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김요한목사

애통과 위로

Joyfule 2024. 6. 3. 12:42



애통과 위로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요”(마5:4)

 

성경의 복은 주님의 임재(바라)하심이 복(바라크)이 되어갑니다.

그 말은 존재가 변화되어 행위로 바뀌어 남에게 끼치게 된다는 말입니다.

다만 말씀이 체화되어 형체가 되기 위해서는 진리의 성령이 임하심을 믿는

것이 매우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자기중심적으로 말씀을 순종한다고 하면 성령을

훼방해 버리는 아주 불행한 죄를 짓고 맙니다. 지금의 교육이론이 그러합니다.

한 목사가 기독교교육학을 전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참 조리 있게 전하므로

많은 사람의 호응을 받고 있으나 그만 그 말씀 속에 생명을 살리는 영이 없습니다.

생명의 말씀을 가지고 자신도 살리고 남도 살리라고 말해 주지만 참 안타깝습니다.

 

요14-16장을 오랫동안 반복해서 읽고 묵상하다보면 ‘내가 주님 안에 주님이

내 안에 계시는‘ 주의 계명이 주야로 마음과 입에서 중얼중얼하고 새어 나옵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보내신 진리의 성령을 믿지만 믿는 것과 아는 것이 차이가 있어서

믿음과 인내의 긴 시간을 통과 합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비로소 온전한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됩니다(엡4:13) 계속되는 현재진행입니다.

천국복음을 과감하게 전하지 못하는 원인은 주님께서도 받은 3대 시험에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요일2:16)은 요한서신까지

따라가서 세상을 좇게 합니다. 교회가 세상나라와 같이 되는 이유가 바로 이겁니다.

어제 아침에 ‘내가 주님 안에 주님이 내 안에 하고’ 되 뇌이다가 매우 심각한 곤고함이

몰려오는 걸 체험합니다. 그건 나의 죄성과 옛 사람에 대한 지긋지긋함 때문입니다.

심령천국을 말씀하자마자 애통함이 가슴을 칼로 도려내며 후벼대는 겁니다.

 

우리는 비록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함을 단번에 받았지만

원죄에 대한 채무의식과 함께 육신 속에 남아 있는 죄성이 무섭습니다.

그래서 다윗도 그 죄성으로 하나님께서 구하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며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라고 고백했습니다(시51:17)

예수의 십자가로 속죄함을 받아 그리스도를 주로 모시고 하늘나라의 기쁨으로

살려고 하지만 때로는 나 자신이 바울과 같이 죄인 중에 괴수이며 만삭되지

못한 자로서 세상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라는 자의식으로 애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진 내가 그 십자가에 나를

넘겨주는 것은 죄인이었던 나와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고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다가 다시 산 새로운 피조물인 나로 살아가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주님께서도 겟세마네의 동산에서 깻묵을 짜듯 통곡과 눈물과 간구와 소원을 드려

그 경외하심으로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경건으로 구원의 본을 보이셨습니다(히5:7-9)

언젠가 주님을 모시고 내가 아니라 주님이 나의 주인이라고 고백하는 순간부터

옛 사람이 지긋지긋한 꼴통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주님을 따르는 순종의 때가옵니다.

사망의 골짜기를 통과할 때에 주의 말씀이 위로가 되지 않으면 어느 누가 감당하리요!

주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을 따라 아담 안에서 죽었던 내가 다시 산 자로서

가난하고 목마른 심령으로 주님을 사모하고 앙망할 때에 비치는 자신의 몰골로

말미암아 상하고 애통하는 마음으로 주께 자신을 넘기고 겸손히 주를 섬기려는

모든 경건한 하나님의 자녀들의 심령을 성령께서 매만지며 위로하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