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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모르는 99가지 - 36. 연애편지 잘 쓰기

Joyfule 2021. 8. 4. 03:00
    
     
     
여자가 모르는 99가지 -  이재현      
 36. 연애편지 잘 쓰기
요즘 젊은 사람들은 연애편지를 쓰지 않는 모양이다. 
하기야 전화에 삐삐, 전화사서함, 그도 모자라 PC메일까지 있는 판이니 
누가 편지지 사다 정성 들여 쓰고 우표 붙여 우체통에 넣겠는가. 
생각나면 바로 목소리를 듣는 세상, 
난 이런 세상을 두고 살기 정말 좋아졌다고 말해도 되는 건지 잘 모르겠다. 
보고 싶어도 방법이 없던 시절에는 애인이 그리워서 날밤을 새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럴 때면 이용하는 게 편지였다. 
당시만 해도 연애편지 한번 써보거나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편지는 말과 달리 문자라는 특성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보다 냉정한 입장에서 상대방에게 전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는다. 
서로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눌 경우 감정에 치우쳐 정작 해야 할 말은 못할 때가 많은데 
편지를 이용하면 진실된 마음을 전하기가 훨씬 쉽다.
편지를 받아본 사람은 알겠지만 특히 연애편지의 경우 
대문 앞에서 자기 방까지 가면서의 기분은 마치 알 수 없는 선물을 들고 가는 느낌이다. 
둘 사이에 별다른 이상 징후가 없다면 내용은 분명 달콤하고 짜릿하겠으나 
저기압이 형성된 상태라면 편지는 뜯어보지 않아도 심상치 않은 내용임을 짐작할 수 있다. 
나도 과거에 그런 편지를 받아보았었다. 
한동안 연락이 없길래 그러려니 하다가 느닷없이 편지를 받았다. 
간단히 줄여서 징 치고 막 내리자는 거였다. 
으잉?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어서 난 답장을 써 보냈다. 
안돼! 라고. 
사람들은 편지든 뭐든간에 뭘 쓰라면 공포심을 갖는 것 같다. 
쓰기는 뭐, 그냥 말로 하지. 이런 식이다. 
우리 교육이 천편일률적으로 외우기만 강요한 탓이요 쓰기를 우습게 안 결과다. 
지금은 논술고사를 본다고 난리를 쳐놔서 오히려 모든 고3 아이들이 
신문사 논설위원감이 되기는 했지만. 
흔히 말하기를 편지는 서로 얘기하는 기분으로 쓰면  된다고 한다. 
아버님 전상서가 아닌 바에야 안녕하세요. 
처서가 지났으니 가을이 목전에 다가왔군요. 
다들 무고하신지 궁금합니다. 
어쩌구 저쩌구~ 이럴  필요는 없다. 
그러나 앞에 사람도 없는데 혼자 중얼기리는 식으로 글을 쓴다는 건 
비 맞은 중이 아닌 다음에야 어려운 일이다. 
다른 글쓰기도 그렇지만 편지 역시 첫대가리 나가기가 어렵다. 
쓸데없이 파지만 내고 끙끙거리다가 아, 염병! 전화나 하자~ 이러고 포기하기 십상이다. 
무슨 일이건 어렵게 생각하면 한이 없다. 
편지에 형식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맘 내키는 대로 쓰는 것이 요령이다. 
먼저, 자기가 이 편지를 통해 상대방에게 할 말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잡아놓고 써라. 
안 그러면 시종 횡설수설하다가 말아 쓰기는 애써서 썼는데 
받아보는 사람은 무슨 말인지 종잡을 수 없어 읽기에 여간 고생이 아니다. 
서두는 다짜고짜 시작해도 괜찮다. 
지난 번에 니가 한 말을 곰곰 씹어 봤는데 아무래도 내 생각이 더 옳지 않겠나 싶다. 
니 논리의 초점은 레몬소주에 토닉워터를 넣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인데 
야, 레몬소주에서 중요한 건 토닉을 넣었느냐 안 넣었느냐가 아니라 레몬을 넣었느냐야. 
그러니까 넌, 주체는 제껴놓고 객체에 매달리고 있다는 거지. 
우리 사이도 마찬가지야. 
넌 항상 내 외모를 가지고 말이 많은데. 
이런 식으로 가면 편지도 쓰는 데 별로 부담이 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에 대해 이걸 어떻게 써야 할 지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 
덮어놓고  나는 너를 사랑해~ 이럴 수는 없고 뭐라고 근사한 말을 해야 할 텐데 
적당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거다. 
별것 아니다. 빗대어 말하라. 
나는 당신이 내게 모래시계에 나오는 이정재가 되어 주기를 바랍니다. 
다만, 맞아죽는 이정재가 되지는 말아 주세요. 
이 정도면 남자는 맛이 뻑 간다. 아니면, 당신만 보면 숨이 막혀요! 
더 이상 내 호흡을 방해하지 말아요. 편지 쓰기는 일종의 상상력 게임이다. 
상대방을 떠올리며 마음껏, 편안하게 말하려고 노력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