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참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것인가?(8)
영적인 사람이 되라. - 하나님의 참복을 어떻게 받을 것인가?(8)
옛날 사람들은 현대를 사는 우리보다 더 영적인 사람들이었다. 비록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지는 않았지만, 세상을 다스리며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신의 존재를 굳게 믿고 있었기에 죄를 짓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았다. 또한, 재앙이나 질병으로 내리는 하늘의 징벌을 두려워하고 하곤 했다. 과학문명이 고도로 발달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그런 선조들의 모습에 비웃음을 보이겠지만, 신을 믿고 하늘을 두려워하는 영적인 생활태도는 비록 가난했지만 정직하고 너그럽게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었고 깨끗한 영혼의 소유자가 되는 힘이다. 신을 믿지 않고 과학과 경험으로 검증된 사실만을 받아들이며, 명철한 이성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현대인들은 그들보다 더 행복하게 살고 있는가? 비록 과거보다 물질적으로 풍부하고 편리하게 살고 있을지는 모르나, 더 세속적이 되어 탐욕과 방탕에 빠져 퇴폐적이며 음란한 쾌락에 몸을 던지며 살아간다. 그래서 얻은 질펀한 쾌락과 독선적인 자기만족은 결국 자기영혼을 파괴하며 허망한 삶으로 종지부를 찍으며 이 세상을 떠나고 만다.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던 시대에도 신의 존재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살아갔던 선조들이, 건강한 삶과 풍성한 영혼을 소유하게 된 비결은 다름 아닌 영적인 것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이 땅의 삶이 전부가 아닌 것을 믿었기에 조심스럽게 저승의 삶을 준비하였으며, 이 땅에서 저지른 비윤리적인 죄의 행위에 대한 하늘의 처벌을 두려워하였기에 신실하고 정직하게 살려고 노력했다. 영적인 것에 대한 관심은 우연히 얻어지는 호기심 때문이 아니라, 사람은 본래 영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지었기에, 눈으로 관찰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하며 누구나 영원한 것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부족함 없이 부유하고 넉넉하게 살아도 영혼의 갈증이 채워지지 못하면 무언가 허전해하고 답답해한다. 크리스천은 허전한 영혼을 채워주는 유일한 방법으로 하나님을 만나 그분의 은혜 안에 살아야 하는 것을 깨달아 알고 있지만, 지금도 하나님을 거부하고 귀신을 섬기거나 허무한 인생을 술로 채우려 하는 세상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필자는 아직 교회에 다니고 있지는 않지만, 영적인 것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평안한 영혼을 사모하여 찾는 사람들을 알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영적인 존재와 사후세계의 존재도 믿는다. 아직 마음에 확실하게 와 닿지 않았기에 기독교인이 되는 것을 망설이고 있지만, 때가 되어 적절한 기회가 온다면 필자는 그들을 교회로 인도할 생각이다. 이들은 억지로 전도 받고 강요되어 설득당하는 것을 싫어하기에, 스스로 결정을 하여 자발적으로 하나님과 교회를 받아들일 때 까지, 기회 있을 때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소개하며 마음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교회에 다니고 있다고 해서 모두 영적인 사람은 아니다. 모태신앙이나 오랫동안 교회에 다녀 신앙생활과 교회문화에 익숙해 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갈급해하고 만나기를 원하며 깊고 친밀한 관계에 대해 모르는 자들은 전혀 영적이지 않다. 이들은 교회에서 서로 만나더라도 하나님과 신앙에 대한 관심보다, 목회자나 교회 주변 사람들에 대한 시시콜콜한 대화로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신앙생활도 주일예배나 십일조 여부, 혹은 새벽기도 참석 같은 종교행위로 대신한다. 조용하고 은밀한 곳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이나, 갈급한 마음으로 성경을 찾으며 묵상하는 즐거움에 대한 관심조차 없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들이 신앙생활에 오랜 경륜이 있으며 장로나 집사, 권사와 같은 묵직한 직분의 소유자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들은 교회나 교회에서 신앙을 인정받고 있는 것과는 상관없이 영적인 사람들이 아니다.
영적이지 않다면 하나님의 복은 꿈도 꾸지 말라.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 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교회에 오면 영적인 관심을 보이며 기도나 예배에 성실하게 참석한다 할지라도, 일상의 삶에서 영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교회에 오면 누구나 경건한 태도를 가지고 예배를 드리는 시간에는 설교에 집중을 하지만, 삶의 현장으로 돌아와서 이를 실천하는 것에 관심이 없는 이유는 영적인 삶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주일날의 교회에서의 행사보다, 평일에 가정이나 직장, 사업장 등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에서 얼마나 영적인 삶을 사느냐를 주의 깊게 지켜보고 계신다.
