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법
성경의 위인들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 하나님이 누구신가? 세상을 지으시고 우주를 운행하시며 대자연을 다스리시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삶은 경이로움 그 자체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아브라함이나, 야곱, 요셉, 사무엘, 다윗, 다니엘 그리고 베드로와 사도바울의 삶을 부러워한다. 그렇게 꿈같은 세계를 동경하다가, 성경을 덮으면서 고단하고 팍팍한 현실의 삶으로 돌아온다. 목회자들은 입만 열면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며 진리라고 입에 침을 튀기면서, 믿음만 가지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놀라운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목청을 돋우고 있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도 그런 삶을 살지 못하면서 말이다. 그게 우리가 마주한 암울한 현실이다. 그러나 다시 눈을 감고 생각해보자.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요셉의 하나님이시라면 우리의 하나님도 되실 것이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나 요셉에게 역사하셨던 하나님이, 우리의 삶도 이끄실 것이 분명하지 아니한가? 그러나 그런 삶을 직접 체험한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 눈 씻고 찾기 어렵다. 필자가 성경의 위인들처럼 놀라운 삶은 아니지만, 그래도 소박하고 소소하게나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물론 필자의 말이 사실인지는 여러분이 날카롭게 분별하고 꼼꼼하게 검증하시기 바란다. 왜 이런 주장을 하냐면, 필자가 그런 삶을 살지 않고서는, 하나님이 이끄시는 인생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여러분이 필자의 말을 인정하셨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놀라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 살펴보고 싶다.
성령과 깊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라.
1. 해박한 성경지식을 쌓기 위한 습관을 들이라.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크리스천이라면, 날마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찾고 읽으면서 그 뜻대로 삶에 적용해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우리네 교인들이 습관적으로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물론 수십 년 동안 교회에 다니면서 수많은 설교를 들어와서 성경의 내용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을 지식으로 배워서 머리에 저장한다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지 않는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와서 삶에 적용해야 비로소 하나님의 존재가 드러나게 된다. 그러나 대다수의 교인들이 매일 성경을 습관적으로 읽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들은 하나님을 만날 생각조차 없다는 증거이다. 하나님의 뜻을 알려면 날마다 성경을 읽고 깊게 묵상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래서 이렇게 오랫동안 성경을 가까이 하면 성경전체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가슴에 새겨지게 된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성경을 암송해서 가르쳤다. 그러나 정작 성경의 주인인 예수그리스도를 알아채지도 못했다. 그 이유는 성경을 읽는 목적이 주인의 뜻을 알아서 삶에 적용하려는 게 아니라, 성경지식을 자랑하려는 자기 의를 내세우는 목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는 목적이 하나님을 만나서 그 분의 뜻을 깨달아 삶에 적용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남을 가르치거나 성경지식을 자랑하기 위한 것이라면 성경지식을 많이 쌓을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을 만날 수도 하나님의 뜻을 알 수도 없다. 어쨌든 날마다 성경을 가까이 하여 성령의 비추심으로, 깨달음으로 가슴에 새겨지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지도 못하므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없다. 이 시대는 인터넷의 발달로, 24시간 유명한 목사들의 설교를 들을 수 있고 신학교에 가지 않더라고 손쉽게 방대한 신학정보를 손쉽게 접할 수 있다. 그러나 날마다 성경을 읽는 습관을 읽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성경은 읽을 때마다 새롭다. 왜냐면 신앙의 수준이나 자신이 처한 환경에 따라 말씀이 달리 들어오기 때문이다. 성경을 읽을 때 성령이 조명하셔야 비로소 깨달음으로 가슴에 새겨지는데, 이때의 느낌은 말씀이 달고 쫀득쫀득하다. 그러므로 당신이 성경을 읽을 때 건조하고 심드렁하다면 가슴으로 내려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를 동반하면서 성경을 읽어야 비로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게 된다.
2.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의 습관을 필수적이다.
