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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교회에는 귀신이 범접하지 못한다고?

Joyfule 2018. 6. 11. 01:38



 
   우리네 교회에는 귀신이 범접하지 못한다고?

 


우리네 교회의 가르침은 하나님에 대한 주제 일색이다. 그래서 성경에 말씀하시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에 대한 주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신 성령으로 내려가면 말수가 적어진다. 성령은 성경지식으로 드러내시는 분이 아니라 기적과 이적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내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령의 능력이 없는 대다수의 교회지도자들은 별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더욱 기이한 사실이 있다. 귀신에 대해서는 입을 꾹 닫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다가 교인이 귀신이야기를 하거나 축사를 한다고 하면, 화들짝 놀라서 입을 틀어막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면서 거룩한 교회에 어떻게 귀신이 범접하며, 빛인 교인들에게 어둠인 귀신들이 어떻게 들어오느냐면서 손사래를 치고 있다. 영적인 세계는 하나님만 계시는가? 아니다. 영적 세계는 하나님과 천사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군대와 사탄과 귀신으로 이루어진 어둠의 군대가 있다. 그래서 이 양편이 사람들의 영혼을 사이에 두고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잘 아는 데 귀신을 모른다는 게 말이 되겠는가? 그래서 오늘은 우리네 교회에는 귀신들이 범접하지 못한다는 교회지도자들의 말이 옳은지 찬찬히 살펴보고 싶다.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2:8,9)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2:12~14)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은 없노라(2:18~20,24)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3:7~9)

 

위의 말씀들은 예수님이 밧모섬에서 나타나셔서 요한에게 말씀해주신 내용이다. 그런데 기가 막힌 것은, 이미 초대교회 안에 귀신의 영이 차고 넘치고 있다는 말씀이다. 사도들이 세웠으며 가르치고 있는 초대교회 안에도 이미 귀신들이 들어와서 미혹시키고 있다는 게 믿어지는가? 그런데 우리네 교회에는 귀신들이 범접하지도 못한다고? 그렇다면 초대교회 지도자와 교인들의 영적 능력이나 분별력이 우리네 교회만도 못하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초대교회에 귀신들이 어떻게 들어왔는가? 자칭 유대인들을 통해 들어와서 이미 무리를 이루고 있으며(2:9), 사탄의 무리들인 자칭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뜻을 지키지 않으며 예수님의 이름을 더럽히고 있다고 하고 있다.(3:9) 또한 행음하게 하며 우상을 섬기고 우상 앞에 드려진 음식을 먹게 하는 죄를 짓게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2:14,20) 그러나 우리네 교회는 우상을 섬기지도 않고 우상 앞에 드려진 제물을 먹지도 않는다고? 초대교회 당시에도 바알이나 아세라를 섬기는 우상이 아니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우상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죄다 우상이다. 이 시대의 우상은 자기 자신이며 우상의 제물은 돈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교회에 와서도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보다, 세상에서 잘되고 부자가 되는 세속적인 축복을 바라면서 신앙행위를 하고 있다. 그들이 기도자리에 앉아서 기도하는 목록을 들어보라. 어디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 죄다 목회성공을 추구하는 담임목사의 탐욕을 채우고, 삶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자신과 자녀들이 부자가 되고 성공하는 세속적인 내용들만 주구장창 반복하고 있지 아니한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6:24)

 

예수님은 재물을 가리켜 하나님의 자리를 넘보고 있는 또 다른 주인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다. 왜 그런지 아는가? 사람들이 재물을 하나님보다 더 좋아하고 섬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최고의 우상은 다름 아닌 재물이다. 맘몬의 영인 악한 영은 재물의 덫을 놓고 걸려들게 만들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사랑하는 자들은 우상을 섬기는 자들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를 따라오는 제자들의 첫 번째 조건으로 자기부인을 말씀하신 이유이다. 끝으로 성령께서 필자에게, 우리네 교회에 대해 말씀해주신 내용을 올려드리며 칼럼을 마치겠다.

 

 

* 오늘날의 교회는 상업적이다.

* 세상에는 세속적인 교회가 너무 많다.

* 세속적이 교회, 타락한 종은 많으나 기도하는 종은 많지 않다. 삶에 빠져서 나를 찾는 것을 잊어버리고 산다. 맹목적인 기도모임을 하고 있다.