소나 양 같은 제물은 구약시대의 제사에 꼭 필요한 필수품이었다. 구약의 제사법은 이 제물을 태워 드림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대신 보여주었다. 신약시대인 현대에는 이 같은 제사법이 폐지되고, 대신 우리 스스로가 하나님이 기쁘시게 하는 제물의 역할을 해야 한다. 자신이 있는 장소에 상관없이 그 자리에서, 언제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위를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는 걸어 다니는 제물이기 때문이다. 교회에서는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지만 일상의 생활로 돌아오면 감추어진 깊은 속내가 드러난다. 아무도 간섭하거나 지켜보지 않는 가정에서, 이기심과 탐욕을 쉽게 드러내는 직장에서, 거짓을 손쉽게 저지르는 사업장에서도 교회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시행하여 향기 나는 제물로 살아가야 한다. 그렇지만 이는 말처럼 쉽지 않다. 세상에서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돈과 성공을 얻기에 갈급해하며 탐욕과 자기만족을 채워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세속적이며 탐욕적인 세상에 물든 자신을 훈련시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영적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향한 당찬 각오도 그때 뿐, 숱한 시행착오와 쓰디쓴 실패를 겪다 실망과 좌절에 지쳐 포기할 명분을 얻게 될 뿐이다.
영적인 사람이 되려면
영적인 사람이 되는 가장 중요한 시작은 성령님을 만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성령님은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이므로 우리 자신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안다. 우리의 영혼이 어떤 상태이고,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해야 만족해하며 기쁘고 즐겁게 살 수 있는 지를 잘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혼을 일깨워주고 가르쳐주며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과 깊은 교감을 통하는 법을 알아야한다.
요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우리의 영은 성령님과 교감하며 화합할 때 만족과 기쁨을 느낀다. 또한 성령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기꺼이 행하므로 성취감을 맛보며 형통한 삶을 살 수 있다. 이는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일을 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하나님의 복을 얻기 위해서는 나의 소원이나 욕심을 떠나, 나를 통하여 하나님이 무엇을 이루시기를 원하고 계신지 깨달아야한다. 성령님과 관계가 잦고 깊을수록 깨달음이 더해지고 내면의 통찰력이 깊어간다. 그 깊은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은 나를 가르치고 자신이 원하는 길을 인도해주신다. 이러한 깨달음의 절정이 달하면 자신의 탐욕이나 소원을 떠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 진정으로 기쁘고 즐거운 마음이 되어, 기꺼이 하나님의 뜻을 좆아 행하게 된다. 자신의 욕심과 소원을 이루는 일이라면 하나님의 능력과 인도하심을 얻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에 아무리 애쓰고 노력한다 할지라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기쁘시게 하는 일이라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힘입어 일하게 되므로 불가능하게 보이는 일들도 놀라운 열매를 맺게 된다. 그러므로 일상의 삶에서 성령 안에 푹 빠져 서로 통하며 살아야 한다.
살 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성령님과 함께 하는 삶은 쉬지 않고 기도하는 방법밖에 없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은, 늘 하나님에 집중해서 하나님을 찾고 부르는 삶이 일상의 삶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상태를 말한다. 이는 새벽기도나 철야기도 등 교회에서 정해진 기도행사에 열심히 참여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매일 새벽이나 밤늦은 때에 방해받지 않는 시간과 장소를 택하여 하나님과 깊은 기도에 몰입하는 습관은 기본적인 행위이다. 이러한 습관이 하루에 2~3시간 이상이 되면 좋겠지만, 적어도 한 시간 이상 전념하여 기도에 몰입해야 한다. 그렇지만 여기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가정이나 직장, 사업장 등의 일상생활을 하는 장소에서, 늘 하나님을 떠올리고 늘 찾고 부르며 감사하고 찬양하며, 성령의 내주하심을 확인하고 충만함을 갈구하는 행위를 쉼 없이 해야 한다. 이것이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삶이다. 물론 처음에는 공적인 예배시간에서의 기도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개인적이고 자유로운 기도훈련이 되어 있지 않아 힘들 것이다. 그렇지만 계속 반복하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시간이 흘러 이러한 기도에 익숙해지게 되며, 오래지 않은 시간에 성령님과 동행하며 함께 하는 기도의 생활을 몸에 밸 수 있다. 이런 생활이 몸에 밴다면, 잠시라도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을 떠올리지 않으면 몹시 허전해하고 불안해하여,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다시 찾고 기도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모습이 영적인 사람으로 변해가는 과정이다.
삶의 모든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두라.
골 3:2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영적인 사람이 된다면 성령 충만한 삶을 늘 찾는 사람이 되겠지만, 이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일상의 모든 삶에서 성령님과 함께 하는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 모습은 일상의 행위와 의사결정의 최우선 순위가 하나님의 뜻인가, 아님 나의 생각인가를 점점해보아야 한다. 일상의 세세한 행위까지 하나님의 뜻을 성경에서 말씀하며 기도응답으로 알려주는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행위에 대한 원칙은 성경에서 언급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애써야하며, 삶에 적용하는 지혜를 얻을 수 있는 통찰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알게 된다면 즉각 이 뜻대로 시행해야한다.
