 아니지만 시대가 달라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최고의 존재로 태어났습니다. 그 존재의 목적을 향해 새롭게 출발해야 합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예루살렘 교회가 핍박 때문에 성도가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선교의 지경이 넓혀졌습니다. 그처럼 길이 닫힐 때는 마음을 열 때입니다. 하나님은 다른 문을 열지 않으시면서 한쪽 문을 결코 닫지 않으십니다. 시련이 있어도 믿음 안에 있으면 그 시련을 통해 더 좋은 일, 더 감격스런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꿈은 우리의 꿈보다 훨씬 큽니다. 문이 닫힌다면 새로운 문을 열어주시려고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이제까지의 삶을 보십시오. 시련의 때는 힘들었지만 그 시련으로 새로운 축복의 장으로 들어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사람들은 문이 열리는 것을 좋아하지만 때로는 문이 닫히는 것이 더 좋을 때도 많습니다. 왜냐하면 문이 열리면 현재의 모습에서 만족하며 지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문을 닫으시는 이유는 옛날의 삶으로 되돌아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뜻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했을 때 애굽 군대가 뒤쫓아 왔습니다. 그 시련은 무엇을 뜻합니까? 이제 애굽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되돌아갈 문이 닫힌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의도로 문을 닫으시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시련이 있을 때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작하고, 새로운 곳을 찾으십시오. 그러면 이제까지 알지 못했던 재능과 달란트가 있음을 깨닫고, 새로운 축복의 기회도 생길 것입니다.

어느 가정에 스쿠터란 이름의 한 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정이 생겨서 약 16킬로미터 떨어져 사는 친구에게 주었습니다. 그 친구의 집은 28에이커나 되는 집이었기 때문에 개가 마음껏 뛰놀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6개월 후에 그 개가 옛 주인의 집으로 어떻게 길을 알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항상 있었던 차고 안의 작은 개집으로 들어갔습니다. 28에이커의 너른 농장은 놔두고 차고 안의 작은 개집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지금도 그 스쿠터처럼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훨씬 좋은 곳에 있는데 과거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너무 과거만 좋아하면 하나님께서 더 이상 돌아가지 못하도록 인생의 문을 닫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변화를 도모하십시오. 새로운 축복의 세계가 우리 앞에 있습니다. 옛날에 대해 너무 많이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문이 닫히는 것은 새로운 곳으로 나가라는 하나님의 은혜의 표시입니다.

하나님께서 보금자리를 흔드시는 이유는 새롭게 날라는 뜻입니다. 그때 상처를 받지 말고 새로운 것을 향해 나가십시오. 매일 새로운 흥분과 기대를 가지고 일어서십시오. 그 변화를 기쁘게 창조적으로 받아들이면 반드시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새로운 일을 하시고 그 새로운 환경은 옛날의 환경보다 훨씬 좋을 것입니다. 항상 새 일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모시고 새롭게 변화된 나를 만들어가며 새로운 축복을 얻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