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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기도는 턱없이 부족하다.| - 신상래 목사

Joyfule 2014. 8. 4. 07:27

 

  우리의 기도는 턱없이 부족하다.| - 신상래 목사

 

 

앞서 언급한대로, 필자는 20여년의 평신도시절 성실하게 기도하려고 애썼다. 새벽기도회에는 정규적으로 참석하지 못했지만 나름 기도하려고 노력했다. 그렇지만 결과는 형편없었다. 그러다가 목회자가 되어, 힘들었던 기도훈련을 거치면서 적지 않은 기도의 열매를 얻고 나서 그 시절을 돌아보니 감회가 새롭다.

 왜 평신도 시절에는 기도의 열매가 없었던 것일까? 그 원인은 한마디로 기도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새벽기도회에 참석해서 30분정도 기도하면 열심히 기도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각이나 평가가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뜻이다.

우리는 성실하게 기도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기도의 열매가 없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지 않은가? “강한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자가 강하다”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열심히 기도하더라도 기도의 열매가 없다면 쓸모없는 기도일 뿐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자신을 만족시키는 기도를 했을 뿐 하나님을 만족시키는 기도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 숱한 날의 기도가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고 속절없이 사라지고 말았던 것이 아닐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의 모습

“당신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의 분량의 채우고 있습니까?” 라고 물어본다면 그렇다고, 고개를 힘차게 끄덕일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니, 사람 앞에서는 습관적으로 “저는 기도가 부족해요.”라고 말은 하겠지만, 속으로는 제법 하고 있다며 자신에게 후하게 점수를 주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도 그럴 법이, 새벽기도를 빠짐없이 나가는 것은 물론 교회에서 정하는 기도회에 성실하게 참여하면서 가끔씩 기도원에 가서 금식기도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기도회에 얼굴도 볼 수 없는 다른 교인들에 비하면 자신은 정말 기도를 열심히 하고 있지 않은가? 오래전에 필자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기도의 모습은 우리의 판단일 뿐이다. 다른 교인들과 비교해서 기도를 많이 하는 게 중요하지 않으며, 교회에서 정한 기도회에 빠짐없이 참여한다고 잘하고 있는 게 아니다. 성경에 기록한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여야 한다.

   살전 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위의 바울의 기도에 대한 권면은 하도 유명해서 더 이상 언급할 게 없을 정도이다. 그렇지만 그 말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과연 누가 있을까? ‘쉬지 말고’ 라는 말은 헬라어 ἀδιαλείπτως(아디아레이프토스)라는 말을 번역한 단어이며, 본래의 뜻은 ‘끊임없이’라는 말이다.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은, 아예 기도원에서 살고 있는 기도원 원장이라면 모를까 일상에 바쁜 생활인의 입장에서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도저히 할 수 없는 행위를 주문했을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우리가 해보지도 않고 할 수 없다고 판단하는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는 불신앙의 소치이다. 성경의 말씀은 과장되거나 허언(虛言)이 전혀 없다. 믿음이 없기에 처음부터 받아들이지 않을 뿐이다.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을 다른 말로 바꾸면 항상 기도하는 행위가 된다. 항상 기도하라는 권면은 바울이외에 예수님도 즐겨 사용하셨다.(눅18:1) 로마 백부장인 고넬료는 항상 기도하는 모습이 하나님을 감동시켰으며(행10:2), 사무엘은 기도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게 해달라고 간구했다.(삼상12:23)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우리와 비교하기 어려우니 그렇다 치고, 바울이나 사무엘은 놀라운 기도의 능력을 지녔으며 늘 하나님과 대화하며 동행한 성경의 위인들이다. 그들 스스로가 실천하지 않는 행위를 우리에게 권면할 리가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은 일상의 삶에서 끊임없이 기도하며 살았던 것이다.

우리가 배우는 기도의 모습은 교회에서 정한 기도회에 참석하여 기도하는 방식이지만 성경에는 그런 말이 전혀 없다. 사실 끊임없이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려면 교회에 가서 기도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장소나 시간에 구별이 없이 언제 어디서나 기도할 수 있는 습관을 들여야 가능하다. 그렇지만 우리네 교회에서는 교회중심의 신앙을 강요하기 일쑤이다.

