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모르는 99가지 - 이재현
5. 시간 도둑을 아십니까?
여보세요!
아, 명희니?
응. 순자구나?
웬일이니?
아니, 뭐 그냥 했어. 너 저녁에 시간 있니?
시간? 시간이야 있지. 아직 별 약속은 없어.
그럼 말이야, 우리 만나서 저녁이나 먹자.
니가 사는 거야?
엊그제두 내가 샀는데 또 내가 사?
야! 일 없이 만나서 저녁 먹어주고 니 얘기 들어주는데, 그럼 내가 사니?
엊그제 난 또 니가 무슨중요한 얘기라도 하는줄 알고 야근 있는 것도 핑계대고 빠져나갔었던 거야.
그랬다가 어제 부장한테 깨진 거 너 알기나 알아?
오늘은 또 무슨 얘기니?
어머, 얘 봐! 사람이 꼭 무슨 일이 있어야만 만나니?
친구라는 게 뭐야. 심심하면 만나서 이 얘기 저 얘기 하는 거지,
니가 무슨 내 거래처냐, 일이 있어야 만나게?
어떻게 보면 별 시덥지 않은 대화처럼 들리지만 이런 경우 아마 웬만한 사람이라면
상대방이 그냥 만나자고 하면 자신에게 특별히 바쁜 일이 없으면,
혹 일이 있더라도 덩달아 그냥 만날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일 없이 사람을 만나는 사람들이 꽤 많다.
퇴근시간은 가까워 오는데, 아니면 퇴근은 했는데 터덜터덜 집에 가기는 싫고
어디 껀수도 잡히지 않으면 여기저기 전화를 한다.
야, 뭐 하나?
뭐 하긴 뭐 하냐? 전화 받지.
마음이 약한 사람은 일이 있는데도 심심한 친구의 시간을 같이 죽여 주기 위해 약속 장소로 나간다.
남자들의 경우에는 술을 마시고,
여자들은 번화가를 돌아다니며 아이 쇼핑만 잔뜩 하고
저녁 먹으며 실컷 수다나 떨다가 집으로 돌아간다.
물론, 나도 심심하던 참에 심심한 친구가 전화를 걸어와 만나자면야 얼마든지 어울려 줄 수 있다.
하지만 한참 일하는 중인데 괜히 전화를 걸어서 주절주절 밑도 끝도 없는 얘기를 늘어놓거나
얼굴이나 보자고 졸라대면 듣는 사람은 리듬이 깨져서 일하는데 김이 새고 만다.
게다가 만나자는 말에 차마 거절을 못해
내키지도 않는 약속을 해야 한다면 보통 난감한 일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는 시간 도둑이 많다.
선배나 후배 그리고 동창, 하다못해 사촌동생까지가 그 범인이다.
쓸데없이 찾아와서 술 사라, 밥 사라, 레옹이 죽인다는데 영화보러 가자~ 하며
시간 뺏고 돈 뺏고 스트레스 쌓이게 만드는 것이다.
질이 모진 사람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이 시간 도둑들은 아주 교묘하게 상대방을 뜯어먹는다.
물론 당사자 모두 자신이 시간을 도둑질하고 있는지
또는 시간을 도둑질당하고 있는지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
이제까지 몰랐다면 한 번 곰곰히 생각해 보라.
쉽지는 않겠지만 자신을 위해서라도 이 시간 도둑을 퇴치하자.
야! 바쁘면 뭐 너만 바쁘냐? 거 그렇게 피곤하게 살지 말고 좀 헐렁하게 살아.
나 지금 그리루 간다 잉.
이렇게 자기만 생각하는 시간 도둑들 중에 당신도 끼어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