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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벗들과의 정담(情談)

Joyfule 2024. 3. 10. 23:50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벗들과의 정담(情談)


한 집안의 소송을 맡았다가 우연히 그들 조상의 일기를 읽은 적이 있었다. 조선의 선비였던 조상은 과거의 일차 시험에 합격하고 성균관에 묵으면서 이차 시험을 준비했던 것 같다. 그 선비는 엉뚱한 취미가 있었던 것 같다. 공부보다는 벗들과 정담을 나누는 걸 더 즐거워했던 것 같다.그에게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그가 지은 노랫말에 당시 장안 기생들이 곡을 붙여 부르면서 히트가 된 것 같다.​

그 선비가 한양의 성균관에서 보낸 세월이 십 년쯤 흘렀다. 다른 선비들은 과거에 합격을 해서 벼슬길로 나섰는데 그만 낭인이 되어 혼자 남았다. 성균관의 마당에 낙엽이 떨어지던 가을 어느 날이었다. 키가 후리후리한 선비 한명이 손에 술병을 들고 그 선비를 찾아왔다. 이미 노래로 유명해진 그와 정담을 나누기 위해 온 것이다. 그들은 단번에 벗이 되어 술단지를 놓고 정담을 나누었다. 키가 큰 선비가 퇴계 이황이었다. 그리고 장안에 히트곡을 유행시켰던 선비가 호남의 대표적인 학자인 하서 김인후였다. 멋진 벗들의 만남인 것 같았다. 낭만적 기질의 하서선생은 그 후 과거에 급제하고도 오래지않아 관직을 그만두고 낙향했다. 장성의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작은 정원을 만들고 산에서 난초의 뿌리를 캐다가 심었다. 포도주를 만들어 인근의 벗들과 즐기기도 했다. 소쇄원이라는 정원을 만든 선비와 벗이 되어 정담을 나누었다고 일기에 적혀 있었다. 그런 것들이 진한 맛이 우러나는 고급 즐거움이 아닐까. 그 선비의 일기를 통해 나는 향기로운 삶을 배웠다고 할까. ​

나도 동해의 한적한 바닷가로 내려와 살고 있다. 서울과는 달리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느낌이다. 중소도시의 여유가 느껴지는 곳이다. 근래에 새로 생긴 벗들이 있다. 서로간 마음이 흐르면 순간을 스쳐도 벗이라는 생각이다.​

옥계의 해변 마을로 내려와 작은 집에서 십사년째 산다는 노인은 바닷가의 짙은 해무(海霧)가 춤을 추며 자신의 허리를 감싸기도 한다고 했다. 그는 한시를 짓고 작은 정원을 가꾸고 로스팅한 커피를 벗들과 함께 하면서 정담을 나눈다고 했다. ​

지리산 산골 마을에서 혼자 십이년째 살면서 참선을 하고 경전을 읽는다는 수필가도 근래에 새로 만난 좋은 벗이다. 그는 차를 운전해 세상을 떠돌아다니면서 글을 짓는다. 정담을 나누는 나의 좋은 벗이 됐다.​

금년 봄에는 소년 시절부터 오랜 세월을 함께 한 벗들과 일본의 시골 온천 동네를 여행하며 정담을 나누었다. 칠십고개를 넘어선 노인들이 편한 잠옷을 입고 다다미 방에서 발을 길게 뻗기도 하고 벽에 편하게 기대기도 한 채 입에서 나오는 대로 편하게 얘기들을 했다. 우리들은 까까머리에 검정교복을 입은 소년 시절부터 칠십 노인이 된 지금까지 세월을 함께 한 벗들이다. 대학 시절 우리는 함께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고시원이나 깊은 산골의 암자에 같이 들어가기도 했다. 우리들은 암자의 뒷방에 모여앉아 속을 터놓고 낄낄대며 수많은 얘기들을 나누었다. 가난을 얘기하기도 하고 아픈 사랑을 고백하기도 하고 각자의 분홍빛 꿈을 말하기도 했다. 서로 비밀이나 흉허물이 없었다. 세월이 오십년이 흐르고 우리들은 눈을 가득 뒤집어 쓴 소나무 같이 모두 머리가 하얗게 바랬다. 각자 있던 자리에서 물러나 우리는 다시 모두 자연인이 됐다. 장관을 했던 친구는 재활용의 헌 옷들을 차의 트렁크에 가득 싣고 바자회에 가져다 주다가 불법주차 딱지를 받고 웃음을 터뜨렸다. 재판장을 하던 친구는 거리악단을 만들어 노숙자촌에서 버스킹연주를 한 상황을 신나게 말한다. 법원장을 지낸 친구는 쪽방촌에 도시락 배달하면서 본 광경을 털어놓기도 했다. 우리들은 이따금씩 재래시장 구석의 허름한 국수집에 들려 점심을 먹는다. 그리고 디저트로 길거리 노점에서 파는 호떡을 먹으며 거리를 걷는다. ​

산다는 게 뭘까. 증권시세가 오르내리는 그래프를 보면서 신경을 곤두세우는 걸까. 정치권을 기웃거리면서 자리를 하나 얻는 게 쾌락일까. 어디 사외이사자리라도 하나 얻으려고 다녀야 할까. 좋은 벗들을 만나 정담(情談)을 얼마나 나누었느냐가 아름다운 인생의 결산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