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사람을 변화시키는 131가지 이야기
지은이:유재덕
29. 노장의 승리
1994년 11월 라스베가스에서 할아버지 복서 조지 포먼과
WBA와 IBF 통합 챔피언 마이클 무어러가 타이틀 매치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포먼에게는 에반더 홀리필드와의 세계 타이틀전에서 패배한 이후로
두 번째로 찾아온 기회였습니다.
상황은 좋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회가 되었지만 포먼은 큰 점수 차로 뒤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챔피언에게도 허점은 있었습니다.
포먼은 무어러의 귀에 레프트 훅을 한 번,
그리고 같은 곳을 세 번 연타하고 난 뒤에 레프트 잽과
이마를 때리는 라이트 강타로 챔피언을 그로기에 몰아넣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오른손으로 상대의 턱을 후려쳐서 링에 뉘었습니다.
사람들은 열광했고, 포먼은 46세를 2개월 앞두고서
누구도 기대하지 않던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분위기가 어느 정도 가라앉고 노장이 챔피언의 자리 다시 도전하게 된 과정이
사람들에게 알게 되면서 사람들은 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조지 포먼은 알리와의 경기에서 패배한 뒤에 충격을 받고서
28세의 나이로 권투계를 떠났습니다.
포먼은 목사 안수를 받고서 로드 지저스 크리이스트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는 교회를 문제 청소년들의 안식처로 만들 생각이었습니다.
창고를 개조해서 체육관으로 만들고 운동시설을 갖춘 뒤에
모든 청소년들에게 개방했습니다.
그것을 운영하는데 따른 비용은 모두 포먼의 몫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능력에도 한계는 있었습니다.
38세가 되던 해 포먼은 거의 파산 직전까지 몰렸습니다.
그러나 문을 닫으면 길거리로 돌아가서 범죄에 빠질 청소년들을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포먼은 먼저 청소년들을 위한 모금행사를 시도했지만 결과는 기대 밖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갑자기 다시 권투를 시작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38세라는, 권투계에서는 환갑을 넘긴 나이였지만
청소년들에게 마음껏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겠다는
생각 앞에서는 나이도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냉정했습니다.
나이는 물론 몸무게가 무려 150㎏이나 나가는
포먼의 훈련비를 지원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혼자의 힘으로 훈련을 꾸려 나가야 했습니다.
마침내 몸무게를 130㎏으로 낮추는데 성공했지만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체육위원회는 그의 나이를 문제삼아 경기의 승인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포먼은 청문회장에서 재기의 이유를 묻는 질문에
'생명, 자유, 행복'을 원하기 때문이라고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스포츠 기자들 역시 그의 복귀에 코웃음을 쳤습니다.
그러나 포먼은 나중에서야 그때의 감정을 이렇게 밝혔습니다.
"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무지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용서가 가능했습니다.
그들이 내 마음속에,
그리고 내 정신 속에 무슨 생각이 들어 있는지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포먼은 이후로 상대를 하나하나 쓰러뜨렸습니다.
물론 패배도 맛보았지만 결국에는 통합 챔피언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패배를 예상했던 무어러와의 시합에 20년 전
알리와의 시합에서 입었던 팬티를 입고 출전했던 포먼은
주변 사람들에게 진정한 용기란 어떤 것인지 분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시편 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