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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쉼 없는 기도습관을 들일 것인가?

Joyfule 2014. 8. 5. 08:53

 

  어떻게 쉼 없는 기도습관을 들일 것인가? - 신상래 목사

 


필자가 처음 기도훈련을 시작할 때가 생각난다. 신대원을 졸업해서도 목회의 길로 가지 않고 세상으로 나갔던 필자는 그 후 오랫동안 고통스러운 삶을 되풀이해야했다. 아내에게 생계의 짐을 내맡겨버리고 낚시터에서 세월을 보내던 중 하나님이 또다시 조용히 나를 부르셨다. 신학교에 갈 때도 세 번이나 사명을 검증받았던 터라 하나님의 의중을 아는 게 어렵지 않았다. 그렇지만 욕심과 아집을 버리지 못했었기에 무심한 세월만 흘려보냈었다. 목회는 아니더라도 자그마한 사역이라도 해야 속죄가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역의 길은 갑자기 열렸다. 무작정 전화로 요청한 기독교 방송국(CBS)에서 자신들의 홈페이지에 전문게시판을 만들어주어 크리스천 재정관리 상담을 시작하게 된 필자는 곤혹스런 상담에 매일처럼 진땀을 흘려야했다. 오랫동안 쉬었던 탓에 성경지식이 바닥이 났고 그동안 끊긴 하나님과의 통로는 기도를 다시 시작하는 게 어색하기만 했다. 사실 기도를 다시 시작하는 게 망설여지는 이유는, 평신도시절에도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주지 못했고 기도의 열매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교회에서의 기도관습이 아니라 성경에서 요구하는 기도방식을 따라 하기로 마음먹었다.

 

기도에 전념하라.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라 영이시기 때문에 영적인 방법을 통해서만 그 분을 만날 수 있다. 그 방법은 기도가 기본적인 통로이다. 기도를 통해 그분과 대화하며 친밀한 감정을 나눌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 성경에서 밝히는 기도의 방법은 우리가 관행적으로 기도하는 모습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우리는 새벽기도회에 참석해서 30분 남짓 기도를 한다 해도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입장이다. 그렇지만 이는 우리의 생각일 뿐이다. 하루 30분 정도의 기도시간을 가지고 하나님과 깊고 친밀하게 대화를 나누며 살 수 없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기도의 방법은 무엇일까?

 

‘기도에 항상 힘쓰며’(롬12:12)와 ‘기도를 계속하고’(골4:2)의 성경말씀의 한글번역은 조금 다르지만 헬라어 원어는 같은 단어이다. προσευχῇ προσκαρτεροῦντες (프로슈케 프로스카르테룬테스 롬12:12), προσευχῇ προσκαρτερεῖτε (프로슈케 프로스카르테레이테 골4:2)에는 ‘기도’라는 단어 προσευχῇ(프로슈케)와 ‘전념하다’라는 단어 προσκαρτερεω(프로스카르테레오)가 동일하게 사용되었다. προσκαρτερεω(프로스카르테레오)라는 단어는 ‘계속하다’라는 뜻도 있지만 여기에는 ‘전념하다’라는 뜻이 더 잘 들어맞는다. 결국 바울이 로마서와 골로새서에서 밝힌 기도의 방법은 ‘기도에 전념하라’는 말이 된다. 바울은 기도에 전념하는 삶을 살았기에 제자들에게 자신과 똑같이 따라하라고 부탁했을 것이다. 또 다른 성경말씀에서 바울의 기도방법을 찾아보자.

   살전 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이 말씀의 헬라어 단어는 ἀδιαλείπτως προσεύχεσθε(아디아레이프토스 프로슈케스데)이다. προσεύχεσθε(프로슈케스데)는 위에서처럼 ‘기도’라는 단어이고 ἀδιαλείπτως(아디아레이프토스)는 ‘끊임없이’라는 뜻이다. 즉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성경말씀은 끊임없이 기도하라는 뜻이다. 물론 그 말의 번역은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받아들이는 의미의 차이는 적지 않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말은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끊임없이 기도하는 뜻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틈을 내서 기도하고 틈틈이 기도하는 모습이다. 이처럼 바울이 기도의 방법으로 제시한 것은 전념을 다해 끊임없이 기도하라는 말이다. 사실 이같은 방법은 바울만 말한 것은 아니다. 예수님도 항상 기도하라고 하였고(눅18:1), 고넬료도 항상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감동을 얻게 되었다.(행10:2) 사무엘도 기도를 쉬는 죄를 범치 말하고 한 말씀으로 보아(삼상12:23), 그가 일상의 삶에서 끊임없이 기도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딤전 2:1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우리는 기도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게 적지 않다. 많은 사람들은 기도가 부자 하나님께 자신의 요구사항을 관철시키기 위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관철시키고 싶은 욕구가 더욱 강렬하다면 희생적인 강도를 더 높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40일 작정새벽기도는 기도원에서의 40일 금식기도로 바뀌고, 이도 모자라 천일기도회를 갖는다고 한다. 그냥 기도하는 것보다 헌금을 드리면서 기도하거나 금식기도를 하면 효험(?)이 더욱 좋다는 기복적인 취향을 곁들이기도 한다.

