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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내주한 것을 어떻게 아는가?

Joyfule 2014. 10. 28. 09:35

 

성령이 내주한 것을 어떻게 아는가?

신상래 목사

 

지금의 도회지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어릴 적 시골에 살았던 사람들은 보리밟기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을 것이다. 보리는 가을에 씨를 뿌리면 땅속에서 겨울을 지내고 봄에 싹이 트는데, 이상난동으로 겨울이 가기 전에 날이 풀려 기온이 오르면, 보리가 싹이 올라오다가 다시 날씨가 추워지면 얼어 죽게 된다. 그래서 이상난동으로 보리 싹이 올라오면 사람들이 보리밭에 여럿이 줄을 지어 보리싹을 밟아서 흙속에 파묻어주어야 날씨가 영하로 떨어져도 얼어 죽지 않는다. 진짜 봄이 오지 않았는데 봄이 온 것으로 착각하고 싹이 올라오면 영하로 떨어진 날씨로 인해 얼어 죽는 보리처럼, 성령이 임재하지 않았는데 성령이 오신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렇다면 평생 속고 살다가 영혼이 불타는 지옥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이 같은 결과는 얼어 죽는 보리보다 더 참혹한 일이다. 생명만 죽는 것이 아니라 영혼까지 끔찍하게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에게 당신 안에 성령이 있습니까? 라고 물어보면 십중팔구는 그렇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또다시,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라고 물어보면, 대다수는 우물쭈물하고 뒷머리를 긁어대고 있거나, 개중에는 예수를 구주로 시인하고 교회에 다니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라고 말할 것이다. 물론 이 말의 근거는 성경에 있다. ‘성령이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다’(고전12:3)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전체를 읽어보면 시인하다라는 헬라어 오모레게인은 신앙고백을 할 때 주로 쓰이는 말인데, 이는 말로서가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신앙고백에 해당된다. 그래서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10:10)는 구절 앞에,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러야 한다.’고 전제하고 있는 이유이다.

그러나 필자의 이러한 견해를 교회에서 들어보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냥 입으로 시인하기만 하면 죄다 천국에 들어간다고 가르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시인하다오모레게인은 다른 성경에도 나온다. ‘그들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자요 복종하지 않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1:16) 이는 바울이 사악한 유대인에게 하는 말인데, 그들도 입으로는 하나님을 시인하였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놀랍지 아니한가?

 

물론 필자가 이렇게 성경의 근거를 들이대어도 대부분 꿈쩍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성령이 내주하는 증거를 하나하나 조목조목 짚어보자. 성령이 누구신가? 그분은 하나님의 영이시자 그리스도의 영이시다. 그래서 성경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이 성령과 더불어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말씀하시고 계시다. 그렇다면 성령이 내 안에 오시면 하나님이 오신 증거가 분명하게 나타나야 한다. 이러한 증거는 내적 증거와 외적 증거, 그리고 성령의 열매로 나타난다. 만일 이러한 증거가 일부만 나타나든가, 아니면 다른 증거와 합치 되지 않는다면 성령 하나님이 내주하는 증거라고 불 수 없다.

 

혹독하게 하나님을 부르고 전심으로 성령이 내주하는 간구의 기도를 하다보면, 성령이 내주하는 가장 빠른 증거로서 내적 증거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내적 증거는 말 그대로 마음 안에서 나타나는 증거이다. 성령이 내주하시면 기쁨과 평안과 자유함이 마음속에 빼곡하게 채워지게 된다. 그러나 처음에는 기쁘고 평안한 감정의 폭이 상당이 세다. 물론 사람마다 감정이나 느낌의 상태가 항상 똑 같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안과 기쁨이 마음에 빼곡하게 채워지는 느낌을 받는다. 감정의 상태가 심하면 구름위에 떠 있는 기분이 들거나, 심하면 환각제에 취해 있는 기분도 든다. 그러나 나중에는 이러한 강도가 점점 약해지는 게 일반적이다. 평안한 느낌이 높아지는 게 바로 기쁨의 상태라고 보면 되며 자유함도 동시에 느낀다.

말하자면 평안은 자유함과 기쁨과 같은 종류의 감정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성령이 주시는 이런 감정은 기도할 때 뿐 아니라 기도가 끝나고 일상의 삶에서도 오랫동안 지속된다는 것이 특징이다. 사실 평안하거나 기쁜 감정은 귀신이 주기도 하고 자의적으로 들기도 한다. 그러나 성령이 주시는 것과 다른 느낌은 기도가 끝나고 일상의 삶으로 돌아와서도 오랫동안 지속된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그러므로 성령이 주시는 것인지 아닌지 잘 살펴보고 속지 말아야 한다.

