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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달팽이 인간의 마지막 도착지

Joyfule 2024. 3. 19. 11:36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달팽이 인간의 마지막 도착지  

 

나와 친한 고교선배가 있다. 나이 팔십을 바라보는 그는 컴퓨터의 자판조차 치지 못한다고 했다. 고위직 법관으로 있을 때 비서가 다 해주는 바람에 배우지 못했다고 얼마 전 만난 그 선배의 부인이 이런 말을 했다.​

“남편이 그 나이에 주민센터 컴퓨터 교육반에 등록했어요.아침 열시부터 오후 여섯시까지 점심도 먹지 않고 컴퓨터 공부를 하고 있어요.”​

노인이 하루에 여덟시간 이상을 집중적으로 공부한다는 것이다. 그 선배는 원래 그런 기질이었다. 고시 공부 시절 삼복 더위에 다락방에서 옷을 벗고 공부하다가 궁둥이 살이 뭉개지면서 팬티의 섬유와 뒤섞인 채 굳어져 응급실에 간 적도 있었다. 그는 사법고시 수석합격자였다. 노력뿐 아니라 그는 좋은 머리도 물려받은 것 같았다. 아버지가 대법관이었다. 그가 법관이 된 이후 독일유학을 갔을 때 이년만에 학위를 땄다. 그의 재능에 감탄한 독일인 교수가 대학에 남으라고 권유하기도 했었다. 그는 체력도 대단했다. 판사를 그만두고 오십대 후반의 나이에 스키를 배웠다. 얼마 시간이 흐르지 않아 그는 험한 코스가 있는 해외로 스키를 타러 갔다. 일본 스위스를 거쳐 시베리아와 남극가까이 있는 푼타아레나스 스키장까지 순례한 후 스키에 관한 책을 내기도 했다. 컴퓨터를 교육받던 그 선배가 며칠 전 내게 이런 내용의 카톡을 보내왔다. ​

‘주민센터 컴퓨터 선생님의 권유로 일년에 한 번 있다는 컴퓨터 경진대회에 나가봤어. 내가 나이를 먹었는데도 예선을 통과하더라구. 신기했지. 이어서 본선 대회가 열렸는데 다섯명 수상자 안에 들어갔어. 잘됐다 싶었는데 내가 일등이라면서 국무총리상을 받으라고 하더라구. 이왕 컴퓨터 공부를 시작한 바람에 좀 더 하기로 했어. 다섯명만 수강신청을 받아 가르치는 반이 개설됐어. 명색이 내가 일등인데 빠지기가 곤란한 입장이 된거야.’​

그 선배는 성품까지 온유했다. 그 정도면 인간명품이 아닐까. 같은 인간이라도 차이가 참 많이 나는 것 같다. 나는 컴퓨터를 십 분만 공부하고 있어도 머리속이 얽히고 전선이 타는 냄새가 나는 느낌이다. 스키도 타지 못한다. 그 선배를 보면 따라가지 못할 아득한 뒤쪽에서 달팽이같이 기어가는 것 같다. 내 주위를 보면 부자들도 많다. 타고날 때부터 재벌의 아들도 있고 혼자 재벌급으로 성공한 친구들도 있다. 돈이 많은 것도 하늘이 복을 주거나 그걸 잡는 특수한 재능이 있어야 한다는 걸 알았다. 그런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키가 크고 우수가 깃든 것 같은 분위기 있는 미남들을 보면 배 나오고 못난 내가 부끄럽기도 했다.​

솔직히 고백하면 고교시절부터 나의 능력에 절망했었다.​

껍데기만 명문고교의 교복을 입었지 알맹이는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짝퉁이고 가짜 같다는 느낌이 나를 지배했었다. 그런데 자신의 능력에 절망하는 사람은 나만이 아닌 것 같다. 일찍부터 자기에게 절망하여 삶을 포기하는 친구도 더러 보았다. 많든 적든 누구나 자신의 약점을 안고 사는 걸 뒤늦게야 알았다. 강자도 약자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 자기만 능력이 없다고 오해하는 것 같다. 정도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이 비슷한 고민을 하는 것 같았다. 위를 보면 절망하고 아래를 보면 위로를 얻는다고 하지만 시선은 자꾸만 위로 행했다. 살기위해 나름대로 열등감을 극복하는 방법을 연구해 봤다. ​

먼저 내 주제를 파악하는 게 중요했다. 내가 어떤 존재인가는 부모의 기질과 운명을 보면 짐작 할 수 있었다. 콩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고 했다. 아버지는 콩이 팥이 안되고 피래미가 상어가 되는 꿈을 꾸면 힘만 든다고 내게 충고했었다. 그래도 모든 걸 운명론으로 부모의 DNA로만 해석하는 건 좀 억울했다. 그래도 나는 그 틀을 벗어나고 싶었다. 한 실험을 우연히 봤다. 종이 위에 원을 그려놓고 안에 있는 개미에게 원을 밟지 않고 밖으로 나오라고 하면 그건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인간은 그 개미를 가볍게 들고 원 밖으로 나오게 해 줄 수가 있다. 신이 그 역할을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는 절대자라는 그 분 앞에 먼지와 같은 나의 존재와 무능력을 고백했다. 그렇게 납작 엎드리고 간절해야 도움을 받을 것 같았다. 그게 믿음이라는 게 아닐까. 성경을 보다가 재미있는 생각이 들었다. 그 분은 느린 달팽이도 노아의 방주 속으로 기어 들어가게 했을 것 같았다. 달팽이는 달팽이의 삶이 있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느리게 살았다. 나는 일본어 공부를 하루 한 단어만 외우기로 했다. 한 단어면 몇 초도 안 걸린다. 어려운 책은 하루에 한페이지씩만 읽었다. 몇 분 안걸린다. 아름다운 문장도 하루에 한 개만 익히기로 했다. ‘야금야금 천천히 그러나 쉬지않고’가 나의 행동목표였다. 사람들은 시간이 없다고 했다. 일하고 퇴근하고 밥먹고 텔레비젼 보고 자면 다음날 출근이 바쁘다고 했다.

 

작은 달팽이의 삶은 곳곳에서 공간과 시간을 발견했다. 출퇴근하는 전철 안의 시간은 엄청났다. 이십대 매일 안양으로 가는 전철에서 세계사와 독일어를 공부했다. 직장이라는 곳은 대기하는 시간이 많았다. 변호사로 법정에 가도 대기하는 시간이 상당부분을 차지했다. 야금야금 뭔가를 하는데 특별한 공간은 필요하지 않았다. 시간이 없다는 사람을 보면 안타까웠다. 시간은 있는 것이 아니라 쪼개어 만들어내는 게 아닐까. 나와는 다른 우수한 사람들의 능력에 질리지 않기로 했다. 만리장성은 육억개의 돌로 되어 있다고 들었다. 콜롯 세움은 육천만개의 벽돌로 쌓았다고 하던가. 그렇지만 모두 한개의 돌로 부터 시작됐을 것이다. 능력이 없는 나라도 한 개의 돌쯤은 가져다 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달팽이의 삶은 그정도면 되는 것 아닐까. 재능도 노력도 인간은 타고난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내 안에 들어온 신인 성령은 그 한계를 벗어나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