기도를 말하는 헬라어 προσευχῇ(프로슈케)는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종류의 기도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찬양, 감사, 회개, 영광돌림, 간구, 중보기도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다윗의 시편은 그의 기도를 시로 표현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그 대부분이 찬양과 감사인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리고 보통 간구로 번역되는 δεήσις(데시스)는 이는 요청의 뜻이 강한 기도이다. 우리가 보통 시행하고 있는 기도의 형태는 요청의 뜻인  δεήσις(데시스)로 생각하면 무방하다. 도고로 번역되는 ἐντεύξις(엔튝시스)는 남을 위하여 기도하는 중보기도의 뜻으로 가장 많이 사용된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기도행위를 보통 δεήσις(데시스)인 요청하는 기도를 염두에 두고 있지만, 그보다는 넓은 의미인 προσευχῇ(프로슈케)로 찬양과 감사, 회개, 간구, 중보기도가 모두 들어간 기도를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신다고 보아야한다. 위에서 인용한 것처럼, 바울이 그의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보면 기도와 간구와 도고를 죄다 언급한 것을 보아 바울이 어떤 내용으로 기도를 했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라.

나는 기도훈련을 시작할 때 아무 생각 없이 하나님만 부르는 것으로 시작했다. 어떻게 기도를 해야 하는 지, 어떤 내용의 기도를 해야 하는지 에 대한 고민이 없이, 일단 하나님부터 찾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외치는 기도는 기도가 아니라 독백이기 때문이다. 평신도시절의 필자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크리스천이 그렇다. 하나님을 만나지 않은 채 그냥 얻어내고 싶은 목록만 반복해서 외치고 있다.

   렘 29:13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은 예상외로 어렵지 않았다. 위의 말씀대로 찾고 찾으면 만나주신다고 성경에 약속했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예레미야서뿐 아니라 성경 여러 곳에 소개되어 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 니라”(잠8:1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7:7)에서도 하나님은 자신을 간절히 찾는 자들에게 나타나실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있다.  

 

‘간절히’라는 단어는 견고한 믿음을 들어내는 태도이다. 기도와 믿음은 강력하게 붙어있어 떼어낼 수 없는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견고한 믿음이 있다면 불굴의 기도를 하게 될 것이며 끊임없는 기도행위는 바위 같은 믿음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귀신들린 아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온 비유를 살펴보자. 귀신들린 아들을 둔 아버지는 예수님께 데리고 오기 전에 제자들에게 먼저 쫓아내달라고 찾아갔다. 그렇지만 제자들은 귀신을 쫒아내지 못했다. 나중에 제자들이 머쓱해져서 예수님을 찾아와 그 이유를 물으니 마태복음에는 “너희 믿음이 작은 연고니라”고 말씀하셨으며(마17:17), 마가복음에는 “기도외에는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막9:29) 같은 말씀을 두고 두 사도가 각기 다른 표현으로 기록한 것은, 기도와 믿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같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결론적으로 견고한 믿음이 있다면 간절히 기도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간절히 기도하는 방법은 통성으로 기도하거나 방언기도를 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마음의 자세이지 외면적인 모습은 아니다. 필자는 항상 침묵기도로 기도하는데, 그때마다 간절히 기도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래서 기도할 때마다 온몸에 힘이 들어가게 되며 애쓰게 된다. 또한 숨을 크게 들이쉬고 조금씩 내쉬면서 기도하기 때문에 침묵으로 기도하더라도 ‘쉬’하는 숨소리가 들리게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짧은 시간 기도하더라도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간절함이 없는 기도는 기도가 아니라 명상이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잡념이 들고 졸음이 쏟아지는 게 아닌가? 온몸에 힘을 주고 집중하려고 애쓰다보면 기도란 영적인 싸움이라는 사실을 저절로 깨닫게 된다.

