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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우리들의 기본자세

Joyfule 2024. 3. 24. 17:42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우리들의 기본자세  

 

화가 김씨와 박씨는 서로 다른 유파에 속해있어서 사이가 좋지 않았다. 어느 해 김씨가 미술대전에 작품을 냈는데 마침 박씨가 심사위원장이 되었다. 박씨는 김씨의 대선배였다. 심사는 막바지에 이르러 마침내 최종심이 진행되고 있었다. 심사위원장인 박씨의 낙점에 따라 당락이 결정되는 순간인 것이다. 박씨는 문득 김씨의 작품 앞에 멈추어 섰다. 순간 박씨의 얼굴이 벌레라도 씹은 듯 잔뜩 찌푸려지면서 “개새끼”라는 욕을 내뱉었다. 옆에서 그 모습을 사람들은 김씨가 결국 낙선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속으로 그를 동정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다음순간 심사위원장인 박씨는 “개새끼, 그래도 그림 하나는 잘 그린단 말이야”라고 말했던 것이다. 김씨의 작품이 입상했음은 물론이다. 시기와 미움을 극복하고 상대방을 인정하는 자세였다. 예전에 읽었던 어떤 글의 내용이다.​

내가 쓴 글을 보고 종종 비판을 하는 친구가 있다. 작은 오류라도 발견하면 그걸 지적하면서 혼을 냈다. 그의 비판뒤에는 몇 가지 감정의 색이 보이는 느낌이었다. 울컥하는 김에 반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더 나아갔다가는 자존심을 다투는 불필요한 논쟁이 될 것 같았다. 논쟁은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온 친구와의 거리를 멀어지게 할 것 같았다. 논쟁에서 이겼다고 해도 그 승리는 아무런 값어치가 없다는 생각이다. 나는 반대로 나가보자는 마음을 먹었다. 그의 장점을 살피고 그걸 인정하기로 했다. 오랫동안 해온 변호사란 직업은 물속에서도 마른 수건을 건져내듯 그 누구에게서도 좋은 점을 발견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시각을 조금만 돌리니까 그의 장점이 너무 많았다. 나는 그의 온유한 성품과 선행들을 구체적으로 적시하면서 칭찬했다. 그는 과찬이라고 하면서 쑥스러워 했다. 그가 나를 비판한 글에 대해 미안해 하는 것 같았다. 어느 날 내 글을 본 그가 나를 칭찬했다. 상대방을 인정해주고 칭찬하는 것은 꺼져가는 불꽃 같은 우정에 기름을 붓는 것 같은 역할이 아닐까. 약간 얼어붙었던 내 마음이 풀리고 흐뭇해졌다. ​

이십대 젊은 시절 법무장교 훈련을 받을 때였다. 지치고 힘든 상황에서도 특이한 한 사람을 발견했다.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상냥하게 먼저 말을 걸었다. 자신은 지방대 출신이고 못났다고 낮추면서 상대방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였다. 타고난 성품인 것 같았다. 무뚝뚝하고 경계심 많던 나는 그를 통해 남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야 좋은 관계가 형성된다는 걸 배웠다. 그의 겸손은 그를 동기중에 우뚝 선 장군으로 만들어 주었다. 장군이 되어 공을 세워도 그걸 다른 사람들과 나누었다. 군대 시절 내 주위에서 그런 좋은 성품을 가진 사람을 많이 보았었다. 그 시절 군은 이마에 붙인 계급이 전부인 분위기였다. 계급이 높으면 하급자를 막 대했다. 나도 욕을 많이 먹었다. 물론 내가 느려터지고 건방져서였다. 잠시 상관으로 모신 선배 법무장교가 있었다. 하급자에게 절대 반말을 하는 법이 없었다. 누구든지 인정하고 칭찬해 주었다. 뼈속까지 그런 성품이 배어 있는 것 같다. 정말 희귀종이었다. 그는 팔십대 중반인 지금까지 마찬가지다. 카톡으로 글을 보내면 반드시 인정해주고 칭찬하고 감사하다는 답장을 한다. 그런 사람도 있다.​

고등학교시절부터 노인이 된 지금까지 우정을 유지해온 친구들이 있다. 그 중 제일 먼저 고시에 합격한 친구를 보고 우리는 함께 기뻐했다. 이상한 건 시기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 친구의 합격에서 우리는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본 것이다. 우리는 차례차례 합격을 해 나갔다. 나만 합격을 하지 못하고 뒤처졌었다. 그러다 내가 마지막으로 합격하자 친구들뿐 아니라 친구의 아버지까지도 진심으로 함께 기뻐해 주었다. 함께 기뻐한다는 것 그럴 때 우정은 더 깊어졌다. 우리 사회가 싸움의 난장판이다. 대통령 후보들끼리 상대방을 ‘빈 깡통’이라고 부르며 비난하는 걸 봤다.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서로 끝간 데 없이 싸우고 있다. 야당대표는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은 채 깡패라고 욕을 하는 걸 봤다. 야당 대표의 형사처벌을 놓고 일부 국민들은 마치 로마 시대 검투장의 관중들처럼 흥분하고 있는 것 같다. 나라가 바로 되려면 사람들의 영혼부터 구해야 하는 건 아닐까. 그 방법이 뭘까. 상대방에게 다가가 말을 거는 것, 상대방을 인정하는 것, 함께 기뻐하는 것, 칭찬해 주는 것, 공을 나누는 것 그런 것들이 기본자세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게 너무 고상한 소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