말씀과 기도는 하나님을 만나는 양대 산맥이다. 그러므로 기도하지 않고 성경을 읽는다면 머리에 저장되는 지식에 불과할 것이다. 우리네 교회가 성경지식을 쌓은 일은 열심히 하지만 기도를 동반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한다. 필자가 말하는 기도는 자신의 소원을 이루어달라는 간구가 아니라, 하나님과 깊고 친밀하게 교제하는 기도이다. 그러나 이런 기도를 가르치는 교회는 거의 없다. 하나님과 사귀는 기도는 하나님의 이름을 간절히 부르는 기도이다. 그래서 쉬지 않고 전심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성령의 내주를 요청하는 기도의 습관을 들여야 한다. 그래서 성령이 들어오셔서 만나주셔야 비로소 성령의 인도하심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깊고 친밀한 기도의 습관을 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어떻게 성령의 인도하심을 경험할 수 있겠는가? 많은 이들이 기도할 때 떠오르는 생각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 생각이 성령이 주시는 생각이라고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가? 성령과 동행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귀신의 지배를 받는 사람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성령이 함께 하시는 증거나 변화, 능력과 열매가 없는 사람의 생각이, 성령이 주시는 생각일 리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삶을 살려면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의 습관은 필수적이다. 그래서 영성학교에서 이 기도를 훈련하는 사역을 하고 있는 이유이다. 그래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영성학교에 찾아와서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훈련에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부분의 우리네 교인들이 기도의 습관이 없다. 성령께서 필자에게, 하루에 한 시간도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이 어떻게 나를 만나겠느냐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자신 안에 성령이 계시다는 것을 의심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렇다면 성령과 동행하는 삶이라는 것을 성경의 위인들처럼 증명해보이시라. 그러나 세상 사람과 다르지 않게 무능하고 무기력한 믿음으로 고단하고 팍팍하게 살고 있다면, 어떻게 성령과 동행하는 삶이겠는가? 지나가던 개가 배꼽을 잡고 웃을 일이다. 성령과 동행하는 기도의 빈도와 강도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부르며 간절하게 성령의 내주를 간구하여야 한다. 그것도 적당하게가 아니라, 쉬지 말고 기도하고 항상 깨어서 기도 하는 것이다.
어떻게 성령의 인도하심을 적용할 것인가?
그렇다면 쉬지 않고 기도하며 날마다 성경을 습관적으로 읽는 크리스천이라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살아가게 되는가? 일단 기본적인 조건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영안의 눈이 열려야 한다. 영안의 눈이 열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과 귀신의 영을 분별하여서, 귀신의 소리와 성령의 소리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영의 분별은 세상의 지식과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으로 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의 영역이고 은사이다. 그래서 분별의 은사를 받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지 찬찬히 살펴보도록 하자.
1. 자신의 생각을 버리라.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결정을 하게 된다. 대학교와 전공학과, 결혼배우자, 직업, 직장 등 굵직굵직한 결정으로부터, 교회와 교회지도자를 선택하고 친구를 사귀는 등 비교적 덜 중요한 선택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결정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런 결정을 하는 잣대가 무엇인가? 아마 세상풍조를 따라서 세상의 지식과 인본적인 방식이 아닌가?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기도자리에 앉아서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기보다, 자신이 결정한 직업이나 결혼배우자 혹은 사업이 잘되기를 기도하고 있다. 그게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고, 그 뜻을 따라 사는 것인가?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생각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죄다 버려야 하지 않겠는가?
모든 사람의 결국은 일반이라 이것은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 중의 악한 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여 그들의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고 있다가 후에는 죽은 자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전9:3)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창8:21)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렘17:9)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8:7)
성경은 일관되게 사람의 마음의 생각은 부패하였고, 어려서부터 악하며, 사람의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며,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다고 선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에 와서 영접기도를 하고 주일성수를 하면, 모든 마음의 생각이 자동적으로 선하게 바뀌어 지며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생각을 하게 되는가? 아니다. 사람들은 교회에 와서조차 육체의 욕심을 채우는 세속적인 욕망을 채우려고 희생적인 신앙의 강도를 높이고 있으며, 기도자리에 앉으면 너도나도 부자가 되고 성공하게 해달라고 외치고 있지 않은가? 그 어디에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하나님이 기뻐하는 기도는 안중에도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런 사악하고 가증스런 사람들의 기도에 외면하시는 이유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생각은 이미 죄로 변질되어 부패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죄다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16:24,25)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예수님은 제자의 첫째 조건이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자기 부인이란 자기의 생각, 자신의 계획, 성취, 소원, 목표, 선호하는 것을 죄다 버리는 것을 말한다. 또한 사도바울은 자신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은 목숨이라고 선포하고 있다. 그래서 날마다 죽노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려면, 먼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자신의 생각을 포맷하고 그 어떤 자신의 생각도 차단해야 할 것이다.
2. 하나님의 뜻을 검증하라.
하나님의 뜻인지 알려면 자신의 생각이 하나님의 뜻인지 검증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밝히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 그것도 성경 일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성경전체에서 밝힌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나 성경은 백과사전이 아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해박한 성경지식으로 성령이 주시는 깨달음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 곳곳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본적인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해박한 성경지식으로 무장하는 경지에 오르려면 오랜 경건의 시간이 걸려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잘 알지 못하다면 성경적이고 성령이 주시는 지혜가 출중한 지도자에게 조언을 얻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목회자나 교회직분이 높다고 해서 성령의 지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자신이 삶을 통해 성취한 성령의 열매로 검증된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적지 않은 목회자들은 교묘하게 자신의 욕심이나 속내를 숨기고,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거나 주의 종의 말에 순종해야 한다면서 윽박지르기 일쑤이다. 이런 목회자는 악한 종이므로 도망치시기 바란다.
