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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생애 - 첫째 시험과 (영육의 대결)

Joyfule 2007. 8. 5. 04:35

제 5 장. 광 야

 

2. 첫째 시험과 (영육의 대결)

빈들에서 지낸 40주야의 금식과 고독의 생활, 기도와 명상으로 정력을 소모시킨 긴 기간이 지나간 어느날,그에게도 가장 절박한 한 욕망이 그를 괴롭혔다. 시장하다는 그것이다. 이 주림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하는 자문에의 대답으로 빠른 속도로 마귀가 그에게 제공하는 것은 [이 돌들로 떡을 만들면 되지 않겠느냐?]하는 것이었다.

 

이 시험은 세 곳의 진지로부터 집중되는 포격이다.

첫째, 그가 처음으로 가진 메시야의 능력이라는 것이 진지가 되어 공격 당하게 되었다. 메시야의 능력이야 말로 돌로써 떡을 만드는 그까짓 일쯤은 넉넉히 할 수 있지 않은가?그러니까 한번 시험해보라, 분명히 이 능력의 비상함을 사실로 증거하기 위하여 그 능력은 상상이나 꿈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하나님의 아들! 너는 위대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냐? 자 시험에 보아라 그 능력의 효과를 나타내 보일 가장 좋은 기회가 아닌가? 자 여기 돌들이 많이 있지 않느냐" 명령해라, 그것들이 떡이 되도록] 사탄은 이렇게 유혹했다.

 

둘째로 그가 해야할 사업이 색다른 진지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었다.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하시기 위하여 예수를 세상에 보내셨다. 앞으로 그가 해야 할 큰 사업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하나님이 아시는데.. 이 빈들에서 주려 죽어서야 되겠는가?만약 여기서 죽는다면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렇게 되면 예수 자신이 하나님을 실망시키지 않겠는가 세상에서 해야할 일,인류의 구원사업과 하나님의 나라를 그 위대한 사명을 위하여 우선 육체적인 수난을 피해야 할 것이 아닌가? [돌로 떡을 만들어 그 수난을 피하라]고 유혹했다.

 

세째로 예수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입장에서 공격을 당하였다. 이 주림의 사실은 빈들에서 금식하고 있는 예수에게만 닥쳐온 사실이 아니다. 로마의 치하에 압박을 당하고 있는 약하고 가난한 유대백성 전체가 양식이 없어 굶주리는 형편이었다. 만일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주림에 허덕이는 백성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돌로 떡을 만들어 우리에게 나누어 주면 좋지 않겠는가? 이 기적의 요구는 예수자신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가 전도사업을 하는 동안 유대땅 방방곡곡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다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그의 지상 운동은 육체를 먹이는 일까지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이렇게 그 육체의 문제를 해결해 주면 예수를 떠나서는 먹을 것을 얻을 수 없는 줄 알기 때문에 배신자가 없을 것이 아닌가? 이렇듯 친밀한 관계로 우리들의 인망을 얻은 후에 하늘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 그 효과가 적중하지 않겠는가?

 

먼저 이 땅위에 천국을 건설하고 그리고 나서 하늘의 낙원을 건설하는 것이 정당한 순거가 아닌가?[사람을 사랑하는 증거를 돌로서 떡을 만들어 먹이므로 구체적으로 보여 주라]고 사탄은 말하고 있다.

사탄은 매우 교묘한 존재였다. 그럴듯한 말로 예수를 꼬였다. 얼핏 생각하면 사탄의 말을 듣는 것이 옳은 것 같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 유혹에 속지않고 [노우]라고 거절 하셨다. 그 거절의 이유로서 우리는 다음의 두가지를 들 수 있다.

 

그가 만일 사탄의 권고를 수락했다고 한다면 그가 만일 육체의 요구대로 돌로 떡을 만들어 먹고 피곤한 육체가 새힘을 얻어 광야를 떠나서 활발한 기상으로 거리에 나타나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고 한다면 그리스도는 고통과 결핍의 재난으로 신음하는 우리들과는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향하여 이런 찬양의 노래를 부를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의 고통을 알아주시고 우리의 괴로움을 함께 느끼시는 주님의 모습이 지금 보이네 그의 눈물과 안타까이 부르짖는 음성이 지금도 공중에서 들려오누나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영원한 우리의 형제가 되시고 동지가 되시려고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셨다. 사탄을 물리친 또 하나의 이유는 그는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시러 세상에 오셨고, 다른 사람의 비위나 맞추기 위해서 아첨하러 오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은 우리들의 물질적인 요구와 필요성, 그리고 사회적인 환경과 조건에 대해서 무관심한 분은 아니시다. 그는 인류사에 기록된 어떤 개혁자나 정치가 자선가 보다도 사람들의 육체적인 문제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신 분이시다. 육체의 조건을 몸소 느끼는 제자들 보다 오히려 더 적극성을 가지신 분으로서 인간의 빵문제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신 분은 지금까지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다. 지금 우리에게는 생활하기에 편리한 주택, 아름다운 환경,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화한 사회의 질서까지 해결된 사실을 본다. 이상적인 사회와 개인은 오로지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부터만 온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에서 문제시하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비록 이땅에 사는 사람들을 위하여 지상 천국을 몸소 이루시고자 하는 간절한 욕망을 가지고 계시기는 하지만 그 자신이 돌로서 떡을 만들어 먹으라는 사탄의 유혹에 대하여는 단순히, 거절하셨다. 그 이유는 그가 세상에 오신 목적이 사람에게 아첨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에게 나오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는 그 육체가 느끼는 주림과 목마름 이상으로 더 깊고 더 강한 심령의 주림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다.영혼의 주림을 채우는 길은 빵이나 물질이 아니다. 그것은 다만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 하나님 자신이 우리에게 주시는 그 자신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서 우리 영혼의 주림을 채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