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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왜?’라는 질문

Joyfule 2024. 3. 23. 03:15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왜?’라는 질문  

 

언론이 부장검사와 카지노업자와의 유착관계를 연일 보도하고 있었다. 그 검사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대학재학중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삼십대에 지청장이 되어 있었다. 그는 출세가 보장된 길을 가고 있었다. 그는 자기 인생을 파괴할 수 있는 뇌물을 받을 사람이 아니었다. 어느 날 저녁 레스트랑에서 그의 얘기를 들었다.​

“집사람과 친한 호텔 사장 부인이 있었어요. 부부동반으로 식사를 하면서 우연히 그 남편을 알게 됐죠. 부부끼리 같이 나자로 마을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친해졌어요. 종종 밥도 같이 먹었죠. 명절 때 친해진 호텔 사장이 와인 두 병이 든 선물을 보냈는데 거절하기 힘들었어요. 호의로 보냈는데 내가 검사라는 직위를 내세우면서 그걸 돌려보내면 얼마나 무안하겠어요? 그렇다고 어떤 청탁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죠.”​

그의 말이 납득이 갔다. 변호사를 하면서 나도 명절이면 간단한 선물들을 보내곤 했다. 나는 그의 다음 말을 조용히 기다렸다.​

“그 부부와 십년 이상을 친하게 지냈어요. 그러다 보니 명절 때마다 선물을 받게 됐죠. 중간에 고급 양탄자를 선물로 받은 적도 있어요. 이건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돌려보내지 못했어요. 그때부터 값비싼 선물들을 보내더라구요. 그러다 사건이 터졌죠.”​

“사건이라뇨?”​

“그 호텔 사장의 운전기사가 사장이 만난 정치인이나 검사 를 만난 시간과 장소 그리고 보낸 선물까지 몇 년간 꼼꼼하게 기록해 두었다가 제보한 거예요. 우리 부부와 친했던 그 사장은 호텔을 경영한 게 아니라 카지노를 하면서 검은 세계와 연관을 맺고 있는 사람이었어요. 그가 수사의 표적이 되면서 나는 그의 배후 세력이 된 거예요.”​

연일 계속되는 언론의 질타로 그는 피의자가 됐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내가 후배 검사에게 불려가 조사를 받았어요. 왜 암흑세력과 친하게 됐는지를 추궁하더라구요. 할 말이 없었어요. 왜 그런 거액의 뇌물을 받았느냐고 할 때 더 할 말이 없더라구요. 십년동안 받은 걸 전부 돈으로 환산해서 합치니까 큰 액수였어요. 나도 몰랐죠. 왜 그렇게 많은 돈을 받았느냐고 묻는데 나는 그 왜란 질문에 대답할 수가 없었어요. 나도 검사로 조사할 때마다 왜 그랬느냐고 물었는데 정말 답변을 할 수 없더라구요.”​

수사기관은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 동기나 선의를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수사기관이나 재판에 다녀온 사람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것 중의 하나는 도대체가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와 비슷한 경우가 또 있었다. ​

내가 잘 아는 언론사 사장이 있다. 그는 넉넉한 성품이었다. 아는 사람이 찾아가 부탁을 하면 그는 힘닿는 대로 성실하게 도와주려고 애쓰는 사람이었다. ​

그가 도와준 한 사업가가 게이트 사건을 일으켰다. 정 관계등에 뇌물을 뿌린 사건이었다. 연일 언론은 게이트 사건의 몸통을 수사하라고 질타했다. 여론을 무마시키기 위해서는 누군가 속죄양이 되어야 하는 분위기였다. 마침내 그 언론사 사장이 사건의 몸통이 되어 구속됐다. 그의 모든 것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는 노년을 가난하고 병든 채 힘들게 살고 있다. 얼마전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그의 흘러간 한이 서린 얘기를 들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이 우리 건물에 세를 들어와서 열심히 일하는 거야. 성격도 싹싹해서 우리 집사람을 보고 누님누님하고 따르면서 잘하는 거야. 명절 때는 예의 바르게 선물도 하고 말이지. 자연스럽게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 그 사람이 제품을 개발한 걸 보이면서 내게 도와달라고 하더라구. 내가 신문사 사장인데 어려울 게 뭐 있겠어? 더구나 좋은 제품인데 말이야. 신문에도 내주고 내가 아는 굵직굵직한 인물들도 소개해줬지. 그러다가 각계에 뇌물을 바쳤다는 게이트 사건이 터진 거야. 그리고 내가 몸통이라는 기사가 나는 거야. 신문마다 나는 걸 보면 정말 진실과는 멀었어. 나도 평생 기자를 했지만 언론이 그런 줄 몰랐지.”​

그는 수십년이 지나도 분이 풀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대검 중수부에 불려 갔어. 중수부장이라는 책임자가 내게 차를 대접하면서 공손하고 친절하게 대해 주더라구. 그리고는 왜 그랬느냐고 묻는데 기가 막히더라구. 그냥 선의로 한건데 그걸 어떻게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대답할 수 있겠어? 할 말이 없더라구. 중수부장이 나를 사기범으로 몰아 감옥에 들어갔는데 내가 뭘 사기쳤는지 알 수가 없더라구. 석방이 되서 나와 보니까 집안이 폭 망했어. 아내가 하던 사업도 세무조사를 받고 대출이 중단된 거야. 내 죄를 만들었던 그 중수부장이 지금은 대장동 개발 사건에서 ‘오십억 클럽’에 이름이 들어 있더라구.”​

검사나 언론사 사장도 조사 받는 입장이 되면 막연해진다.​

보통 사람들은 어떨까. 사람들은 남이 자기를 올바르게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선한 속내까지 정확히 파악해주기를 희망한다. 그게 가능한 일일까. 법이 다른 사람의 악의를 추정하는 경우는 봤어도 그 선의를 고려하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인간은 본래 타인을 이해하기 불가능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이성이나 논리로서가 아니라 따뜻한 연민을 가지고 상대를 이해해 보려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