또한 우리네 교회주변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이라는 제목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책도 있고, 이를 훈련시키는 단체와 교육 프로그램도 있다. 이들은 기도할 때 마음을 비우고 들려오는 생각이 바로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참선이나 초월명상, 마인드 컨트롤 등에서 하고 있는, 힌두교의 뉴에이지 사상에 배경을 두고 있는 귀신의 방식과 흡사하다. 어떤 목회자는 관상기도, 향심기도라고 이름을 달리하여 부르기도 하지만 방식은 똑같다. 한마디로 이 같은 방식은 귀신의 소리를 듣는 방법이다. 기도할 때 떠오르는 생각이라고 죄다 성령의 소리가 아니다. 대부분 귀신의 소리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음성인지 분별하려면, 평소에 성령과 동행하는 증거, 변화, 능력 열매 등으로 충분히 검증이 되었으며, 그간의 삶에서 풍성한 성령의 열매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열매가 없는 사람들이 기도할 때 들어오는 영음이나 생각은 죄다 귀신이 속여서 넣어주는 생각일 뿐이다.
3. 성령이 인도하시는 방식은 순적하고 형통하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시1:3)
곧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왕하18:6,7)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창39:2)
성령이 인도하시는 인생은 순적하게 길이 열리고 형통한 열매를 얻게 된다. 그러나 성령의 뜻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하는 일에 열매가 없고 고난과 역경의 수렁에 빠져 고통당하는 이들도 허다하다. 그러면서 이들은 자신의 처지가 하나님이 주시는 연단이며 고난이라고 변명하며 합리화를 하고 있다. 물론 하나님의 사역을 할 때 고난과 박해가 동반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행할 때 필연적으로 부딪치며 예견된 고난이다. 그러나 자신의 어리석음과 미련함으로, 귀신이 쳐놓은 죄의 덫을 밟아서 겪는 고난이라면 그게 어떻게 하나님의 뜻이겠는가? 성경에 약속한대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경의 위인들은 순적하고 형통한 삶을 누리며 살아갔다. 고난과 핍박을 받았던 초대교회의 교인조차도 기쁨과 평안함으로 고난과 순교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하나님이 자비로우시고 전지전능한 하나님이시라면, 자신의 자녀들이 세상에서 굶주리고 불행에 빠져 고통당하는 것을 보고만 계시겠는가? 성령께서는 필자에게 사역을 열어주시면서, 앞으로 삶과 사역의 필요를 넉넉하게 채워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지금까지 그 약속을 지키고 계시다. 그러므로 삶에 순적하고 형통한 열매가 있는지 날카롭게 살펴보시라.
4. 환경이 순적하게 열렸어도 시험해보고 하나님의 인도를 검증하라.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맡게 할 것이요(딤3:10)
직장을 구하거나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기도하면서 입사가 허락되었고 새로운 분야의 사업제안이 들어왔다면 그게 하나님의 뜻인가?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순적하게 환경이 열리고 적절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고 할지라도 급하게 결정하지 마시라.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하나님이 아니라 악한 영들이 지배하는 곳이다. 그러므로 악한 영들도 재물과 사업 그리고 혹하게 하는 좋은 기회를 줄 수 있다. 그러므로 순전하게 환경이 열리고 사람을 붙여주었다면, 이 기회가 하나님이 열어주신 것인지 미리 마음을 주지 말고 멀찍이 떨어져서 순적하게 진행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이 때 주의해야 할 것은 성급하게 마음을 주어서 판단을 흐리게 해서는 안 된다. 또한 자신이 하고 싶은 것, 원하는 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리화해서는 안 된다. 제3자 관찰자 입장에서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고 지켜보라. 하나님의 뜻이라면 순적하고 형통하게 열매가 열릴 것이고, 아니라면 열매가 익기 전에 떨어질 것이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간증하는 것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아무런 열매가 없는 일이 허다하다. 그러므로 어떤 일에 환경이 열렸다고 할지라도 시간을 두고 지켜보면서 하나님의 뜻인지 검증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기적적으로 열매가 맺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요3:5~8)
지금까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삶을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펴보았다. 결론적으로, 성령이 동행하시면서 인도함을 받는 인생을 살려면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성령이 인도하는 사람은 바람처럼 자신의 뜻이 아니라 성령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며, 삶과 영혼에 풍성한 성령의 열매가 풍성하게 맺힐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하는 일에 형통하고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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