 

필자는 처음 기도훈련을 시작할 때 하나님을 찾고 부르는 것만 무려 6개월이 걸렸다.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오신 느낌에 무지했기에, 만나주신다는 말씀을 붙들고 틈만 나면 끊임없이 기도했다. 하나님이 듣지 않으시다면 기도는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기에 하나님이 내 안에 찾아오실 때까지 그냥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분이 내 안에 들어오시기를 간절히 요청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무모한 행동이기도했지만, 아무도 기도를 가르쳐주는 이가 없었기에 성경의 말씀만 믿고 기도했던 것이다. 6개월이나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찾은 이유는 아무도 지도해주지 않았기에, 중간 중간 회의와 낙심이 들 때면 며칠이고 기도를 쉰 적도 있었고 집중력 있게 기도하는 훈련이 되지 않았기에 시일이 오래 걸렸다. 그렇지만 감사하게도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매달렸던 이유는 내 힘이 아니라 성령님이 인도해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훈련 덕분에 지금도 기도를 시작하면 약 2,30분 동안 하나님의 이름을 간절히 부르며 찬양하고 감사하는 시간을 항상 갖는다. 그래서 성령이 충만하게 되고 기도에 몰입될 때까지 기다리는 습관이 든 것이다.

 

하나님이 내 안에 오신 느낌은 평안과 기쁨이 넘쳐나고 기도가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드는 시점이다. 이때부터 성령이 인도하시는 기도를 하게 된다. 만약 기도에 집중이 안 된다면 그냥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찬양하며 감사하는 것만 해도 훌륭한 기도이다. 사실 하나님은 기도를 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생각을 잘 알고 계시다. 또한 하나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기도내용이 우리가 그분을 간절히 찾으며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찬양과 감사를 드리는 것이다.

 

자신만의 기도방식을 정하라.

거의 모든 크리스천이 기도를 하는 방식은 새벽기도회에 나가거나 교회에서 정한 기도회에 참석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새벽기도회에 나가려면 새벽 5시에 일어나야하는데, 새벽 1시가 넘어 잠자리에 드는 직장인들이 4시간도 안자고 새벽기도회에 나가는 일은 불가능하다. 설령 정신적인 힘으로 나간다 하더라도 졸다가 돌아올게 분명하다. 그래서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교인들의 이목을 중시하는 장로나 안수집사, 혹은 전업주부이거나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칼퇴근이 가능한 공무원이 아니라면 저녁 8시에 열리는 저녁기도회에도 참석하기 어렵다.

 

필자는 가정교회를 맡고 있어 새벽기도회의 설교를 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아침 7시에 일어나면 더운 물에 샤워를 하고 서재에 들어가 아침기도를 하고 있다. 필자가 멘토링하는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새벽기도를 하러 일어나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그래서 필자는 아침 6시에 일어나 집에서 1시간 정도 기도하고 출근하는 것과 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라고 권면하고 있다.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려면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가까운 교회에 가더라도 20분 이상 걸린다. 오가는 시간까지 합치면 40분이상 들여야 하는데, 그 시간에 집에서 기도하면 아침 일찍 출근하는 직장인이라도 얼마든지 기도할 수 있다.

교회에서 열리는 새벽기도회에 참석해야 기도하는 습관이 내게 맞지 않는 옷이라면 내게 맞는 기도습관을 다시 들이면 된다.

제발 교회에서 기도해야 기도가 된다는 핑계를 대지 말라. 그건 고정관념이고 잘못된 선입관일 뿐이다. 어떤 이는 자신은 올빼미형이라 아침 시간에는 졸려서 도저히 기도가 안 된다고 한다. 필자의 아내가 그랬다. 그래서 필자는 아내에게 저녁 10시에 함께 기도하자는 제안을 했다. 그 전에는 밤에도 필자 혼자 서재에서 기도하곤 했다. 아내는 제안에 흔쾌히 수락했고 지금은 습관적으로 밤 11시 30분까지 1시간 30분 기도하는 것을 습관으로 들였다.

아내는 저녁시간에 기도하다 뜨거워져서 이제는 아침에도 기도한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기도에 몰입되는 게 어렵지 않다. 그래서 이른 아침에도 영이 깨어있는 상태가 되어 기도가 쉬워진다. 시끄럽고 집중이 안 되어 집에서 기도하기 어렵다는 사람도 적지 않다. 물론 교회보다 집에서 기도하는 게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훈련이 되면 어디에서나 기도할 수 있다.

 

필자는 오후에 아내와 함께 시내나 근처 소도시로 화장품을 팔러간다. 아내를 내려주고 나면 필자는 적당한 장소를 찾아 기도하거나 성경을 읽는다. 가을이나 겨울에는 자동차 안에서 기도를 하고, 여름에는 더워서 공원이나 나무그늘을 찾아 깔판을 깔고 앉아 기도한다. 물론 주변은 항상 시끄럽다. 그래서 늘 수영용 귀속마개를 갖고 다니면 애용한다. 귀속마개를 착용하면 주변소음의 80%는 줄어든다. 습관이 되면 힐끗힐끗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에도 무감각해진다. 이제는 아무데서나 기도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기차여행을 하게 되면 아예 수면용 눈가리개를 착용하고 귀속마개를 끼면 고요한 숲속에 있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병원에서 차례를 기다릴 때도 예외 없이 기도를 시도한다. 귀속마개만 있으면 시내 아무데서나 기도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아무리 시끄럽더라도 시내한복판 보다 집안이 기도하기에 낫지 않겠는가? 집에서 기도하기 어렵다고 하는 사람은 기도에 습관이 들지 않았기에 하는 변명에 불과하다.

