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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레의 트럼펫나무 - 유혜자

Joyfule 2013. 8. 22. 10:55

 

 

  할레의 트럼펫나무 - 유혜자

독일의 동북부 도시, 할레에 있는 헨델의 생가에는 친필악보와 사용하던 악기, 작품에 대한 기록이 체계 있게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품은 대충 둘러보고 마당가운데 서있는 트럼펫나무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단풍 든 동그란 이파리들 아래로 국수가닥 같은 것이 수없이 늘어져 있는 이채로운 모습에 굵은 둥치가 받치고 있는 거목이었다. 밑 부분에 트럼펫나무라는 작은 명패가 붙어 있을 뿐 안내인과 직원에게 물어도 유래나 수령도 알 수 없어 안타까웠다. 국수가닥 같은 가는 줄기는 꽃이 지고 나서 생긴 것 같았다. 언젠가 사진에서 트럼펫을 거꾸로 매단 듯한 앤젤스 트럼펫(angels trumpet)꽃을 본 일이 있는데 아마도 그런 꽃이 피었을 것 같았다.

마당 한 쪽에서 들고 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잎을 흔들고 있는 트럼펫나무. 그 나무는 헨델의 집을 출입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를 무시하고 그냥 지나쳐버려서 울적한 마음을 지녔을까. 그들에게 들려줄 멜로디로 꽃이 피었을 때나 저버린 후에도 힘찬 트럼펫 소리를 내고 있지만 우리가 듣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눈부신 빛살너머로 온 가슴의 힘을 다해 음표의 파편들을 쏟아내고 있을 것 같았다.

헨델(Handel, George Friedrich 1685-1759)의 음악에는 화려하고 힘 있는 금관악기인 트럼펫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서 헨델의 상징으로 생각되었다. 헨델이 태어나기 전에 심겨져서 그의 성장하는 모습을 보았을까. 아니면 돌아간 후 어느 뜻있는 이가 심었을 것으로 짐작이 되었다.

헨델은 할레에서 태어났지만 25세 때부터는 주로 영국에서 활동했다. 그런데도 할레는 15, 16세기 소금의 교역지라는 명성보다 헨델의 고향이라는 사실을 크게 자랑하고 있다. 구 시가지 광장에는 그의 늠름한 동상이 서 있고 시가지에도 헨델의 생가를 알리는 안내판을 곳곳에 세워 놓고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게 하고 있었다.

고향에서 오르간과 작곡의 기초를 공부한 헨델은 18살에 함부르크로 가서 3년 동안의 공부를 마친 후 다시 이탈리아로 갔다. 이탈리아의 오페라에 매료되었던 그는 25세에 하노버 궁정악장이 되어 일하던 중, 휴가 때 영국에 가서 공연한 오페라가 크게 성공하자 계속 영국에 머물면서 영국이 자랑하는 국민작곡가로 생애를 보냈다. 그러나 영국에서의 삶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오페라 극장 경영이 한때는 잘 되었으나 실패와 성공 등 부침을 거듭하다가 52세(1737)때는 경제파탄과 건강악화로 작곡자 겸 경영자의 종지부를 찍어야 할 형편에 놓였었다.

다행이도 젊은 날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오라토리오 작곡을 51살 때부터 시작한 헨델은 왕성한 창작력으로 계속 좋은 작품을 써서 호응을 얻었다. 오늘날에도 사랑 받는 <메시아>의 성공은 그의 음악생명을 확고하게 연장시켜 주었는데, 무리를 했던지 오라토리오<입다>를 작곡하던 56세 때 시력을 잃고 말았다. 그런데도 흥행실패나 경제파탄 등 역경을 이겨냈던 헨델인지라 좌절하지 않고 그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의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오페라 지휘는 불가능했지만 오라토리오 상연의 지휘를 맡아 하면서 틈틈이 옛날 작품들을 고쳐 쓰는데도 힘썼다.

거대한 산은 어디에서 보거나 우뚝하게 보이지는 않다. 지표에 따라 얕은 곳에서 보면 올려다보게 되고 높은 데서 보면 가슴으로 육중하게 다가오는 무거운 존재이다. 거대한 산 같은 헨델도 고국과 영국에서 위대한 음악가로 인정받다가 74세로 세상을 떠났다. 영국에서는 그의 위업을 기려 그의 유해를 영국인의 최고 영예인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모셨다.  

마르크트 광장에서 고향을 지키고 있는 동상 앞에서는 많은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 동상이야 수많은 가을을 지켜보았겠지만, 뒤늦게 가본 나는 흩날리는 낙엽 속에서 어렸을 때의 꿈이 퇴색하여 날리는 것 같아 허전한 마음으로 돌아서야 했다.  

쓸쓸한 마음으로 꽃이 없는 트럼펫나무를 올려다보다가 화려한 불꽃이 작렬하는 듯한 <왕궁의 불꽃놀이>가 생각났다. 야외음악사상 최고걸작으로 평가 받는 <왕궁의 불꽃놀이>.을씨년스러운 가을바람에  화려한 불꽃놀이 음악은 생각만으로도 위로가 될 것 같았다. 그의 나이 64세 때인 1749년, 영국은 프랑스와 평화조약을 맺었다. 영국황제 죠지 2세는 8년이나 계속된 긴 전쟁에서 해방된 기쁨을 축하하는 대규모 불꽃놀이를 계획하고, 헨델에게 그 행사를 위한 식전음악 작곡을 의뢰했다. 헨델은 군용악기를 쓰라는 영국황제의 요구에 따라 당시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대 합주 편성의 음악을 작곡했다. 트럼펫, 호른만도 9개씩이나 되고 오보에는 무려 24대나 된다. 그 밖의 다른 관악기도 전례가 없던 많은 숫자로 57인의 대 합주 편성이었다. 특히 불꽃놀이가 있었던 런던 그린파크의 초연에는 그보다도 관악기를 더 늘려 100개 이상이나 사용했다고 한다.

<왕궁의 불꽃놀이>는 1곡 서곡과 2,3,4,5곡으로 된 모음곡인데 후일 자이로이트가 편곡한 작품에는 2곡 ‘평화’가 한곡 더 들어가 6곡으로 되어있다. 특히 5,6곡은 트럼펫이 주류를 이루는 행진곡풍으로 ‘환희’란 표제가 붙어 있다. <왕궁의 불꽃놀이>중 가장 밝고 인상적이어서 현재도 이 부분이 자주 연주된다.

눈부신 불꽃놀이는 순간적인 생명이지만 환희를 준다. 자신은 사라지면서 어두운 공간에서 벗어나 빛의 세계로 인도하고 환상의 세계를 꿈꾸게 한다. 그처럼 화려한 음악은 좌절에 빠진 이에게 아픔을 잊게 해주고 환희를 기대하게 할 것이다.

이 음악을 들으며, 순간 사라지는 불꽃과 음악의 영원함을 생각해본다. 하늘로 솟아오를 수 없는 괴롬과 절망은 불꽃처럼 스러지고 소망의 세계는 더욱 넓어질 수 있는 것을.

트럼펫나무는 눈여겨 봐주는 이 없이 호젓이 서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내일, 다음 계절엔 내안의 불꽃을 피워보라고 다독여 줄 것 같았다. 자신도 단풍들고 쇠잔해가면서 뜨거운 열망과 그리움을 지니고 있다고.

발걸음을 돌려 떠나려는 내게 트럼펫 나무는 시든 잎 하나를 떨어뜨려 이별의 표적을 보여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