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18) 예수님이 행복의 길입니다 (시편 16편 1-3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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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이 막힌 사회 >
1991년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으로 귀국하려고 할 때 한 동료 사역자가 말했습니다. “한국에는 목회자도 많고 일꾼들도 많은데 왜 한국에 가십니까? 미국에 사람이 더 필요하니까 교포들을 위해 목회하십시오!” 몇 년 후 그분이 19년 만에 한국을 방문하고 생각이 완전히 바뀌어 한국에 일꾼이 더 필요하다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그분이 한국을 방문하고 8월 초에 강원도로 놀러 가는데 자동차로 2시간이면 가는 거리를 13시간이나 걸렸습니다. 너무 길이 막히자 고속도로에서 라면을 끓여먹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때 저 앞에 논두렁길이 있었는데 한 자동차가 대담하게 그 길로 들어서서 막 달려갔습니다. 그러자 다른 차들도 너도 나도 그 길로 몰려들어서 조금 후에는 그 길이 더 막혔습니다. 그때 비로소 한국에 대형교회가 많은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즉 대형교회는 사방에 길이 막힌 결과물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여러 방면에서 길이 막혀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어딘가 길이 열린 것 같으면 그리로 왕창 몰려듭니다. 뚜렷한 목적의식이 있어서 몰리기보다 사람들이 몰려드니까 그저 몰려드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한 교회가 작은 논두렁길이라도 열어주면 그리로 정신없이 몰려 대형교회가 생긴 것입니다. 결국 한국에 대형교회가 많은 것은 한국민족이 영성이 탁월한 민족이란 암시라기보다는 한국 사회가 여러 방면에서 길이 막힌 사회란 암시입니다.
왜 길이 막혔습니까? 불법과 편법과 자기중심주의 때문이지만 더 깊은 이유는 죄 때문입니다. 죄는 자기 길도 막지만 남의 길도 막습니다. 도로에서 차사고가 나면 길이 막힙니다. 사고가 죄는 아니지만 그 사고로 수많은 사람들의 길을 막게 된 것입니다. 그처럼 한 사람의 잘못이 많은 사람들의 길을 막고 한 사람의 죄는 더 많은 사람들의 길을 막습니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 공무원들의 진급이 힘든 이유는 낙하산 인사 때문이었습니다. 공무원들은 1급에서 9급까지 직급이 있는데 1급 자리가 하나 비면 연속해서 9자리가 비면서 9명의 연쇄승진이 이뤄집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낙하산을 타고 1급 자리를 차지하면 9명의 승진 후보자는 승진이 막혀 기가 막히게 됩니다. 당시 어떤 공무원은 잘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직은 미치지 않았어요.”
아직 미치지 않았다는 말은 미치기 일보 직전이란 말입니다. 그냥 다니자니 억울하고 안 다니자니 생활고가 두렵습니다. 한 사람의 죄와 허물과 잘못이 남의 길을 막는 셈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성도는 축복 간증도 주의합니다. 자기가 받은 축복이 남의 길을 막는 것은 아닌지 살피고 교훈적인 목적이 아니면 장사꾼처럼 축복을 선전하지 않고 더 나아가 횡재 비슷한 축복을 받았다면 더욱 미안해하며 큰소리를 죽입니다.
< 예수님이 행복의 길입니다 >
성도의 진짜 간증거리는 ‘축복’보다는 ‘헌신’이 되어야 합니다. 받은 축복을 자랑하기보다는 구원의 은혜가 감사해서 죽도록 충성하고 헌신한 것을 자랑해야 합니다. 자신의 승진과 성공과 성취와 합격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남의 길을 막고 남의 눈물을 흘리게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축복 받은 간증이 사람들 보기에는 좋아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안 좋을 수도 있기에 축복을 너무 과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은 죄로 인해 무의식적으로 남의 길을 막을 수 있습니다. 도로에서 신호등이 고장 나면 길이 꽉 막힙니다. 죄는 신호등이 고장 난 것과 같습니다. 어떻게 그 문제를 극복합니까? 기독교적인 극복이란 어떤 환경과 상황이 바뀌어 마음이 바뀌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어떤 환경과 상황 위에서 마음을 바르고 굳게 세우는 것을 뜻하는데 어떻게 그런 극복의 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까? 간단하게 말해서 예수님을 잘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 말씀했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 외에는 길이 없고 예수님이 행복의 길이라는 뜻입니다. 어떤 분은 묻습니다. “목사님! 예수님을 잘 믿어도 길이 잘 열리지 않는데요?” 왜 그런 생각을 합니까? 환경과 상황이 변화되어야 길이 열린 것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진짜 길이 열리는 것은 ‘상황이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잘 믿으면 상황을 극복하는 길이 열립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진리의 길은 좁아도 처음만 좁습니다. 단단히 각오하고 그 길을 계속 가면 점점 그 길은 넓어집니다. 반면에 세상길은 처음에는 넓지만 점점 좁아집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예배하는 존재가 된 것을 무한한 행복의 원천을 얻은 것으로 여기고 기뻐하고 감사하십시오. 행복은 성공이나 소유에 있지 않고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