삶의 현장에서 예배의 삶을 살기보다 교회의 예배의식에 성실하게 참여하는 것을 배우고, 불우한 이웃을 돌보는 자비의 삶을 배우기보다 교회에 많은 헌금을 드리는 것으로 대신하게 된다. 교회의 목회자들은 무조건 교회에서 시행하는 예배의식과 교회 내에서의 봉사, 교회에서 정한 전도행사에 참여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교회에서 시키는 대로 성실하게 참여하고 순종하면 천국에 가는 것은 물론이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을 수 있다고 배운다. 물론 신앙을 배우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습관을 들이는 데 정해진 규범이나 행동양식을 따라가면 쉽게 체득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게 성경적이지 않다면 문제는 커진다.

 

목회자의 입장에선 교회에 나오기만 하면 교인들을 양육하는데 편의적일 수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방식이 아니라면 아무런 열매가 없다. 일상의 삶에서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을 가르치는 게 어렵다고 해서, 교회에서 시행하는 기도회의 참석을 종용하는 것으로 대신하는 것은 편리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과 깊고 친밀하게 만나는 기도의 습관을 들이지 못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지 않은가?

쉽다고 해서 좋은 것이 아니고 어렵다고 해서 나쁜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만나 깊게 교제할 수 있어야 기도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지, 상대적으로 쉽고 편한 방식을 취한다고 능사는 아닌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배운 기도방식이 형식적인 면에 치우친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기도는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만나는 통로이다. 외형적인 게 중요하지 않다. 장소와 시간을 가리지 않고 하나님을 찾고 그분의 자비하심을 요청하는 게 기도의 본질이다. 하나님은 교회에만 계시는 분이 아니다. 그러나 잘못배운 기도방식이 평생 하나님을 만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도의 분량

필자가 신학교를 졸업하고도 미련 없이 세상으로 나갔지만 7년이 지나 다시 사역을 하고자 마음먹고, 그동안 실패뿐이었던 교회의 신앙방식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한 하나님의 방식대로 철저하게 따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성경을 꼼꼼하게 읽으면서 삶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문제가 기도하는 방식이었다. 기도란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이므로 크리스천에게 이보다 더 중요한 행위는 없다. 그렇지만 성경을 샅샅이 뒤져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도의 방식을 시원하게 말해주는 대목은 없었다. 그러다가 발견한 말씀이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바울의 권면이었다. 그렇지만 발견하고 나서의 희열은 온데간데없고 더욱 곤혹스러워졌다. 쉬지 말고 기도하는 방식은 어느 정도의 빈도와 강도를 말하고 있는 것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항상 기도하는 게, 말은 쉬었지만 그동안 교회에서의 기도방식만을 알고 있는 당시의 필자는 그것을 삶에 적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지만 고민한다고 해서 알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그냥 생각날 때마다 기도하기 시작했다. 집이나 교회, 자동차, 공원 심지어는 여행 중의 열차 안에서나 병원에서 치료를 기다리고 있을 때에도 기도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무모한 시도이기도 했지만, 인간적인 생각으로 미리 재단하지 않고 오로지 성경적인 기도방식을 그대로 따르겠다는 확고부동한 마음으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몇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성경에 기록한대로 하나님을 만나고 풍성한 기도의 열매를 맺게 되면서 항상 기도하던 성경의 위인들의 기도모습을 환하게 깨닫게 되었다.

 

필자처럼 우직스럽게 하루 종일 기도를 시도하고 기도에 몰입하는 기도방식은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야하는 현대인으로서는 어려운 일이다. 필자는 목회수입이 없기에 아내와 화장품 방문판매를 하고 있다. 그래서 오전에는 서재에서 기도하고 말씀을 읽고 난 뒤 컴퓨터를 켜서 뉴스검색을 하거나 상담에 대한 답변을 해주고 책이나 칼럼을 쓰고 있다.

그러다가 오후가 되면 아점을 먹고 아내와 장사를 하러 떠난다. 화장품 방문판매를 한지 10여년이 가까워져서 수입은 많지 않지만 그런대로 틀이 잡혔다.

