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이한규목사

성공적인 삶을 사는 길

Joyfule 2008. 6. 10. 04:25


성공적인 삶을 사는 길

잠언 24장 16-22절

< 삶의 여유를 찾으십시오 >

살다 보면 실패의 순간을 잘 다스리지 못하고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파멸적인 사람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자신이 당한 어떤 문제를 인생 전체가 걸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인생의 일부이지 전부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문제가 있어도 인생이 끝장났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한 가지 일에 자신의 전 인생을 겁니다. 도박하는 사람을 보십시오. 화투 한 장에 전 인생을 겁니다. 가끔 보면 입시에 떨어져 자살하는 학생을 봅니다. 왜 대학입시 가지고 아까운 생명을 버립니까? 그것을 인생의 전부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업이 부도나서 자살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사업이 중요해도 사업이 인생의 전부는 아닙니다. 인생에는 더 중요한 것도 많습니다.

가끔 정조를 유린당해서 자기 인생이 끝장났다고 자살하는 여자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정조가 소중해도 생명과는 비길 수 없습니다. 그저 개한테 한번 물렸다고 생각하고 툭툭 털고 일어설 줄 아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처럼 한 가지 일에 전 생명과 운명을 걸 필요는 없습니다.

셋째,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너무 지나칩니다. 물론 적절한 자부심은 필요하지만 착각이 지나치면 안 됩니다. 그런 착각은 어떤 일에 대한 실패를 인생의 실패라고 생각하고 그 실패를 못견뎌하고, 좌절하고, 정신이 병들게 됩니다. 그러므로 건강한 정신을 가지려면 실패에 직면하려는 삶의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사람은 가정생활에서도 실패할 수 있고, 사업에서도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실망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실패했는데 실망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충분히 가능합니다. 평소에 관심의 세계를 넓히고, 최선이 안되면 차선을 선택하고, 차선도 안되면 차차선의 선택을 하면 됩니다. 이 길이 막히면 저 길로 가면 됩니다. 주님은 시련을 통해 새로운 길로 인도하실 때도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평소에 관심의 세계가 가정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가정에 어려움이 생기면 인생이 다 끝난 것처럼 실망합니다. 어떤 사람은 평소에 관심의 세계가 남편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얼굴을 조금만 찌푸려도 인생이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지혜롭게 관심의 영역을 넓힐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이치가 똑같습니다. 왜 어떤 사람은 사업에 대해 실망을 잘합니까? 관심의 세계가 사업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왜 어떤 사람은 친구에게 실망을 잘합니까? 그 친구가 내 인생의 전부처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친구 아니면 다른 친구도 얼마든지 있고, 새로 또 친구를 사귀면 됩니다.

이제 삶의 여유를 찾으십시오. 자신이 추구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되, 잘 안될 때는 다른 새로운 길을 찾으면 됩니다. 꿩을 못 잡으면 대신에 닭이라도 잡으면 됩니다. 한쪽 세계만 보면 길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절망적이지만, 보는 세계만 넓히면 수많은 희망적인 길이 보입니다. 그처럼 보는 세계를 넓히고 삶의 여유를 기르면 큰 실패에도 실망하지 않게 되고 주기적인 우울증상도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습니다.

< 성공적인 삶을 사는 길 >

살면서 성공을 추구하십시오. 그러나 한 가지 사실은 꼭 기억하면서 성공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것은 한 가지 성공이 전체 인생의 성공은 아니고, 한 가지 실패가 전체 인생의 실패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자세히 보면 한 가지 일에는 성공했지만 실패자처럼 사는 사람도 많고, 반대로 한 가지 일에는 실패했지만 성공자처럼 사람 사람도 많습니다. 우리는 진짜 성공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1. 실패하면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본문 16절 말씀을 보십시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 이 말씀은 의인도 넘어진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씀입니다. 그것도 한번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곱 번까지도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의인은 다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모든 일에 다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모든 일에 다 성공하는 것이 반드시 축복만은 아닙니다. 만사태평해서 망하지 않는 나라가 없듯이 모든 일에 다 성공하면 교만해져서 망하지 않을 인생은 하나도 없습니다. 진짜 성공은 만사가 성공해야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패 끝에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실패해도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인생을 승리하며 살려면 원(one), 투(two), 쓰리(three), 포(four), 파이브(five)의 5가지 지혜가 필요합니다. 원(one)은 “원칙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언뜻 보면 잔머리와 편법을 좋아하는 사람이 성공할 것 같지만 결국 최후 승리는 기본에 충실하고 원칙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의 것이 됩니다.