 

어떤 이는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방언으로 기도하는 사람도 있고 통성으로 기도하지 않으면 기도가 안 된다고 호소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 방언기도는 성령이 내주하는 상태가 되어 성령이 기도하시는 방식이다. 그렇지만 자리에 앉자마자 방언으로 시작하는 사람은 성령이 하는 기도가 아니라 인위적으로 하는 방언일 뿐이다. 방언으로 기도하든지 총성으로 기도하든지 필자처럼 침묵으로 기도하는 지 별 상관은 없다. 다만 방언기도는 자신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하는 것이라 무슨 내용의 기도인지 자신이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특정한 상황이 아니라면 무턱대고 방언기도를 시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물론 기도 중간 중간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방언이 나오는 것은 기도에 몰입되었다는 증거이다.

성령이 시키는 방언기도는 자신의 힘으로 중단하기가 어렵다. 통성기도이든지 방언기도이든지 자신이 편한 기도방식을 선택하는 게 기도에 몰입하는 습관을 들이는데 좋다. 그렇지만 집이나 교회가 아니라면 통성으로 기도하거나 방언으로 기도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서 필자가 추천하는 기도방식은 침묵기도이다.

침묵기도는 통성기도보다 기도에 몰입되는 게 어렵다. 처음에는 잡념도 많이 들고 졸기 일쑤이다. 그렇지만 습관이 되면 침묵기도는 언제 어디서나 기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도방식이다. 침묵기도가 습관이 되지 않은 사람은 처음에는 통성기도로 시작해서 기도가 몰입이 되면 침묵기도를 시도하면 좋다. 침묵기도라고해서 그냥 조용히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겉으로 기도소리를 내지 않을 뿐이지 통성으로 기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필자는 침묵 기도할 때도 간절히 기도하느라 온몸에 힘을 주고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는, “쉬~~”소리를 내면서 기도하곤 한다. 자칫하면 기도가 아니라 잡념이나 명상에 빠져들기 쉽기에 소리를 내지 않더라도 간절히 기도하는 것을 몸에 뱄기 때문이다. 오래 앉아 있는 게 어렵다는 사람도 있다. 필자는 중년의 나이에 농구를 오래해서 허리가 좋지 않다. 그래서 기도할 때는 항상 등받이가 있는 좌식용 의자를 이용하거나 딱딱한 베개로 허리를 받치고 푹신한 방석에 앉아 기도한다. 힘들면 자세를 바꾸어가면서 기도하면 오래 집중해서 기도할 수 있다. 아직도 기도할 때는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기도란 형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나님과 깊게 교제하는 것이다. 편한 자세로 몰입해서 기도하는 상태가 중요하지, 외적인 자세에 과도하게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기도훈련을 시작할 때 먼저 자신에게 좋은 시간이나 장소를 정해서 시작하는 게 습관을 들이기 쉽다. 아침 시간이 어렵다면 자기 전에, 밤 시간이 힘들면 아침에 일어나서 하면 된다. 점심시간을 이용하거나 낮에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면 된다. 그렇지만 일단 시작하면 시간을 정해놓는 게 좋다. 아침에 한다면 자명종을 맞춰놓고 정한 시간에 일어나서 하는 습관을 들여야 하며,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한다면 밤 10시나 11ㅅ를 정해서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시간 나는 대로 들쑥날쑥 한다면 오래 지속할 수 없다. 장소도 정해서 하는 게 좋다. 집이나 교회, 사무실 등 방해받지 않고 기도하기에 편한 장소면 아무데도 좋다. 참고로 필자는 주로 집이나 사무실, 자동차 안에서 기도한다. 그렇지만 기도습관을 들이는 일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필자도 처음 6개월 동안 무척이나 힘들어 했고 완벽하게 습관을 들이는데 거의 3년의 시간이 걸렸다. 기도는 게임이나 놀이처럼 처음부터 즐겁지 않다. 정신을 집중해서 몰입하는 영적인 일이며 습관을 들일 때까지는 성령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 깨달음도 경험할 수 없다. 오로지 자신의 의지로 버텨야 한다. 기도를 시작해보면 알게 되겠지만 처음에 기도습관을 들이는 게 그리 만만치 않다는 것을 곧 알게 된다. 그러므로 오랜 시간 기도하는 것보다는 꾸준히 기도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기도하는 시간을 차차 늘려나가면 된다. 어차피 성령이 내주하시는 상태가 되면 기도의 기쁨을 알게 되므로 기도를 즐기게 된다.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기도시간이나 기도하는 횟수도 늘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