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모르는 99가지 - 이재현
6. 일기는 뭐 하러 쓰나~
나이를 먹을수록 세월이 빨리 지나간다.
아직 20대의 나이라면 그게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지만 서른만 넘어도 이게 실감이 날 것이다.
10대 시절에는 어서 나이 좀 먹었으면 하고 바라다가
20대가 되고 어~ 하다 보면 금방 나이 30을 코앞에 두는 것이다.
노처녀가 되는 것도 직장 생활에 세월 가는 줄 모르다가 겪는 불상사다.
그런데 사람이 나이를 먹게 되면 이래저래 후회가 늘어난다.
지난 시절은 모두 어영부영 까먹고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는데
앞으로 닥쳐올 미래도 역시 그런 식으로 지나가게 될 것 같은 불안에 빠지기 십상이다.
왜 이런 생각이 드는 걸까? 우리 한국 사람들은 기록에 소홀하다는 학자들의 견해가 있다.
역사와 문화 전반에 걸쳐 자기 기록에 소홀하다 보니 자신은 물론이고
후세 사람들도 지난 흔적을 찾아보려면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라는 것이다.
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사실과 현상을 재음미한다는 뜻에서
발전을 위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일기를 쓰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다.
일기요? 학교 다닐 때는 잠깐 써 봤지만 지금이야 뭐, 쓸 게 있나요.
어제나 오늘이나 별로 다를 것도 없는 그날이 그날인데다 사실은 귀찮기도 하고요.
일기를 쓰느냐고 물으면 건너오는 대답이 다 이렇다.
특별히 남길 이야기가 없어서란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는 성가시니까 안 쓰고 있다는 것이다.
하기야 평안 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고 도리가 없기는 한데
이런 사람들도 지난 세월의 반추에서 제외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딱하다.
일단 쓰자. 시작이 반이다.
우선 노트를 하나 사서 매일매일 꾸준히 써나가되 정 쓸 말이 없거든
하다못해 오늘 영숙이에게 3만원을 꿔줬음이 한 줄이라도 써라.
일기에 들어가는 내용에 대해서 누가 시비거는 일은 없다.
일기를 장부처럼 쓴다고 해서 이게 법에 걸릴 것도 아니니까
다음 날 영숙이에게 3만원 받았음이라고 써도 그만이다.
이런 식으로 버르장머리를 길러 놓으면 귀찮아서 안 쓰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사실 쓸 게 없다는 건 거짓말이다.
당신은 허구한 날 만족하며 사는가? 누구에게 물어도 대답은 아니요다.
아무리 의식이 없는 사람도 즐거워하고 괴로워하며 살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그런 얘기들,
즉 남에게 할 수 없는 얘기,
누가 들어줬으면 하는 얘기,
꼭 남겨뒀으면 하는 생각,
죽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좋아서 환장하고 싶을 때,
이런 모든 것들을 주절주절 노트에 늘어놓으라.
그것이 일기다.
시간이 지나 나중에 이것들을 읽어보면 당신 스스로도 놀랄 것이다.
아니, 내가 이런 생각들 다 했던가? 정말 기가 막히는군!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라는 소설 제목처럼
우리는 사실 우리 자신이 누군지도 잘 모르고 살고 있다.
그러므로 나를 조금이라도 알기 위해서라도 일기를 쓰자.
오늘 일을 생각하면 어제가 부끄럽고 내일이 기다려진다.
내일,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면 삶이 그렇게 고통스럽지만은 않을 것이고
이런 나날이 자꾸 쌓이다 보면 적어도
지난 세월 내가 정말 헛살았구나 하는 기분은 안 들게 될 것이다.
게다가 일기를 쓰다 보면 덤으로 사고에 논리가 서게 되고 문장력이 늘어난다.
내가 소설을 쓰게 된 것도 일기를 쓴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