투(two)는 “투쟁하듯 살지 마라!”는 것입니다. 내 것을 조금만 포기하면 인생은 훨씬 행복한 인생이 됩니다. 쓰리(three)는 “쓰러지면 다시 일어서라!”는 것입니다. 쓰러질 때 다시 일어나야 성공으로 가는 문턱을 넘게 됩니다. 포(four)는 “포기브(forgive, 용서)하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다 부족하기에 서로 용서하며 살아야 합니다. 파이브(five)는 “파이팅(fighting)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적극적인 믿음과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실패에 지지 마십시오. 실패의 과정이 없는 성공은 없습니다. 대개 보면 실패가 없는 사람은 실패하는 사람한테 고용 당합니다. 중요한 것은 실패에 대한 반응입니다. 실패자는 실패를 자기 안으로 영접하고 주저앉습니다. 반면에 성공자는 실패를 자기 밖으로 밀어내고 다시 일어섭니다. 실패가 실패자를 만들지 않고 실패 앞에서 주저앉으니까 실패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실패해도 “나는 실패자다!”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계속 시도하십시오.

진짜 실패자는 실패가 두려워서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무엇인가 시도를 하면 실패도 합니다. 그러나 결국 그런 사람이 성공합니다. 그래서 나중에 보면 실패하는 사람이 실패하지 않는 사람을 고용하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은 실패해도 계속 시도하는 사람을 결국 쓰십니다. 그러므로 큰일을 하려면 실패를 겪을 확률이 크지만 그래도 시도해야 합니다. 실패의 땅을 지나지 않는 성공은 없습니다.

사업가들은 보통 서너 번 실패한 후에 성공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공하는 사업가들은 실패를 실패로 여기지 않습니다. 실패해서 두 걸음 후퇴하면 다시 일어나 세 걸음 전진하면 됩니다. 실패를 디딤돌로 삼으면 마침내 성공하지만 실패를 걸림돌로 여기면 계속 걸려 넘어집니다. 이제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실패에 주저앉지 마십시오. 실패해도 실패자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오늘 다시 새롭게 일어나십시오.

2. 원수를 미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17-18절 말씀을 보십시오.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드러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 여호와께서 이것을 보시고 기뻐 아니하사 그 진노를 그에게서 옮기실까 두려우니라.”

살다 보면 원수 같은 사람을 만납니다. 솔직히 말하면 원수가 망했으면 좋겠습니다. 원수가 잘못되면 마음이 시원해집니다. 일본이 잘못된다는 소리를 들으면 속이 시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마음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남의 잘못을 보고 기뻐하면 그 사람이 다음 차례로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됩니다. 원수인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원수 때문에 실패해도 원수를 미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원수를 미워하면 자기도 그 미워하는 원수처럼 됩니다. 미운 감정을 이겨낼 줄 알아야 합니다. 어차피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십니다. 행한 대로 다 갚아주십니다. 우리는 그저 씨를 뿌리는데 열중해야 합니다. 원수를 바라볼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원수를 생각하고 미워하는 시간은 1초도 아깝게 생각하고, 원수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고 자신은 미래를 향해 나가야 합니다.

옛날 중국 위나라에 계고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사사로 있을 때 한 죄인의 다리를 벤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위나라에 난이 일어나 계고가 성문 밖으로 도망칠 때, 이전에 계고에게 다리를 잘린 자가 마침 성문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가 계고에게 말했습니다. “저편의 허물어진 담을 넘어 도망가십시오.” 그때 계고가 말했습니다. “군자가 어찌 허물어진 담을 뛰어넘는단 말인가?”

문지기가 다시 말했습니다. “그럼 저쪽 구멍으로 도망가십시오.” 그러자 계고가 다시 말했습니다. “군자는 구멍으로 빠져나가는 법이 없다.” 그러자 문지기가 다시 말했습니다. “그러면 이쪽에 빈 방이 하나 있으니 그리로 들어가십시오.” 그래서 방으로 들어가 목숨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떠나면서 문지기에게 물었다. “자네는 지난 번 내가 법에 따라 자네의 다리를 잘랐는데 왜 원수를 갚지 않고 내게 세 번이나 도망갈 길을 가르쳐 주었는가?”

문지기가 말했습니다. “다리가 끊긴 것은 저의 죄 때문이었으니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저는 당신이 법과 군자의 도를 따라 행한 것을 알기 때문에 원한이 없습니다.” 얼마나 멋진 문지기입니까? 우리는 그 문지기처럼 누군가에게 크게 당했다고 할지라도 그것도 하나님의 섭리 하에 이뤄진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 사람을 미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저 자기의 할 일에 집중하면 그는 반드시 실패를 딛고 일어설 것입니다.

