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에세이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영원한 가치를 가진 화폐

Joyfule 2024. 3. 12. 23:38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영원한 가치를 가진 화폐


몇몇 친구들이 일본 여행을 갔을 때였다. 그 중 한 친구는 수시로 스마트 폰을 통해 증권시세를 살폈다. 내 눈에는 돈에 묶여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사무실 근처 주차장 앞에서 붕어빵을 만들어 파는 남자를 보았다. 장사가 잘 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는 밀리는 손님 때문에 오줌을 참아가면서 붕어빵을 만들고 있었다. 그는 몫 좋은 그 자리를 지켜내기 위해 비오는 날이나 휴일에도 그 자리에 나와 있다고 했다. 내가 아는 일식집을 경영하는 부부도 냉면집 주인도 고깃집 노인도 돈이 들어오는 계산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큰 빌딩을 가지고 있는 친구가 있다. 돈은 많지만 사건 사고로 항상 전전긍긍이다. 임차인들과 소송이 끊이지를 않고 있다. 한 달에 들어오는 임대료가 엄청나다. 세무조사가 두려워 여행도 제대로 못한다. 그들은 모두 돈이 잘 벌리는 감옥에 갇혀 있는 것 같다. ​

나는 부자들을 많이 봤다. 이천억대쯤 가진 부자친구에게 물었다.​

“자네한테 돈은 어떤 의미야?”​

“천억대가 넘으니까 그 자체로 사회적인 힘이고 지위가 되더라구. 부자라고 하니까 사람들이 와서 그냥 허리를 굽히고 머리를 조아리는 거야. 그들에게 아무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일정액 이상의 돈을 가지고 있다는 그 자체가 신분 비슷한 거지. 동창들도 내 앞에 와서 눈치보고 기는 거야” ​

남이 나보다 약간 돈이 많으면 배가 아파한다. 천배가 많으면 두려워하고 만 배가 많으면 노예가 된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부자소리를 듣는 내가 두려운 건 재산의 총액이 줄어드는 거야. 그건 내가 획득한 지위의 상실을 의미하는 거지. 내가 가진 돈의 총액이 줄어들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해서 돈을 쓰지를 못하겠어.” ​


가난한 사람들은 돈에 대해 어떨까. 그들 역시 돈 걱정에 영혼이 묶여 있다. 월급을 갈급이라고 표현하면서 돈에 끝없는 갈증을 느끼고 있다. 돈이 없어 소외되고 가난이 모든 불행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돈만 있으면 행복의 무지개가 뜰 것 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수시로 로또복권들을 사고 다단계 행사장 주변을 기웃거리기도 한다. 그러다 사기꾼에게 걸려 있는 것 마저도 빼앗긴다. 감옥에 가보면 돈복이 없는데 욕심을 부리다가 그곳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부자는 부자대로 저세상에 가지고 가지 못하는 돈을 움켜쥐고 죽고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대로 돈돈 하다가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

돈은 하늘 위를 높이 나르는 기러기 같다. 누구나 볼 수 있지만 아무나 그걸 잡을 수는 없다. 갈구한다고 돈이 오는 게 아니고 돈 버는 방법을 공부한다고 부자가 되지도 않는 것 같다. 각자 타고난 그릇이 있고 거기에 채울 정도만 돈은 주어지는 것 같다. 부자와 가난한 이의 경계도 애매할 때가 있다. 수천억 재산이 있어도 곰탕 한 그릇 소주 한병 사먹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부자영감이 카트에 폐지를 줏으러 다니는 걸 본 적이 있다. 변호사인 내가 상담료 십만원을 내라고 하니까 도망가는 재벌회장님을 보기도 했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이었다. 해변가에서 종이컵에 커피를 담아 팔면서도 힘든 사람을 위해 금반지를 기부하는 여인을 봤다. 그 여인은 부자였다.

더 가지고 싶어하는 사람은 가난뱅이고 베푸는 사람은 부자였다. 몇 년 전인가 돈욕심에 마약에 손을 대 사형선고를 받은 중국재벌의 말이 내 기억에 남아있다. 가게 하나 가지고 가족하고 재미있게 살 걸 괜히 재벌이 됐다고 후회하더라는 것이다. 돈이 어느정도만 있으면 될 지를 알려주는 말이었다.
요즈음 투기대상이 되는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을 보면서 나는 ‘영원한 가치가 있는 화폐’를 상상해 보았다. 저 세상 심판대 앞에서 이세상 돈은 전혀 의미가 없다. 가져갈 수도 없다. 예수는 하늘나라에 적립할 ‘영원한 가치가 있는 화폐’를 구하라고 했다. 그 화폐를 이 세상에서 만들면 즉시 하늘의 계좌에 적립된다고 했다. 도둑맞을 우려가 없다고 했다. 영원한 가치를 가진 화폐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부자가 착하고 가난한 사람을 위해 돈을 쓰면 그 순간 그 돈이 영원한 가치를 가진 하늘의 화폐로 환전이 되는 게 아닐까. 가난한 사람이 선을 행하면 그 선이 영원한 가치를 가진 화폐가 되는 건 아닐까.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