* 교회 이름이 땅에 떨어진 이 시대에, 익지 않은 과일이 땅에 떨어진 것처럼 악취 가 나고,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고, 귀신들을 쫒는 일에 관심이 없고, 귀신의 초청 에만 몰두한다.

* 미혹의 영이 교회지도자들의 머리위에 있다.

* 오늘날의 교회가 귀신들을 많이 불러들인다.

* 교회가 기도를 잃어버리면 사탄이 지배한다.

* 교회 안에 귀신들이 많다는 것도 염두에 두라.

* 이름만 교회지 속이 지옥인 데가 많다.

* 종들이 기도는 안하고 귀신들의 말만 듣고 있다.

* 교단은 교세를 확장하기 위해서이고, 교회는 창에 찔린 예수를 알리지 않고 업적을 알리는 데 혈안이고, 양들은 귀신들의 공격에 독 안에 든 쥐이고, 쓸 만한 양들은 귀신의 조화와 활동에 무지하고, 어디로부터 왔는지 모르고 기쁨도 소망도 없는 일 에 몰두하고 아버지의 뜻에 무지하다. 기초훈련이 안된 자들은 귀신들의 존재도 모 른다. 종들을 부리는 영은 고급영이다.

* 한국에 있는 많은 종들이 미혹의 영에 빠졌다는 것을 알고, 어깨너머로 배운 지식 (신학교 교육, 필자 주)으로는 나를 만날 수 없다.




 
    눈 가리고 아웅 한다고 천국의 자격이 주어지겠는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 크리스천은 없다. 그러나 성경대로 믿는 크리스천도 많지 않다. 물론 필자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겠지만, 우리네 교인들은 성경말씀대로 살지 않으면서 자신들이 천국의 백성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기이하고 섬뜩한 일이다. 그래서 오늘은 그 얘기를 좀 하고 싶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7:21~23)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

 

1분짜리 영접기도를 마치고 주일 성수만 하면 천국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대다수의 우리네 교인들에게 위의 구절은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콕 집어서 말씀하셨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들은 지옥의 불에 던져질 것을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그래서 당신은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모든 일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계신가? 도대체 예수님이 왜 이런 말씀을 하셔서 자신들을 곤혹스럽게 하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으실 것이다. 영성학교 공동체식구 중에서 오빠가 목회자인 자매가 있었다. 그런데 그 오빠가 어느 날 동생을 찾아와서, 영성학교가 이단이므로 다니지 말라고 다그쳤다고한다. 그래서 이 자매는 영성학교는 성경대로 가르친다고 말하면서,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고 대답하며, 그런데 어떻게 이단이냐고 물어보았다고한다. 그랬더니 오빠는,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살 수 있느냐고 반박하면서 직답을 피했다고 한다. 이 목회자 오빠가 말한 것이 우리네 교회의 딜레마이자 한계이다.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살수 있냐고 말이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 것만 하고, 할 수 없는 것은 하지 않아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을 리가 만무하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을 수밖에 없도록 하시고, 죄인으로 만들기 위하여 선악과를 지으셨다는 논리와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항상 기뻐할 수 없고, 쉬지 말고 기도할 수 없고,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없는 삶을 살 수 없는 것일까?

 