3. 남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19-20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는 행악자의 득의함을 인하여 분을 품지 말며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 대저 행악자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

가끔 보면 “하나님이 참 불공평하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나는 애쓰고, 수고도 많이 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데 실패하고, 반대로 아무개는 행실로나 성품이나 신앙 면에서 나보다 훨씬 못한 것 같은데 돈도 잘 벌고 성공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초반에 많이 득점했다고 해서 반드시 승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최종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그리고 천국에 가서 어떻게 보상을 받고 영원히 어떻게 사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모습으로 비교해서 자신감을 잃지 마십시오. 사람은 수십 번도 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기회는 옵니다. 때로는 지금 못나 보이는 것이 나중에는 자랑거리가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저는 사춘기 때 저의 외모가 너무 싫었습니다. 눈은 작고, 얼굴은 운동을 좋아해서 햇볕에 그을려 시커멓고, 키도 작고, 한때 여드름도 심해서 아무리 겉으로는 자신감 있게 살려고 해도 속으로는 열등감이 컸습니다. 남자로서 싸움도 잘했고, 체력장은 던지기만 빼고 전 종목에서 거의 탑이었고, 공부도 좀 했지만 항상 이면에는 외모 콤플렉스가 있었습니다.

그 후 세월이 흘러 미국에서 신학교 다닐 때, 여학생들 중에 저에게 호감을 보인 학생들이 몇 명 있었습니다. 그 중에 캐씨 맹이란 독일계 여학생은 6개월 동안 매일 저의 새벽기도를 따라 다녔습니다. 아침에 한인들이 모이는 새벽기도에 가려고 5시 45분쯤 기숙사를 나서면 매일 그녀가 남자 기숙사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6개월 동안 한인 학생들의 새벽기도회를 영어로 진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또 한 명 친하게 지낸 학생 중에 수지 브루스터라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당시 팬암 항공사 부사장이었는데 키가 저보다 10센티 이상 컸고, 집은 LA 롱비치의 부자동네인 랜쵸 팔로스 버디스의 언덕에 있었습니다. 여름에 그 집에 놀러갔다가 같이 롱비치 해변을 걸었습니다. 그때 그녀가 짧은 핫팬티를 입고 있었는데 얼마나 다리가 긴지 저의 가슴까지 왔습니다. 나는 창피해 죽겠는데 그녀는 아주 행복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때 한 부둣가에서 제가 수지에게 “왜 내게 이렇게 호의를 베푸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제게 2가지가 있어서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는 항상 자신감 있게 웃으며 사는 모습이 좋고, 또 하나는 신학교의 동양계 남학생 중에서 제가 제일 잘생겼다는 것이었습니다. 난생 처음 듣는 소리에 제가 흥분해서 어디가 잘생겼느냐고 물으니까 눈이 제일 잘생겼다고 했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지금까지 저의 작은 눈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지나친 자부심은 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적절한 자부심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에 대해 결코 실망하지 마십시오. 언젠가는 자신의 단점조차 장점이 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우리 자신을 최상의 작품으로 설계하시고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남과 비교해서 열등감에 빠질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이 모습 이대로 최선을 다해 살면 우리는 누구보다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4. 하나님을 더욱 경외해야 합니다.

본문 21-22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 아들아 여호와와 왕을 경외하고 반역자로 더불어 사귀지 말라/ 대저 그들의 재앙은 속히 임하리니 이 두 자의 멸망을 누가 알랴?” 이 구절에서 “여호와와 왕을 경외하라!”는 말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윗사람을 경외하는 것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윗사람에게 못하고도 하나님을 잠 섬길 수 있는 줄 압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부모님과 윗사람도 잘 섬기는 사람은 성공하지만 반역자에게는 재앙이 기다립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반역자와는 사귀지 마십시오. 사람에게는 기본적으로 의리라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의리가 없으면 미래도 없습니다. 너무 조급하지 말아야 합니다. 급하게 성공을 찾으면 오히려 급하게 망합니다. 반역의 길은 최대한 피해야 합니다. 정말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면 반역하지 않고도 세상이 바뀌는 길이 열릴 것입니다.

이제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버리지 말고, 실패해도 하나님을 변함없이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는 실패를 이렇게 받아들입니다. 첫째, 실패를 일시적인 작은 시련으로 받아들입니다. 성도의 실패는 결코 저주나 심판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목적 있는 시련일 뿐입니다.

둘째,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는 실패의 책임을 전적으로 자신이 지려고 합니다. 우리는 어떤 실패를 만나도 “실패의 원인에 내게 있다. 내가 더 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에게 책임을 묻고 나서 다시 새롭게 일어서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는 실패 속에서 반드시 얻을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물질을 잃고 난 뒤에 지혜를 얻고, 지위를 잃고 난 후에 겸손을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성도는 인생을 적자평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넷째,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는 앞으로 있을 하나님의 더 큰 축복을 믿습니다. 그래서 실패로 낙심하지 않습니다. 비록 실패했을지라도 자신에 대한 긍지를 잃지 않고,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새롭게 다시 시도해서 결국 성공합니다.

