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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모르는 99가지 - 12. 라면이나마 확실하게 끓이자

Joyfule 2021. 7. 10. 02:54
    
     
     
 여자가 모르는 99가지 -  이재현  
 12. 라면이나마 확실하게 끓이자
내가 학교 다닐 때 일이다 모임에서 등산을 갔는데 
현지에 가서 조를 짜보니 이게 장난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우리 조에 낀 여자들이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외계인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찌개를 해 먹으라고 준 고기를 한동안 내려보더니 
코펠에다 물을 한사발을 떠와서는 거기에다 덥석 고추장을 풀고 
버너앞에 쭈그리고 앉아 들여다보고만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속수무책으로 누구에게  어떻게 하는지 물어볼 생각조차 않고 
먼 산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다른 조에서는 벌써 얼큰한 냄새를 풍기며 식욕을 자극하고 있는데
우리 조는 멀뚱멀뚱 그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으니 얼마나 짜증이 나던지. 
지금이라면 내가 팔뚝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맛있는  찌개를 끓여냈겠지만 
그때만 해도 난 그들과 사정이 다르지 않았었다. 
나는 결국 숟가락을 들고 다른 조로 끼여들어가 점심을 해결했다. 
얘기가 나왔으니 하나 더 하자. 
나와 모 출판사에서 같이 근무했던 한 여자 동료는 들어온 지 얼마 안되어 시집을 갔다. 
아와는 참 친해서 둘이 술을 마실 때면 별별 소리를 다 했는데 하루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 남편은 아침에 출근할 때 밥을 차려주면 먹지도 않고 그냥 가요. 
왜 그냥 가냐고 물었더니 맛이 없어 그런다는 것이다. 
나는 일단 웃었다. 
세상에, 얼마나 맛대가리가 없으면 애써 차려준 밥상도 마다하고 공복으로 출근을 할까. 
그 후 회사가 망해버리는 바람에 서로 소식이 끊겨 지금은 어떻게 사는지, 
그녀의 남편은 아직도 아침은 굶고 저녁은 사 먹고 집에 들어가는지 알 수 없지만 
이 얘기는 결코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시집을 가든 혼자 살든 사람은 먹어야 산다. 
물론 누가 평생 옆에서 삼시 세 끼 꼬박꼬박 차려주는 사람이 있다면야 걱정이 없겠지만,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니까 적어도 제가 먹을 밥은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허구한 날 사 먹는 게 좋은 사람은 돈을 그만큼 더 벌어야 하겠지만, 
위암으로 죽은 사람들을 살펴보면 밥을 사 먹은 사람이 많대나 어쨌대나. 
영화배우 스티브 매퀸도 그 중의 하나였지. 
음식 만들기를 가르쳐줄 사람은 누가 뭐래도 엄마 이상 가는 사람이 없다. 
이 책을 볼 만한 자식을 가진 엄마라면 소주를 두 병정도 마셔도 
저녁 밥상을 근사하게 차려낼 만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수십 년간 쌓아온  조리법의 노하우가 얼마나 많겠는가. 
나도 얼마 전까지 우리 노인네의 음식 솜씨에 경탄을 금치 못했던 사람이다. 
지금이야 연로하셔서 반찬이 자꾸 짜지는 경향이 있어 마누라가 해주는 것만 먹지만, 
잠깐 사이에 내가 좋아하는 반찬으로 가득한 밥상을 들여오는 
엄마의 솜씨는 거의 입신의 경지였다면 과장일까? 
시집 가기 전에, 아니 독립해서 가출(?)하기 전까지 
당신 엄마의 음식 솜씨를 10%만이라도 배워라. 
음식 솜씨가 좋은 여자는 누구에게도 어디엘 가더라도 환영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