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에세이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은밀한 기쁨

Joyfule 2024. 3. 26. 10:54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은밀한 기쁨  

 

내가 아마 아홉살쯤이었을 것이다. 나는 가난한 동네에 살았다. 어느날 이웃 항남이네 집으로 갔다. 그 집 아이들 일곱명 바글거렸다. 그 시절은 집집마다 아이들이 많았다.​

내가 막 한글을 배웠을 때였다. 동네 전봇대에는 ‘생긴대로 다 낳으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있었다. 골목어귀 회벽에 나란히 붙어있던 선거벽보 중에 ‘배고파 못살겠다. 죽기 전에 갈아치자’라는 구호가 지금도 희미하지만 기억에 남아있다. ​

좁은 골목 어둠침침한 항남이네 집 안방에는 항남이 엄마와 그 집 아이들이 앉아 있었다. 방바닥의 작은 도마 위에는 얇은 어묵 한 장과 간장 종지가 놓여 있었다. 아이들은 모두 어묵을 보고 군침을 흘리고 있었다. 항남이 엄마는 칼로 예술품을 다루듯 어묵 한장을 공들여 아홉조각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옷핀을 펴서 한 조각 한 조각을 집어 자식들의 입에 넣어 주었다. 마치 처마밑에 둥지를 튼 제비가 갓난 새끼들에게 잡아온 벌레를 먹여주는 것 같았다. 눈치 없는 나는 그 구석에 멀뚱히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항남이 엄마는 어묵 한조각을 간장에 찍어 내 입속에 넣어 주었다. 고소하고 짭짤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 영양부족인지 얼굴에 버짐이 인 항남이 엄마는 어묵 한 조각도 자기 입에 넣지 못하는 것 같았다. 지금 길을 가다 보면 노점에서 먹을 수 있는 값싼 오뎅 한꼬치가 그 시절은 그렇게 귀했다. 나는 평생 그 넉넉한 마음에 감사하고 있다.​

까까머리에 검정교복을 입고 다니던 소년 시절 나는 친구들에게 많이 얻어먹었다. 여유 있는 집의 마음착한 친구들은 내게 짜장면도 사고 더러는 탕수육도 샀다. 그렇게 해주면서도 내게 어떤 댓가도 감사하다는 인사도 바라지 않았다. 착한 친구들은 생색도 내지 않았다. 그저 무심히 내게 베풀어 주었다. 내 마음의 오지에는 살아오면서 받았던 수많은 그런 기억의 파편들이 달라붙어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뒤늦게 감사했던 빚들을 갚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으르면 빚을 진 채 그냥 저세상으로 갈 것 같았다. 초등학교시절 친했던 동네 부자집 아들인 친구가 사업에 실패를 하고 어렵게 산다는 말을 들었다. 수소문해서 그를 허름한 국밥집에서 만났다. 그 친구도 나를 보고 무척 반가워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헤어질 때였다. 그가 자연스럽게 밥값을 치르고 나는 가만히 있었다. 아차했다. 뻔뻔하게 받아먹는 버릇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

나는 얻어먹는 버릇을 고치기로 결심했다. 남들에게 밥을 사기로 했다.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사겠다고 해도 사람들은 기회를 주지 않았다. 같이 밥을 먹고나서 내가 행동이 재빨라야 하는데 항상 돈을 내는데 뒤쳐졌다.​

본능적으로 인색했다. 지갑이 열릴 때마다 망설였다. 가난했던 시절의 얻어먹던 버릇을 고치기가 생각보다 어려웠다. 돈이 있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나는 내 통장에서 일정 금액을 아예 마음속으로 헌금한다고 정하고 그 돈을 밥을 사는데 쓰겠다고 기도했다. 그 돈은 나의 돈이 아니고 하나님 돈이라고 생각하면 덜 아까울 것 같았다. 암선고를 받은 장교동기생이 사과상자를 선물로 보냈다. 죽기 전에 그렇게 선물을 하고 싶다고 했다. 멋있어 보였다. 나도 사과를 선물로 보냈다. 친한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받는 입장에서는 뜻밖이라고 생각할 사람에게 도 보냈다. 후배작가와 사이가 멀어진 선배 원로작가한테서 들은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후배가 모르는체 하고 사과 한상자를 보내면 화해가 될텐데하고 말했었다. 내가 잘못해서 사과하고 싶은 사람에게 사과상자를 선물했다. ​

돈 쓰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늙으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고 했다. 음식점에 가면 고기를 구워주는 종업원에게 팁을 주는 것도 배웠다. 경조사가 있으면 되돌려 받겠다는 마음없이 조금 여유있게 내기로 했다. 받는 게 아니라 주는 데서 오는 은밀한 기쁨을 발견했다. 상대방들이 내게 밥을 살 기회를 주는 것 자체에 대해서도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기부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수십억달러를 기부하고 죽은 미국이나 일본의 부자들에게는 그 이상의 은밀한 기쁨이 틀림없이 있었을 것이다. 홍콩배우 주윤발은 일조원의 재산중 구십구퍼센트를 기부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받는 것 보다 주는 게 더 기쁨이라는 말씀을 이제야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