그렇지만, 적지 않은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에 게으르다. 필자는 상담을 하면서, 교회를 수십 년 다녀 묵직한 직분을 갖고 있는 교인들이 하나님의 뜻에 무지한 것을 보고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성경의 인물이나 사건, 내용을 아는 것과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과는 다르다. 하나님의 뜻을 알려면 성경의 사건 뒤에 숨은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또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지만 시행하는 일에 단호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이는 교회의 지도자들도 예외가 아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행위 앞서 깨끗한 성품과 자비로운 행위를 보여주라고 말하지만, 우리나라의 크리스천이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모습으로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사랑을 베풀고 자비를 보여주는 데 인색하기 때문이다. 이는 신앙의 연륜은 오래 되었지만 영적인 사람으로 변화되지 않은 모습을 증명하고 있다.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신앙의 행위에는 열심이었지만, 예수님으로부터 악하다고 책망 받은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좇는데 외면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거룩하게 보이는 종교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영적인 자녀는 아니었다.
견고한 믿음을 소유하려면 올곧은 신앙의 행위도 중요하다. 정규적으로 예배에 참석하여 가르침을 받고 교인들과 서로 교류하며 믿음을 돈독히 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리고 시시때때로 교회에 모여 서로 기도해 주며 격려해주고 위로해주며 사랑을 베푸는 것도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삶의 모든 행위에 앞서서 하나님을 우선적으로 생각하여 그 길을 좇아야 하는 것이다. 이는 술 취하거나 담배는 피우고 음란물을 보는 것 같은, 누구나 알 수 있는 행위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고객을 상대로 장사를 하거나, 근무하고 싶은 직장을 선택하고 배우자를 고를 때에도 필요하다. 시시콜콜한 것을 자녀에게 교육시키거나 휴가를 떠나는 일상의 삶에서도 늘 하나님의 뜻을 살펴보는 습관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복은 어느 신앙행위의 결과나 열심히 기도한 응답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습관을 통해 조금씩 주어지는 것이다. 이를 알 수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는, 일상의 삶을 살아갈 때 사소한 것에서부터 중요한 것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고, 아무리 손해를 보고 불이익이 있더라도 개의치 않고 그 뜻만을 좇아 단호하게 살아가는 모습에 있다. 세속적이고 탐욕적인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묵묵히 시행하는 행위를 통해 이미 영적인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영적인 사람은 이 땅에 사는 천국시민이다.
하나님으로 받게 되는 가장 큰 복은 천국의 시민권을 획득한 것일 게다. 물론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도 평안하고 형통한 복이 임한다면 더할 나위없다. 그렇지만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얻는 것은 쉽지 않다. 오랫동안 경건의 훈련을 쌓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품과 견고한 믿음이 있어야하며, 하나님의 지혜에서 배우고 현장의 삶에서 적절히 적용하는 분별력과 통찰력을 겸비해야 할 일이다. 그렇지만, 깨달아 안다는 것만으로도 이러한 삶에 절반이상 접근한 것이나 다름없다. 안타깝게도 적지 않은 크리스천은 하나님의 복을 간절히 원하고 찾고 있지만, 하나님의 뜻을 스스로 찾는 훈련을 받지 못하여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거짓축복을 퍼뜨리는 삯꾼목자에 속아 헛된 것을 시행하며 시간과 돈 그리고 정열을 낭비하고 있다.
눅 17:20~21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천국시민이 되는 것은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단순한 믿음만 가진다고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자신을 통하여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는 도구로서의 삶을 간절히 원하고 있어야하고, 이를 위해 하나님의 뜻을 찾고 삶에 적용하는 일에 온 삶을 바치는 열정과 노력을 기울여야한다. 이러한 능력과 자격을 배우고 익힐 때, 비로소 이 땅에서 천국의 시민이 되는 자질을 갖추는 것이고, 때가 되면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천국의 삶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하늘에서 누리는 천국의 삶을 경험하지 못했더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세를 갖추어 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이 땅에서도 천국 못지않은 평안함과 기쁨 그리고 만족함을 만끽할 수 있다.
그러므로 비록 몸은 이 땅을 살면서도 마음은 본향인 하늘나라를 잊지 않고 그리워하며, 우리의 통치자인 하나님의 다스림을 간절히 원하고 통치자의 뜻을 찾아 단호하게 삶에 적용하는 자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적인 사람이 되는 길이다. 그러한 사람이 천국의 좁은 길을 통과하는 특권이 주어질 것이며, 구하는 대로 얻어지며 찾는 대로 찾아지는 전능한 하나님의 능력을 위임받은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한 사람이야말로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을 받아 누리는 참된 복을 받은 자가 될 것임이 틀림없다. 하나님이 그 안에 살아계셔서 세상을 향한 자신의 뜻을 이루시고 있기 때문이다.
출 처 : 다음 카페 [크리스천 영성학교]
글쓴이 : 신상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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