필자가 이십여 년 전에 하염없이 인생이 떠내려가다가, 하나님께 애걸복걸하면서 한번만 기회를 달라고 사정하면서,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를 시작했다는 것은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신 사실이다.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을 성경에서 찾아보니까 딱 두 가지였다. 쉬지 말고 기도하면서,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찾으라는 말씀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그 때부터 쉬지 말고 하나님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도 때도 없이, 쉬지 않고 하나님을 부를 수 있겠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어왔다. 그러나 필자가 새로운 삶을 회복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에, 아무 생각 없이 틈만 나면 하나님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르면서 쉬지 않고 기도하는 습관이 들였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은, 혼자 있을 때 무시로 기도하는 것이다. 필자도 처음에는 이런 기도가 가능할까라는 생각이 수도 없이 들었었다. 그러나 이런 기도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으로 알 수도 없으며, 세상의 지식과 인본적인 방법으로도 알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서 필자는 하나님을 만나고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그리고는 성경에 약속한 은사를 체험하게 되었으며 천 번이 넘는 기적을 경험하면서 지금의 사역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은 그렇다 치고, 필자가 항상 기뻐하면서 살고 있는지 궁금하실 것이다.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어떻게 살아가는 동안 항상 기뻐하는 일만 생길 수 있는가라는 의구심 때문일 것이다. 물론 필자도 항상 기뻐하는 일만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기쁜 일이 생겨서 기뻐하지 않는다. 필자는 하나님을 만나고 기도하는 게 좋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서 두어 시간 기도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또 그렇게 기도하고, 낮에도 틈을 내서 기도하려고 애쓰고 있다. 왜냐면 기도하는 게 좋기 때문이고 하나님을 만나는 게 기쁘기 때문이다. 필자가 이십 여년이 가까운 세월동안,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누가 감독하며 지켜보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기도하면 살았던 것이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가 기쁘지 않고 좋아하지 않으면 가능했겠는가? 물론 이 기도를 시작하면서 불행이 끝나고 행복한 삶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기도한 것은 아니었다. 기도하는 게 무엇보다 좋아서였다.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가 세상 그 어느 것보다 기뻤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뒤로는, 덧없는 인생을 내려놓고 날마다 하나님을 부르면서 잔잔한 평안과 기쁨과 자유를 누리면서 살고 있다. 그러므로 항상 기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어떻게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생각도 들것이다. 살다보면 원망과 불평, 짜증과 분노, 억울함과 상처를 주는 사람들과 사건사고들이 널려있는데, 어떻게 모든 일에 감사하며 살 수 있을까? 그래서 필자가 그렇게 살고 있다고 말하면, 아무도 믿으려 들지 않을 것이다. 물론 필자도 세상의 모든 일에 감사하지 못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늘 기도하면서 필자와 같은 완악하고 가증스러운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 대신 돌아가신 예수님의 희생과, 자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보내신 하나님의 자비하심, 그리고 이를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늘 죄에 넘어지는 필자를 용서해주시고 분노를 참으시는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을 생각하면 어떻게 감사가 나오지 않을 수 있을까? 물론 필자에게 악하게 대하는 사람들과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보면 감사가 나오지 않지만,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하심 그리고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를 생각하면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감사가 샘솟듯 나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에서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도의 습관을 가르치지도 배울 생각이 없기에,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게 그림의 떡처럼 불가능한 일로 여기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선포하신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지 않는 이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천국의 삶을 누리려면 대가를 지불하라.|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사기꾼들에게 넘어가는 사람들은 공짜심리에 혹한 사람들일게 뻔하다. 그런 사람들은 사기꾼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한다. 이런 일은 천국을 얻는 일에도 다르지 않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에서는 천국을 거의 공짜로 팔다시피 하고 있다. 그래서 1분짜리 영접기도를 하기만 하면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렇게 천국이 쉬운 곳이라면, 왜 성경에 기이하고 섬뜩한 얘기들로 도배하고 있는가? 그래서 오늘은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의 자격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13:24)

 

위의 예수님의 말씀은 너무 유명하여 따로 설명이 필요 없다. 천국은 좁은 문이라서 소수의 사람들만이 들어가며, 들어가려고 애써도 들어가지 못하는 이들이 허다하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당신은 이 사람들에 해당된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네 교회에서는 이 말의 의미가, 이미 예수를 믿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라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오홋, 그렇다고? 자세히 읽어보라.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다고 말씀하셨다. 들어가기를 구하는 자들이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이라고? 지나가던 개가 배꼽을 잡고 웃을 일이다. 그러나 이미 미혹의 영에 사로잡힌 삯꾼목사들의 말에 세뇌를 당한 당신은, 필자가 어떤 얘기를 해도 믿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천국에 들어가려면 어떤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지 살펴보고 싶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13:44~46)

 

예수님은 천국의 비유에서, 자신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보화가 감추어진 밭을 산 사람이나 좋은 진주를 산 상인과 같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이는 천국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지불해야 얻어지는 곳이라는 뜻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지불하면서 천국을 구하고 계신가? 오홋, 그렇다고? 그래서 영접기도를 하고 주일성수를 하고 있다고?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16:24,25)

 