 

또한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의 상태는 기도에 쫙 몰입되는 현상이다. 기도에 몰입되는 상태는 기도하는 자신을 느끼지 못하고 기도 안에 들어가 있게 된다. 그러나 몰입되지 않으면 환경에 불편해하고 육체적으로 힘든 느낌이 든다. 시계를 계속 쳐다보거나, 눈을 자주 뜨거나, 주변의 소음이나 빛에 민감하게 반응을 보이기에 오랫동안 기도하지 못한다. 그러나 기도에 몰입이 되면 한두 시간 기도하는 것이 30분정도 밖에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지나간다. 성령이 내주하는 현상은 기도할 때의 느낌도 평안해지지만 기도에 쫙 몰입이 되는 현상이 동시에 나타나야 한다. 기도에 몰입이 되면 머리가 기분 좋은 압박감이 느껴지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느끼는 격앙된 감정의 상태나 방언의 모습을 가지고 성령이 임재 한다고 생각하기 일쑤이다. 찬양집회에서 빠르고 강한 음악에 도취되어 찬양을 부르면 기분이 격앙되는 상태를 성령이 임재하는 상태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노래방이나 나이트클럽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어보라. 이 역시 감정의 격앙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이 내주하는 느낌은 집에 돌아와서도 느낌이 줄어들지 않고 오랫동안 지속되지만, 음악에 도취되어 느끼는 감정의 격앙은 집회나 예배가 끝나자마자 식어지기 마련이다. 또한 많은 이들이 방언을 성령의 임재로 철썩 같이 믿는다. 그러나 귀신은 방언으로 속이기 일쑤이다. 그러므로 다른 내적 증거와 외적 증거, 성령의 열매와 비교하여 맞추어서 분별하고 판단해야 한다. 다른 증거는 없는 데 방언만 한다면 귀신에게 속거나 오랫동안 입에 배어서 나오는 자의적인 방언일 것이다.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를 하게 되면 내적 증거와 더불어 외적 증거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외적 증거는 기도의 능력이나 은사가 나타나는 현상이다.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이 내려오고 지난한 삶의 문제가 깨끗하게 해결되고 성령의 은사가 내려오기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은사를 방언, 예언, 귀신 쫒음, 방언통역, 치유 등에 한정되어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데, 그 외에도 사랑, 믿음, 지식, 지혜도 성령이 주시는 주요한 은사이다.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의 강을 건너가면 탁월한 기도의 능력과 더불어 많은 은사를 받아 누리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은사는 관리하지 못하거나 하나님 뜻대로 사용하지 못하면 소멸되기도 한다. 특히 조심해야 할 것은 귀신들도 이러한 은사를 주어 속인다는 것이다. 귀신들은 은사를 사모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속여서 비슷한 은사를 주어 속게 만든다. 영음으로 들려주어 예언의 은사가 주어서 속이는 경우와 방언을 주어 속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한 기침, 헛구역질, 구토, , 트림 등의 현상으로 저급한 귀신들을 나가게 하여 귀신을 쫓아내는 것처럼 속이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나 진짜 센 놈은 이런 식으로 나가지 않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다.

러므로 이렇게 해서 다 나갔다고 하고 엄청난 헌금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귀신에게 속아 하는 사역자들이다. 질병이나 상한 마음의 치유도 성경적이 아닌 치유방식이 아니라 감정의 터치나 인본적인 방식을 동반한다면 죄다 속이는 자들이다. 사실 무당을 찾아가거나 굿을 해도 질병이 낫는다. 그러므로 질병이 낫는다는 것만을 가지고 속지 말고, 성경적인 방식인지, 거룩한 성령의 성품이 드러나는지도 날카롭게 분별을 해야 속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성령의 내적 증거와 외적증거나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사람들에게 성령의 열매가 풍성하게 맺히기 시작한다. 성령의 열매는 부족한 성품이 거룩하게 변화하고, 세속적인 인생관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결심하는 인생관으로 바뀌게 된다. 또한 하는 일마다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영혼이 구원받는 일이 생겨난다. 그러나 귀신들이 속이는 일에는 성령의 열매가 결코 없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거듭나서 성령의 사람이 되면, 성령이 내주하시고 동행하셔서 하는 일에 성령의 열매가 풍성하게 맺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에는 말로는 성령의 역사를 주장하지만, 성령의 내적, 외적 증거도 없고 풍성한 성령의 열매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는 오직 희생적인 신앙행위와 예배의식의 반복 그리고 기도회의 참석만을 강요할 뿐이다. 그리고는 성령이 내주하고 있음을 지식으로 믿으라고 주문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 약속한 성령의 증거나 열매가 나타나지 않으면 죄다 귀신들에게 속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런 사람들은 천국의 자격은 물론 평안하고 형통한 삶은 결코 없다. 그러나 자신에게 성령이 있다고 철썩 같이 믿고 교회에 왔다 갔다 하면서, 먹고 마시고 낄낄거리며 있으니 답답하고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