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교愛嬌 - 신달자
사람에게는 천성이라는 것이 있는지 제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이 나에게 있어서는 애교라는 것이다.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가장 바라는 것이 애교라는 것을 어느 통계에서 본 적이 있는데, 그러고 보면 내가 남성들에게 인기가 없다는 것을 다른 곳에서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나는 애교 없는 나에게서 만족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남자에게는 물론이지만 나는 나에게도 애교를 피우지 못한다. 나도 소위 자기애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나는 스스로를 대접하지 못한다. 동네에서 아무렇게나 입고 다니는 나를, 검은 비닐봉지에 과일 몇 개를 사들고 오는 나를 보고 이웃들은 소박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엄밀하게 말하면 품위 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죽죽 걸려있는 옷도 제대로 입고 다니지 못하는 게으름이 나에겐 천적이다. 매사 귀찮아하고 사는 내 몰골이야말로 내가 나에게 애교가 없는, 무뚝뚝한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지금은 나이가 있으니 그렇다 하더라도 젊은 날에도 남편은 애교 없는 나에게 불만이 많았다. 남편친구들은 어쩌다가 잠깐 만나는 나를 애교 있는 여자로 보았는지 남편에게 젊은 여자에다가 애교까지 있는 여자를 만났으니 너는 복도 많다고 부러워했다는 것이다. 그때마다 내 남편이 단골로 한 말은 “네가 딱 사흘만 데리고 살아 보라”는 것이었다.
너는 나무막대기를 삶아 먹었느냐고 기분만 잡치면 내게 핏대를 올리며 핀잔을 주었다. 욕심도 많지, 애교씩이나? 나는 당당하게 건조하고 무서운 얼굴로 그 무뚝뚝한 마음까지 없애려는 듯 얼굴을 붉혔다.
나는 그 문제만큼 추호도 미안하지 않다. 하루일과도 태산 같기만 해서 뭐든 해치우는 식으로 살았던 젊은 시절, 애교까지 부리며 산다는 것은 당연히 자존심문제였다. 그러나 남편은 그렇다 치고 나는 왜 그렇게 즐거움이라는 것을 잊고 그렇게 살았던 것일까.
그렇게 좋아했던 애교 한번 원 없이 피워 한 다발 장미로 안겨주었다면 지금 하얗게 뼈로 누워있는 내 남편에게 나는 당신에게 원 없이 잘 했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을.
그러나 그 남자는 그랬다. 생활비는 조금만 주어도, 집에 와서 성질만 벅벅 부려도, 자주 아내의 자존심을 묵사발을 만들어도 여보! 여보! 하면서 입가에 관능적인 백치의 미소를 띠며 애교를 부려 주기를 바랬다. 그렇게 했다면 남편은 찬란한 인생이었다고 말했을까. 남편이여. 당신의 삭은 뼈에도 귀가 있다면 들어보시오, 나는 그 시절 애교 있는 남자가 필요했다는 것을.
우리나라 말에 불행을 아주 적절하게 다스리는 말이 있다. ‘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인데 이것은 극도의 불행한 경지를 편안하게 위로하는 심리적 면역법으로 생각할 수 있다. 나도 이 말을 자주 사용한다. 불행한 순간을 행복 쪽으로 이동시키는 지혜로운 동작법이라 생각하고 있다
나에게 애교 있는 남자가 없는 일도, 세상일이 내 뜻과 늘 다르게 갈 때도, 내가 이 불행의 하향정지선에서 발을 뚝 멈출 수 있었던 것은 이 글귀하나를 가슴에 비수처럼 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코 이대로는 살지 않겠다는 운명의 정지선이 내게는 있었다. 이런 놈의 세상을 살고 싶지 않다고 징징거려도 자고나면 내 앞에 따뜻한 커피가 놓이고 아침저녁으로 한 다발씩 수표가 놓이고, 내 손으로 세수하고 화장만하면 모든 하수인들이 나를 움직이게 하면서 왕후처럼 모셔도 우울해서 못 견디는 세월이 내게도 있었다 치자. 그때 당신이 애교를 부리며 뭐 어떻게 해 줄까요 하면 난 기분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나는 내가 견디는 만큼의 분량이 나의 행복의 무게라고 생각한지 오래이므로 오늘도 나는 더는 불행이 아니라는 정지선에서 두 발에 힘을 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 마음속에서 아무도 모르게…, 그러면서 뼈가 바스라지는듯 서로 아파했는지 모른다.
인본심리학자 메슬로우는 인간의 다섯 가지 욕망 중에 생리적 욕구를 가장 먼저 꼽았다. 먹고 자고 그리고 사랑하는 일이다. 나는 이 기본 욕망에 대해 늘 아쉽고 쓸쓸하다. 나는 그 첫 번째 욕구에 실패하면서 소속의 욕구에도 밀려나고 사랑의 욕구에는 더욱더 자질이 없고, 그러므로 존중받지 못했으며 마지막 자아실현에서 나는 목을 매달고 살아 온 것이다.
결핍의 욕구는 으악스러운가. 나를 생각하면 사랑받으며 살아야 하는 여자에서 사랑해야만 하는 여자로 살아가는 운명이 바뀌면서 거칠고 사나운 여자로 변신하게 되었다. 감정의 근육이 우둘투둘했다.
나의 애교 없음은 그래서 모두 당신 탓이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애교 있는 남자를 만나지 못했으므로 애교 있는 인생을 만나지 못했다. 내가 부드럽고 사랑스럽고 남자에게 녹아드는 여자가 되지 못한 것은 순전히 당신 탓이다.
그러나 나는 안다. 애교 있는 인생은 결국 자신이 세상을 사랑하므로 만든다는 것을. 내가 사랑하는 것만큼 애교 있는 세상을 허락받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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