위에서 예수님은 제자가 되려면, 자신의 원하는 모든 삶을 포기하고 목숨까지 바쳐야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게 영접기도와 주일성수를 하는 것인가? 그렇게 쉬운 것이라면 굳이 목숨까지 바치라고 하실 것까지 없으셨을 것이다. 성경에는 영접기도와 주일성수가 구원을 얻는 조건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한다는 것은 기도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왕으로 받아들이는 삶을 살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주일성수라는 말도 비성경적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주일은 일요일이 아니라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심판의 날을 말하고 있으며, 1시간짜리 예배의식에 참석하는 것이 거룩하게 지키는 성수(聖守)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이렇게 우리네 교회에서는 성경을 자의적으로 비틀어서 해석하는 신학자들의 교리를 앞세워서 변질된 복음으로 교인들을 영적 잠에 빠뜨리고 있다. 그리고 목회자들은 손쉬운 구원을 값싸게 팔면서 대형교회의 담임목사가 되는 목회성공을 꿈꾸고 있다. 여기에 귀가 솔깃한 사람들은, 주일성수에 십일조, 각종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하면 부자가 되고 잘 된다는 감언이설에 속아서 인생과 지갑을 탈탈 털리고 있다. 이는 삯꾼목사의 유혹에 넘어가서가 아니다. 처음부터 쉬운 길로 천국을 소유하고 부자가 되고 성공하는 삶을 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공짜가 없듯이 천국도 예외는 아니다. 성경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무척이나 어렵다는 말을 도배하다시피 하고 있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16:1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19:23~25)

 

예수님은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잘라 말씀하셨지만, 사람들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부자를 꿈꾸고 있으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덧붙여서, 예수님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지 않은가? 그러나 우리네 교회에서는 부와 성공을 꿈꾸는 번영신학과 기복신앙이 판을 치고 있으니 기이한 일이다. 천국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성령이 들어오신 사람에게 이루어지는 현상이다. 그래서 천국은 우리 안에 이루어진다고 선포하셨으며, 우리의 몸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밝히고 있는 이유이다. 그러므로 천국은 쉬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전심으로 성령의 내주를 간구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그러나 하루에 한 시간도 기도하기를 싫어하는 교인들이 어떻게 천국을 소유하게 될 것인가? 천국은 자신의 목숨을 포함해서 모든 소유를 다 바쳐야 얻게 되는 곳임을 잊지 마시라. 예수님께서 죽도록 충성하는 자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신다는 게 괜한 얘기시겠는가? 성경말씀을 우습게 알고, 값싼 싸구려복음을 믿는 자들의 말로는 심판대 앞에서 확인하게 될 것이다. 섬뜩하고 두려운 일이다.

 

 


 
      영성학교는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열려있다.|

 


얼마 전에 비트코인 광풍이 불었다. 수익과 손해는 거의 도박수준이었지만, 일확천금에 눈이 먼 사람들이 한 여름밤의 불나방처럼 모닥불에 뛰어들었다. 많은 이들이 그들의 어리석은 행태를 비난하지만, 답이 안 보이는 현실에 절망하는 젊은이들이 무모한 일에 인생을 걸고 있다. 그러나 세상은 그런 일들이 반복된다. 얼마전만해도,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은 다단계사업이 그랬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이유는, 인생의 불행에 빠져서 도저히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교회에도 있다. 한줄기 희망을 품고 교회에 나왔다가 도로 세상으로 되돌아간 사람들이 천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지옥에 던져질까 두려워서 그냥 교회에 눌러앉기는 했지만, 행복한 삶에 희망을 포기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세상을 다스리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에서조차, 왜 이렇게 실망스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5:25~29)

 

위의 여인은 고칠 수 없는 혈루증으로 의사를 찾아다니며 전 재산을 털어 넣었지만 병만 깊어졌다. 그러나 그녀는 예수님을 찾아와서 옷에 손만 대어도 낫는다는 믿음으로 소원을 이루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읽으며 이 여인의 행동에 용기를 내어 교회에서 시키는 대로 믿음을 보이고 있다. 주일성수와 십일조, 새벽기도와 각종 봉사까지 지갑을 탈탈 털어 넣고 파김치가 되도록 교회마당을 밟고 있다. 그래서 당신은 혈루병 여인처럼 불행이 끝이 나고 행복한 삶을 되찾으셨는가?

