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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집짓기 놀이

Joyfule 2024. 9. 21. 12:43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집짓기 놀이   

 

바닷가에 집을 사서 지금 몇 달째 수리를 하고 있다. 처음에는 지역의 건축업자를 소개받아 일괄적으로 맡기려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를 믿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입으로는 뭐든지 쉽게 말하는데 되는 게 없었다. 돈은 먼저 받아챙기려 하고 일은 “나중에”라고 하면서 미루었다.

얼마 전 한 방송에서 건축사기를 당한 사람의 사연을 들었다. 업자에게서 아직 마무리 공사가 남은 전원주택을 샀다고 했다. 당장이라도 미진한 부분을 완공시킬 것 같던 업자의 태도가 돈을 받은 후 달라졌다는 것이다. 거실마루도 덜 깔았고 정원의 잔디도 깔 예정이었다. 집을 산 사람이 업자에게 아무리 독촉해도 “다음에”라고 하며 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다음에”라는 말은 사기라고 했다. 나는 ‘다음에’라는 건축업자에게 바쁘신 것 같은데 다음에 보자고 하면서 인연을 끊었다. 내가 직접 집수리를 하게 됐다.

인력사무실을 통해 일용 잡부부터 시작해서 그때그때 조적, 미장, 설비, 배관, 칠, 타일, 전기등 분야마다 인부들을 구하기로 했다. 유튜브로 공부하면서 해나갔다. 내가 건물을 수리하는 걸 보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마디씩 툭툭 던졌다. 나이 사십이 넘어 집을 직접 짓다간 속이 상해서 죽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젊은 한국인 노동자는 구할 수 없었다. 러시아인들이 더러 있었다. 나이 먹은 목수를 구했다가 애를 먹었다. 그는 내게 건물에서 나오는 폐목재를 달라고 했다. 가져가라고 했다. 그는 일을 하지는 않고 자기가 가지고 가서 활용할 목재들의 못을 빼고 다듬는 일만 하는 것 같았다. 왜 그가 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밥을 사면서 말없이 그의 눈을 쳐다 보았다. 그는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런 비굴한 얌체 품성은 고쳐질 게 아닌 것 같았다. 다시 그를 부르지 않았다.

노동을 하는 사람마다 임금뿐 아니라 인간 자체에도 정가표가 있는 것 같았다. 얌체도 보았다. 인부들은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일을 하지 않았다. 날씨가 추워도 일할 사람이 없었다. 일을 한 날보다 낡은 집을 텅 비워둔 날이 더 많았다. 나는 마음의 방향을 바꾸었다. 산토리니 섬에서 봤던 하얀벽에 파란 창문이 있는 장난감 같은 바닷가 집을 꿈꾸었다.

그 꿈을 접고 모든 걸 ‘주님 마음대로’ 하시라고 했다. 나는 급하지 않기로 했다. 인부를 구하지 못하면 그냥 있었다. 근심걱정을 그분한테 떠넘기니까 그분이 직접 일을 하시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노인 일꾼들이 주변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서울에 있는 나보다 세 살 아래인 칠쟁이영감이 자기 봉고차에 공구를 싣고 서울과 동해를 오가면서 틈틈이 일을 해 주었다. 우리가 살던 집을 손봐주던 영감이었다. 그는 낡은 집의 천정과 벽에 박힌 녹슨 못들을 꼼꼼하게 뽑아내고 낡은 벽지를 깔끔하게 뜯어냈다. 나는 그의 보조인 일용잡부 노릇을 하면서 바닥의 쓰레기들을 마대자루에 넣어 가져다 버렸다.

수은주가 영하 십육도아래로 내려간 날 밤이었다. 분사기로 녹색 페인트를 천정에 뿌릴 때 그의 얼굴에 분말들이 떨어져 내려 녹색이 된 그의 얼굴을 보고 서로 웃었다. 칠십가까운 나이인데도 그는 몸을 아끼지 않았다. 그가 지시하는 대로 나는 철물점에 가서 커다란 사각양철통에 담긴 고체 에타놀을 사왔다. 거기다 불을 붙여 칠한 곳곳에 놓아두었다. 그래야 얼어붙지 않고 칠이 마른다는 것이었다. 오래된 건물의 매캐한 먼지와 독한 칠 냄새 그리고 에타놀이 타는 공기 속에서 나는 노동을 체험하고 열심히 일하는 칠쟁이 영감을 보면서 감동했다. 일당이 비싸다는 생각이 없어졌다. 그가 달라는 대로 주겠다고 했다. 하나님한테 맡기니까 갑자기 영감 노동자들이 다가왔다. 조적을 하고 미장을 하는 영감은 한밤중에도 와서 일을 해 주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집이 완성되어 가고 있다. 적당히 촌스러운 집이다. 건물 외벽의 색상부터 시작해서 창문이나 전등이나 나의 계획대로 된 게 별로 없다. 건축도 내가 겪은 세상들이나 비슷한 것 같았다. 어떤 집이라도 나는 받아들이고 감사한다. 세상에서 마주치는 일들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다. 오늘도 공사는 없다. 바닥 콘크리트가 마를 때까지 내가 일을 중단시켰다. 오늘도 먼지가 쌓인 바닥에 앉아 기도로 그분께 일을 부탁하고 나는 이층 옥상으로 올라갈 계획이다. 동해항의 물결을 보고 싱그러운 바람을 느끼면서 막춤이나 한번 추고 올까 생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