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보들이 있었다. 어느 날 그들은 자기들 마을에 회관을 짓기로 결심했다. 산꼭대기로 가서 목재로 쓸 나무들을 베기 시작했다. 필요한 만큼 나무를 베어낸 바보들은 통나무를 아래로 날랐다. 그런데 그들 중, 한사람이 통나무 하나를 실수로 놓치고 말았다. 통나무는 데굴데굴 굴러 마을까지 내려갔다. 힘 들이지 않았는데도 통나무는 저 혼자 처음 정한 곳까지 굴러 간 것이다.
바보들은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통나무를 들고 내려가는 것보다 굴리는 게 훨씬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때까지 자신들이 들고 내려온 통나무들을 모두 다시 산꼭대기로 들고 올라간 다음, 거기에서 굴려 내려 보냈다.
어리석음에서 통찰력이 생기고, 진보와 발전이 뒤따른다. 하지만 어리석음 자체를 통해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은 전혀 다르다. 그것은 혁명적이며 그 결과는 광기(狂氣) 혹은 구원이다. 미셀 푸코(Michel Foucault)는 “존재는 오직 고문일 뿐이다. … 삶은 감옥이 되었다. 나는 차라리 나 자신을 해치고 싶다.”고 했다.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축복이 있을지니, 라고 하지 않았던가. 너무도 어리석어 이를 깨닫지 못한다는 사실은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비록 그걸 깨닫는 순간 우리가 누리는 축복은 끝나버리고 말겠지만…. 어떻든 우리는 불행 속에서도 행복을 찾으려 한다.
요한 페테르 헤벨의 단편소설 <나는 몰라>(1811)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독일인 나그네 하나가 튤립과 애스터, 그리고 밥의 냄새가 나는 비단 향 꽃무리로 가득 찬 멋진 집을 찾아 들어갔다. 나그네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독일어로 집주인의 이름을 물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네덜란드어로 “나는 몰라”라고 대답했다. 나그네는 항구로 갔다. 항구에서 값비싼 짐을 가득 실은 배를 보고는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그 배의 주인이 누구인지 물었다. 그러자 그는 “나는 몰라”라고 대답했다. 마지막으로 나그네는 장례식이 치러지는 걸 보고 구경꾼 가운데 한 사람을 붙잡고 죽은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가 “나는 몰라”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나그네는 이렇게 외쳤다.
“아아. 불쌍한 ‘나는 몰라 씨!’ 그 많은 재산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이오. 내 비록 가난하지만 내가 죽어도 당신만큼은 누릴 수 있는데, 수의(壽衣) 한 벌 그리고 차가운 가슴 위에 로즈마리 혹은 루타(*지중해 원산의 귤과의 상록다년초)의 어린 가지 하나…. 뭐가 다를 게 있단 말이오.”
누구나 한 번은 가야 할 세상이다. 그런 내가 이 세상 소풍 끝나 돌아가는 날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거나, 그가 어떤 사람이더냐, 고 물었을 때, 그저 “나는 몰라”라 한다면 어찌 슬픈 일이 아니랴. 그래 사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 자그만 흔적이라도 남긴다면 다행한 일이겠다.
정의는 강 하나로도 경계가 지워진다.
피레네 산맥 이쪽에서의 진실은 저쪽에서는 진실이 아니다.
-파스칼, <팡세>에서
우리는 지식을 맹목적으로 믿는다. 지식이 옳기 때문만은 아니다. 다수가 믿을 때 그것은 옳고 현명하다고 인정한다. 우리가 어떤 법칙을 따를 때는 그 법칙이 유효해서가 아니다. 사람들이 법칙을 따를 때 그것은 유효하다.
신호등 앞에서는 빨강 색이 우리를 강제로 세우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그 앞에 멈춰 서기 때문에 빨강색의 구속력을 갖게 된다. 요컨대 어떤 법칙이 구속력을 갖는 건 논증의 결과가 아니라, 집단적 본능의 결과이다. 막스 여콥은 그래서 “지혜는 과거에 저지른 실수들의 기억일 뿐이다.”라고 했던가.
다시는 그리 하지 않을 것이다. 약속처럼 여러 차례 마음먹지만 이를 지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리석기 때문이다. 어리석음은 금기다. 하지만 어리석음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어리석은 행동을 치료하는 방법은 한 번 더 반복하는 일 뿐이다. 이 경우 무의식적인 어리석음은 계산된 어리석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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