 

필자가 대학을 졸업하고 군에 다녀와서 결혼을 했을 때가 80년대 말이었다. 그때 교회가 최전성기였다. 당시 서울에 올라와서 필자가 다니기 시작했던 교회는, 교인이 겨우 수백 명의 중견교회에서 무려 만 명이 넘는 대형교회로 급성장했다. 담임목사는 설교단상에서 기도만 하면 불행한 삶에 벗어나 형통해지고, 고질병과 정신질환이 낫고, 가난뱅이에서 부자가 되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믿으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그래서 새벽기도회에 불이 붙었고 금요철야기도회에 사람들이 빼곡하게 들어찼다. 기도원마다 부흥회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 때 소원을 이루고 성공한 사람들이 전혀 없었던 것이 아니다. 바로 담임목사였다. 그들은 번영신학과 기복신앙으로 목회성공을 이루어서 억대연봉에 고급차를 차고 골프를 치러 다녔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인들은 가정이 무너지고 지갑이 털리고, 희망고문으로 인생의 짐 위에 신앙의 짐을 지고 비틀거리다가 교회를 떠난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지금의 교회는 텅텅 비어가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을 조롱하고 경멸하고 멸시하고 있다. 일이십년 뒤에 노인들이 세상을 떠나면, 우리네 교회는 건물만 뎅그러니 남아있는 유럽의 교회를 닮아갈 것이다. 텅텅 비고 있는 주일학교와 학생부와 청년회의 실상이 우리네 교회의 미래를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목회자들은 남아있는 교인들이 다른 교회로 옮길까봐, 교인들에게 각종 감언이설로 귀를 가렵게 하는 축복과 덕담과 위로와 격려로 도배하다시피하고 있다. 그래서 당신은 교회에 와서 삶이 형통해지고 행복해지셨는가? 고질병이나 정신질환이 낫고, 악성부채가 해결되어 극빈한 삶에서 부유하고 넉넉하게 회복되었으며, 직장과 사업은 불행의 여파와 상관없이 잘 나가고 있으며, 자녀들은 우등생이고 모범학생이며, 갈등과 싸움으로 상처만 주고받던 가족들은 용서와 화해로 사랑이 넘치는 가정으로 바뀌었으며, 고단하고 팍팍한 삶에서 평안하고 형통한 삶으로 변화되었는가? 만약 교회에서 시키는 대로, 모든 예배에 성실하게 참석하고 십일조를 비롯한 각종 헌금을 넘치도록 드리고, 새벽기도회에 성실하게 참석하고 각종 교회봉사에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희생적인 신앙행위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이었다면 말이다. 만약 그랬다면 교회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을 것이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28:1~6)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1:1~3)

 

하나님이 살아계시며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 맞는다면, 그리고 위의 성경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의심치 않는 크리스천이라면, 당신의 영혼과 삶의 모습을 날카롭게 살펴보시라. 그래서 당신이 지금까지 교회에서 시키는 대로 교회의 예배의식에 참석하고 희생적인 신앙행위가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행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라면, 당신의 삶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증명해보이셔야 한다. 그래서 하는 일마다 형통하고 열매가 풍성하게 맺고 있으며, 사는 게 너무 행복하고 즐거워서 천국이 따로 없어야 할 것이다. 아니라면 당신의 신앙행위는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보라. 그들은 우리네 교인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경을 통째로 암송하였고 안식일과 십계명을 철저하게 지키고, 십일조와 하루 3번의 기도 그리고 600여 가지의 율법의 행위들을 철저하게 준행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독사의 새끼라는 저주를 들으며 지옥의 불에 던져졌다. 그러므로 당신이 지금까지 해왔던 신앙의 결과가 현재의 삶의 모습에서 증명되지 않는다면, 당신은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으면 이 땅을 떠나면 지옥불에 던져지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천국은 우리 안에 있으며, 사도바울은 천국은 말이 아니라 능력으로 증명되어야 한다고 선포하였기 때문이다. 필자가 영성학교를 연지 3년이 넘었다. 지금까지 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지대한 관심을 표명하였고, 백여 명이 넘는 식구들이 전국각지에서 찾아와서 공동체를 이루었다. 그래서 당신은 궁금하실 것이다. 그래서 필자의 영성학교에 온 사람들은 불행한 삶에서 행복하게 회복되었냐고 말이다. 그래서 오늘 필자가 이 글을 쓰는 이유이다. 궁금하시다면 당신이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시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