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열정과 몰입
잠시 서울로 올라와 중학교 삼학년인 손녀를 레스트랑에 불러내어 용돈을 주고 음식을 기다릴 때였다. 손녀가 무릎 위에 패드를 올려놓고 뭔가 하고 있었다. 화면 쪽으로 시선이 갔다. 손녀는 그 짧은 순간 수학 문제를 풀고 있었다. 나의 마음이 흐뭇해졌다. 손녀는 시간을 쪼개서 사용할 줄 아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환경에서도 몰입을 하는 능력이 생긴 것 같았다. 그런 점이 중요한 것 같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동시상영을 하는 변두리의 삼류극장에 자주 갔다. 동네 친구의 아버지가 극장의 사장이었기 때문에 수시로 영화를 공짜로 볼 수 있었다. 나는 영화를 보고 막간에 극장 휴게실에서 공부했다. 집보다 극장 휴계실에서 하는 공부가 훨씬 잘됐다.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지하철은 나의 도서관이었다. 법정에서 기다리는 동안은 공부하는 시간이었다. 조각 시간을 이용해 원고지 한 두 장씩 글을 써 나가기도 했다.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카페 구석에서 쓸 때도 있었고 대합실이나 거리의 벤치에서 쓰기도 했다.
젊은 날 나는 어느 정도 돈을 벌고 일선에서 물러나 여유로운 시간이 되면 본격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이 칠십이 되면서 사회에서 물러나 바닷가에 나의 집필실을 마련하고 노년의 여백을 본격적으로 채우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한 이년을 그렇게 살아보니 기존의 관념과 노년의 현실이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삶에 쫓기면서 순간순간 조각 시간을 이용해서 몰입했던 시간이 밀도가 있었던 삶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다. 하고 싶은 것들이 장애를 받았던 순간 열정은 더 강해졌던 것 같다. 그리고 시간이 없을수록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더 몰입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십오년전 쯤 어떤 일로 만났던 삼십대 여성 대필작가의 고백이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녀가 이런 말을 했었다.
“저는 작가가 되기 위해 국문학과에 들어갔어요. 등록금을 내기 위해 음식점 점원, 옷집 점원, 골프연습장 캐디등 안 한 일이 별로 없어요. 저는 그냥 글이 좋았어요. 짧아도 시간이 날 때마다 쓰고 또 썼죠. 읽기도 많이 읽었어요. 읽을 거리가 떨어지면 국어사전이나 의성어 의태어 사전을 들추면서 외웠어요. 먹고 살기 위해 대필작가가 됐죠. 남의 글을 써 줬지만 저는 이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제가 형상화하는 작품 자체에서 희열을 느꼈죠. 내가 써 준 작품을 가지고 등단하거나 이름을 내는 사람들을 보면 그림자인 나보다 더 허위자체였어요. 뒤늦게 가난한 소설가의 아내가 됐어요. 좋은 작품을 쓰라고 남편을 깊은 산으로 보냈어요. 남편이 좋은 글을 써서 돌아오는게 제 보람이예요. 대필을 시작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십삼년이 됐어요. 내 이름을 가지고 좋은 작품을 써보려고 항상 마음은 먹고 있어요.”
나는 그녀에게서 열정과 순간의 몰입능력을 엿보았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그녀는 버지니아 울프같이 좋은 작품을 썼으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호랑이만 그리는 무명의 여성화가를 만난 적이 있다.
그녀가 이런 말을 했다.
“호랑이만 그리는 화가가 되기로 했어요. 매일 동물원에 가서 종일 시베리아 호랑이를 보면서 털 한 올 한 올까지 관찰했어요. 사진을 찍고 또 찍었어요. 한 오천장쯤 직었나? 그리고 호랑이 그림을 그리고 또 그렸죠. 마지막에는 캔버스에서 생동하는 호랑이가 나타나고 그게 권위있는 미술 잡지에 실리더라구요.”
인생에서 정말 열정이 있고 몰입할 수 있다면 돈과 환경은 그 다음이 아닐까.
오랫동안 창고와 공장에서 하급노동자를 한 시인이 있다. 그는 창작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창작을 하는 사람은 탄광 속에서 하루 열여섯시간을 일해도 창작을 합니다. 작은 방 한 칸에 애가 셋이고 정부 보조금으로 생활을 해도 창작을 합니다. 도시 전체가 화재와 지진으로 흔들려도, 고양이가 등을 타고 기어올라도 창작을 할 사람은 창작을 해 냅니다. 다른 말은 모두 변명입니다.”
미국시인 찰스 부코스키의 말이다.
돈이 있어야 시간과 자유를 얻을 수 있고 그런 이상적인 환경이 되어야 뭔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조건이 되어야만 뭔가 할 수 있다는 사람은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할 수 있다. 이상적인 환경은 외부가 아니라 내면에 있는 게 아닐까. 내가 최우선으로 여기는 그 일에 대한 열정과 몰입이 그게 아닐까. 나는 꺼져가는 열정에 불을 지피려는 데 잘 되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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