처음에는 필자도 캐리어에 상품을 싣고 시장이나 식당가를 다니면서 팔았지만, 지금은 단골고객이 생겨 판매는 아내에게 맡기고 상품주문을 하거나 대리점에 들러 상품을 차에 싣고 배달을 하거나 하루에 두어 차례 아내가 판매할 영업지역을 옮겨주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틈나는 대로 자동차 안이나 공원에서 기도를 하거나 성경을 읽다가 오후 7시가 넘으면 사무실로 돌아와 운동, 식사, 휴식 등을 마치고 저녁 10시가 되면 아내와 함께 기도하다가 자정이 가까워지면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든다.

 

필자의 일정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유는 필자도 다른 이들처럼 생업에 종사하며 사역을 하면서 경건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밝히고 싶어서이다. 오전에 2시간 오후에 1~3시간, 저녁에 2시간 남짓이 필자가 매일 기도하고 성경을 읽는 시간이다. 오후에는 생업으로 기도시간이 들쑥날쑥 하지만 오전이나 저녁에는 거의 고정적으로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있다. 시간으로 따지면 4시간에서 7시간 정도이다. 필자의 기도시간을 밝히는 이유는 우리가 시행하고 있는 기도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것을 비교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많은 시간을 기도한다고 해서 응답이 빨리 오거나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 것은 아니지만 기도시간이 부족하다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 몸에 필요한 칼슘이나 비타민의 양에 대한 광고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웃기는 얘기지만, 기도시간도 여기에 적용할 수 있을까? 필요한 기도의 양을 계량화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성령과 깊고 친밀하게 유지할 수 있는 기도시간은 가늠할 수 있다. 사실 필자는 이 문제를 두고 고민한 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하루에 꼭 필요한 기도의 양이 어느 정도인가는 기도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필자가 절대로 빼놓지 않는 기도시간은 아침 이른 시간에 일어나서 기도하는 때이다.

필자는 교회의 새벽기도회에 참여하지 않고 직장인도 아니라서 그리 일찍 일어나지 않는다. 새벽 1시경에 잠을 자서 7시에 일어나니까 약 6시간정도 자는 것을 규칙으로 삼고 있다. 일어나면 잠을 깨기 위해 양치질을 하고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한다. 그리고 서재에 들어가 기도를 시작하면 통상 1시간에서 1시간 30가량 걸린다.

아침기도는 꼭 빼놓지 않는다. 그렇지만 성령이 충만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이 시간만으로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여러 차례 느꼈다. 성령이 내주하는 삶을 오래 유지하다보면 부족한 상태를 아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밤에도 1시간 30분가량 기도하는 것을 습관으로 삼고 있다.

하루 두 번 최소한 2시간 이상의 기도가 성령이 내주하는 상태를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기도시간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지만 보통의 크리스천들은 새벽기도회에 나가 30분 기도하는 것도 어려워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필자가 기도를 하면 최소한 1시간이상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는 성령에 몰입하는 기도에는 그만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시작하면 자신이 원하는 기도목록을 외쳐대기 시작하지만, 이러한 기도방식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기도이다.

필자는 기도를시작하면 성령이 내주하시기를 간절히 요청하며 찬양과 감사를 반복하는 시간을 최소한 20분이상 하고 있다. 아니, 20분 이상 되어야 성령이 충만함을 느끼고 기도가 몰입이 되기 시작한다. 필자는 침묵으로 기도하기 때문에 성령의 임재와 충만함을 민감하게 느끼면서 기도하는 편이다. 기도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으면 주기도문과 바울의 기도문묵상 그리고 사역과 중보기도 등이 끝나면 최소한 1시간은 기본이다.

사실 아침에는 시간계획에 따라 대략 기도내용이 정해져있어 시간이 비슷하지만 낮이나 저녁때는 성령에 이끌리는 기도를 하기 때문에 기도시간도 천차만별이다. 어째든 성령에 몰입되는 기도를 하려면 최소한 1시간 정도는 필요하다. 이러한 필자의 주장에 머리를 흔드는 이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루에 30분 기도하든 1시간 기도하든 기도의 열매가 없다면 허망한 일이다. 기도시간을 얼마로 정하는 게 필요한 게 아니라  하나님과 깊고 친밀한 기도를 하는 게 중요하다. 필자의 체험에 의하면 기도할때마다 최소한 1시간 그리고 하루에 두 번의 기도가 필요하다. 많은 사람이 정규적으로 성실하게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가 나타나지 않기에 중도에 포기하기 일쑤이다. 그 이유가 하나님과 깊고 친밀하게 만나는 기도시간이 절대부족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