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에- 조숙
설날에 네 명의 동서들이 오랫만에 모여 앉았다.
아침 차릴 때만 해도 부엌을 오가며 얼굴에 닿는 공기가 쌀쌀했는데 햇살이 방안 깊숙히 들어와 데워 놓는다. 남정네들과 아이들이 동네 어른들께 세배 드리러 간다고 우르르 몰려나갔다. 주방에서 여태 설거지하던 막내동서가 젖은 손을 닦으며 나온다.
북적대던 집안 공기가 갑자기 햇살에 투영된 먼지 마냥 조용히 내려앉는다.
호랭이 없는 굴에 여우가 대장 노릇한다고,
친정엄마 뻘 되는 큰 형님이 동동주를 주전자 목구멍이 꿀럭꿀럭 할 정도로 담아와서 '야 동서들아 우리도 한 상 차려 놓고 먹자, 하신다.
시댁동네는 아직도 집집마다 동동주를 담는다.
올해는 집에서 두부를 만들었다고 내어놓는데 겉은 딱딱하고 속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지만 고소한 맛은 장에서 사온 것과 비교 할 수 없다.
첫째와 둘째 형님은 시골집을 털고 새로 지어서 가까이에 사신다.
연배도 비슷해서 친구처럼 지낸다.
큰아주버님이 몇 해전 세상을 떠나시고 덩그라니 큰집을 홀로 지키는 형님더러 재혼하라고 옆에서 꼬드기는 사람이 다름아닌 둘째 형님이라나?
하지만 큰형님은 아주버님 돌아가시던 그 해에 논을 쳐서 사과 과수원으로 만들어 놓은것이 이제부터 결실을 맺기 시작하는데 '나는 사과한테 시집갔다'고 손사래를 친다.
그러면서 쌍거풀 수술은 왜 했는지....
동동주는 은근히 취하게 하는 맛이 있다. 멋모르고 달작지근한 맛에 홀려서 홀짝홀짝 마셨다가는 큰일난다.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긴 하지만 형님들이 따라 주는 것을 사양하지 못해 한 사발 마셨더니 나는 벌써 알딸딸하다.
종갓집 맏며느리로 시집와서 하루도 다리 뻗고 앉아 볼 날 없었던 형님의 얘기와, 지금은 작은 도랑이 되어버렸지만 동네 앞을 흐르던 냇가에 언 손을 녹여가며 빨래했다는 둘째 형님의 무용담(?)이 자연스럽게 이씨집안 남자들 흉보는 것으로 이어졌다. 셋째인 나와 막내동서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제일 많이 성토했다. 그것은 아직 연륜이 덜 되었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으리라. 형님들처럼 사랑도 미움도 세월 속에 녹여 내는 법을 아직 터득하지 못했으니까
실컷 이씨집안 남자들 험담만 하다가 큰형님이 나는 잊고 있었던 기억하나를 집어냈다.
시집 온 첫날 자고 일어나니까 내 머리가 수세미처럼 엉켜있었다. 집집마다 다니며 인사 올려야 하는데 낭패였다. 미용실은 읍내까지 나가야 하는데 하루에 두 번 들어오는 버스를 기다릴 수도 없었다. 궁리 끝에 아주버님이 타던 짐 자전거를 꺼내왔다. 한복만 입고 왔으니 자전거를 타려면 바지가 필요했다. 조카가 입던 츄리닝 바지를 얻어 입고 형님의 알록달록한 티셔츠, 그리고 하얀고무신을 신고 산발한 머리를 휘날리며 동네를 돌아 냅다 달렸다.
농촌사람들은 대부분 아침 일찍 일어난다. 논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모두 '저게 누고?' 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20분을 달려서 겨우 미용실 간판 하나를 발견했는데 아직 문도 열리지 않은 미용실 문을 쾅쾅 흔들어서 '올림머리'를 하고 왔었다.
'새댁아 니 용감하더라' 이 동네는 참 이상하다. 다 늙어 쪼그랑 할매가 되어도 자기보다 아랫사람이면 무조건 '새댁아'라고 부른다. 내 눈에는 막걸리 한 사발에 얼굴이 발그레해진 형님들이 새댁같이 이쁘다.
내게는 이런 푸근한 형님들 얼굴보는 것이 명절의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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