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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이 정도 쯤이야

Joyfule 2024. 3. 18. 18:33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이 정도 쯤이야

 

차를 타고 가면서 유튜브에서 흘러나오는 가수 김수철씨의 강연을 무심히 듣고 있었다. 나의 뇌리에는 작달막한 남자가 커다란 기타 뒤에서 양다리를 앞뒤로 활짝 벌리고 폴짝 뛰던 광경이 남아 있다. ​

“벌써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른지 오십년이 넘었습니다. 저는 그 세월 동안 매일 두 시간 이상 기타 연습을 해왔습니다. 나이 먹은 지금도 합니다. 향상을 위한 게 아닙니다. 유지하려고 해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심지가 들어있는 말이었다. 그에 대한 나의 선입견이 너무 가벼웠던 것 같다. 그의 강연이 계속되고 있었다.​

“동시에 두 가지를 할 수 없어요. 돈이 안 나오더라도 한가지 일에 전념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가수가 돈이 없다고 해서 식당을 운영하면서 에너지를 쏟으면 안 되죠, 저는 평생 국악도 공부했어요. 돈을 생각하면 물 안나오는 우물을 판 거죠. 그래도 나중에 임권택 영화감독을 만나 ‘서편제’라는 영화의 음악을 맡았어요. 전 국민에게 우리의 국악을 인식시키는 계기가 됐죠.”​


그의 말을 들으면서 김수철이라는 가수에게 ‘작은 거인’이라는 별명이 붙여진 걸 이해할 것 같았다. 무대에서 즐겁게 뛰노는 것 같은 그의 현상만 보고 그 뒤의 깊은 내면을 보지 못한 나의 가벼움이 느껴졌다. ​

한 유명한 화백의 변호사가 되어 자연스럽게 그의 삶을 들여다보게 됐다. 그는 평생 드로잉연습을 안 한 날이 없는 것 같았다. 인생에서 자그마한 들꽃이라도 피우려면 인내하면서 자기를 괴롭혀야 하는 것 같았다. 예술가 만이 아니었다. 내가 존경하는 일본의 현자는 죽을 때까지 매일 성경을 보며 연구했다. 매일 매일 베를 짜나가듯 반복된 행위를 일생 계속하는 건 인내를 요구한다. 자연스럽게 ‘이 정도 쯤이야’하고 틈을 내 쉬면서 느슨해 지는 게 인간이다. 그런 이완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런데 ‘이 정도 쯤’이라는 틈의 넓이와 의미가 인생에서 갈림길이 되는 것 같다. 내가 고시공부를 하던 시절 싫증이 나면 ‘이 정도 쯤이야’하고 영화도 보고 데이트도 했다. 그런 다음 날이면 노는데서 온 피곤 때문인지 정상궤도로 진입하지 못하고 또다시 소설을 뒤적이기도 했다. 그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나 뿐 아니라 고시낭인들에게 ‘이 정도 쯤이야’하는 자기변명이 병균같이 내면에 붙어있기도 했다. 그렇게 자위하며 불편한 일을 피하다가 늙을 때까지 불편한 채로 남게 되는 수도 있는 것 같았다. 삼십년 가까이 고시원의 한 평짜리 방을 벗어나지 못한 고시낭인도 있었다. 몰두해서 삼사년 공부하면 합격할 줄 알았는데 그렇게 됐다는 것이다. 여러 방면에서 ‘이 정도 쯤이야’라는 지뢰가 존재하고 있었다. ​

나는 사법시험의 면접관이 되어 검사를 지망하는 사람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본 적이 있다. ​

“사업을 하는 아버지의 친구가 성의로 약간의 경제적 지원을 해주겠다고 제안했을 때 어떻게 하겠나?”​
“성의라고 하시는데 약간이라는 정도 쯤이면 받아도 될 것 같습니다.”​
“그 정도 쯤이라는 걸 금액으로 말한다면 얼마나 될까?”​
“월급 정도 쯤이면 괜찮지 않을까요?”​
“일년이면 수천만원이 될텐데 그걸 그 정도쯤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너무 많은가요?”​

그가 순간 당황하는 표정이었다. ​
살다보면 ‘이 정도 쯤이야’하고 스스로에 대해 관대해 지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거대한 성벽의 돌 하나를 뽑는 것과 비슷한 건 아닐까. 당장은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 쯤이야’할 때마다 돌들이 뽑혀져 성은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어느 순간 급하게 허물어져 버릴 것이다. 성공은 자기에게 엄격하고 자기를 불편하게 해야 오는 게 아닐까. 굳이 성공하고 싶지 않으면 자신에게 관대해 지면 된다. 그런 성공도 그 순간순간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미완의 연속이었다. 미완을 미완이 아니도록 하면 또 다른 미완이 생겼다. 인간의 일생은 그 미완의 상태를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무엇을 하든지 한 걸음 한 걸음 매일의 생활 그 자체가 절대적인 것이 아닐까. 정말 중요한 건 목적이 아닐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