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영상시산책

약속의 별 ㅡ 유안진

Joyfule 2009. 6. 8. 05:25

      약속의 별 ㅡ 유안진 Ⅰ 몹시 외롭고 쓸쓸해지는 때는 걸어온 옛길로나 돌아가게 되나봅니다 못내 초라하고 서글퍼지는 때에도 보물찾기하듯 그 길섶을 뒤적이게 되나봅니다 긴긴 겨울밤 얼어붙은 깜깜 하늘에는 왠지 낯익은 듯 눈물 머금은 별 하나 물끄러미 시선을 맞추다가 까맣게 잊고 살아왔습니다 약속 하나, 언약 하나, 맹세 하나를 Ⅱ 내 어려서 철없던 꼬맹이적에 심심해서 별이나 헤아리며 혼자 놀던 어느 밤에 문득 아름다운 별 하나에 넋이 빠져 단박에 나의 별로 점찍었습니다 「이제부터 너는 내 별 이담에 나도 너처럼 빛날 거야」 턱을 괸 두 손 풀고 발딱 일어서며 나 혼자 중얼거려 약속했습니다 그 별도 기뻐서 더 크게 더 밝게 빛났습니다 그 이름은 놀림말로 개밥바라기라고 하지만 초저녁엔 금성이고 장경성(長慶星)이고 태백성(太百星)이며 새벽녘엔 샛별이고 명성(名星)이고 계명성(啓明星)이라 부르는 줄은 한참 뒤에 가서 알게 되었습니다만 애들한테 따돌림받고 슬퍼지는 외토릴 때 손등으로 눈물 닦다가도 고개 들면 웃어주는 별 「힘을 내! 하마 잊었니 우리의 약속을?」 그때 이레 나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오밤중에 잠이 깨어도 문 열고 내다보며 눈맞춤도 눈흘김도 눈쌈도 하였고 신새벽 뒷간 가는 나를 불러 세워놓고 짓궂게 놀려대어도 나는 행복했습니다 Ⅲ 꿈이 너무 많고 너무도 화려하여 눈물도 웃음도 변덕스럽던 여학생때는 단짝 친구랑 나는 서로 사랑했습니다 영원한 우정을 기막힌 야망을 여름밤 하늘의 별 하나를 정해놓고 손가락을 걸어서 우린 언약했습니다 운명이 우리를 갈라놓을지라도 아득한 훗날 그 어디에서라도 우리의 우정은 언약의 별같이 밝고도 찬란할 것이라고 언약의 별 같은 인물이 되자고 새끼손가락을 세 번 잡아당겼습니다 Ⅳ 애인이라고는 차마 부르지 못했지만 난생 처음으로 사랑한 사람이여 숫되고 서툴던 내 처녀적에 별 하나에 사랑을 맹세해 주던 이여 별 하나에 포부를 다짐해 뵈던 이여 지금은 어디에서 무얼하는지 몰라도 지금의 하늘에는 맹세의 그 별이 그날처럼 밝고도 아름답게 빛나고 있습니다 사는 일이 피곤할 때 더러더러 생각날까요 뜨거운 그 호소 그 맹세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할까요 Ⅴ 덧없고 부질없어라 우정과 사랑이면 더욱 그러하여라 세월이 지나간 휑하니 빈 자리에는 그 약속, 그 언약, 그 맹세 모두 어처구니없이 되고 말았습니다 고달픈 퇴근길에 헛발을 디디다가 잠 안 오는 밤중에 안경알을 닦다가 불현듯 떠오르는 약속의 별 하나 아이적 내 별이여, 우정의 우리 별이여 영원을 맹세하던 첫사랑의 별이여 어느 한 가지의 약속조차도 이루지 못하고 살아온 오늘은 그저 할말이 없습니다 오직 미안할 뿐입니다 아이처럼 다리 뻗쳐 마구 울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