반면에 악인은 다릅니다. 조금 성공하면 교만해지고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또한 조금 성공했다고 사람을 무시하고, 전화도 받지 않고, 스스로를 귀족화합니다. 그런 모습들이 악한 사람의 볼품없는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악한 사람이 형통해 보여도 부러워할 일이 전혀 없습니다. 나중에 보면 악한 사람은 결국 친구를 잃고, 인생을 잃고, 행복을 잃고, 영원한 축복을 잃습니다.

< 성공은 주어지는 것입니다 >

이제 눈앞의 성공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성공만 생각한다고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예배와 헌신도 모르고 악착같이 삽니다. 그러나 피도 눈물도 없이 악착같이 취하려고 한다고 해서 성공이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공에 집착하면 그것이 스트레스가 되어 결국 자신을 파멸시키게 됩니다.

살면서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공은 주어지는 것이다!”라는 사실입니다. 성공은 선한 사람에게, 진실한 사람에게, 사랑을 아는 사람에게, 그리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은혜로 더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반드시 지켜주시고 결국 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19세기에 하나님을 경외하며 국민들의 큰 존경을 받았던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어느 날 특별열차를 타고 밤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한참 가는데 기관사가 보니까 헤드라이트 불빛에 사람 모양의 알 수 없는 존재가 보였습니다. 그 사람은 철로의 중앙에서 자기의 양팔을 흔들었습니다. 깜짝 놀란 기관사는 기차를 급정거시켰습니다. 그리고 조수와 함께 내려서 확인했지만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이상한 예감이 들어 짙은 안개를 뚫고 앞으로 조금 더 걸어가 보니까 철교가 불어난 물에 떠내려간 상태였습니다. 만일 몇 초만 더 달렸어도 여왕을 비롯해 기차 안의 모든 사람들이 몰살할 뻔했습니다. 기관사는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조금 전에 앞에서 손을 흔들며 기차를 세운 사람은 누구인가? 천사인가?”

그 후 그 비밀이 밝혀졌습니다. 그 원인은 헤드라이트 속에 죽어있던 한 마리 벌레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기차를 점검하던 기술자가 헤드라이트 속에 죽어있는 한 마리의 벌레를 발견하고, 죽은 벌레를 헤드라이트 유리에 붙이고 스위치를 켜자 벽에 사람 모습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 사실이 여왕에게 보고되자 여왕이 말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그렇게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하나님의 보호하심의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우연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길 하에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신실하게 하나님을 붙잡고 살면 반드시 신실한 하나님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뿌린 대로 거둡니다. 가끔 하나님은 내 사정을 몰라주신다고 생각할 때가 있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내 사정을 몰라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생각을 몰라주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어떤 경우에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면 우리는 스스로 포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리 아니라고 변명해도 ‘쉽게 포기하는 것’은 ‘자신의 능력만을 의지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진정으로 의지한다면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처럼 끝까지 믿음 안에 있으면 우리의 꿈과 비전이 이뤄질 환상적인 때는 반드시 옵니다.

나이가 아무리 많이 들어도 상관없습니다. 이제까지 살면서 가장 기분 좋았던 시절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시절보다 더 좋은 시절, 더 복된 시절, 더 의미 있는 시절, 더 보람 있는 시절이 앞으로도 반드시 올 것입니다. 희망을 버리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눈물로 계속 씨를 뿌리십시오.

물론 큰 성취도 없이 5년, 10년, 그리고 15년이 지나면 실망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시간은 조금 늦어져도 꿈과 비전은 고수하십시오. 계속 높은 길을 가고, 해야 할 일을 하고, 계속 씨를 뿌리십시오. 우리는 얼마든지 장벽을 극복할 수 있고, 낙심을 이겨낼 수 있고,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 사실을 믿고 제 코스로 꾸준히 가면서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미래를 팔아버리지 마십시오.

꿈과 비전의 성취가 늦어지면 마음의 고통이 생깁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그 고통의 깊이는 축복의 높이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배우자를 믿고, 자녀를 믿고, 목자를 믿으십시오. 현실 때문에 목표를 포기하지 마십시오. 시간이 조금 오래 걸려도, 때가 되면 하나님은 그 잃어버린 시간을 몇 배로 보충해주실 것입니다. 그처럼 항상 믿음 안에 있음으로 하나님이 준비해주신 성공을 취하는 복된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 이한규목사(분당 샛별교회)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