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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를 방해하는 것을 제거하라.

Joyfule 2014. 8. 6. 10:19

 

 

  기도를 방해하는 것을 제거하라.| - 신상래 목사

 

 

돈을 벌고 소비하는 시간을 줄이라.

기도습관을 들이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일까? 아침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들이는 것도, 아무런 생각 없이 TV드라마를 보는 버릇을 고치는 게 아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돈 중심의 삶에서 하나님의 중심으로 삶으로 회복하는 데 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삶의 목표는 돈이다. 그래서 이 시대는 한마디로 황금만능의 물질주의시대라고 부른다. 부자가 되는 것이 인생의 목표이고, 단 하루만이라도 물 쓰듯 돈을 써보는 게 꿈이라는 이들도 있다. 그래서 자녀가 유치원에 들어가기가 무섭게 지식을 쌓는데 돈과 시간을 엄청나게 들이며, 이는 대학 졸업할 때까지 이어진다.

 

의사나 변호사 같은 고소득을 얻는 직업을 얻는다면 그동안의 투자가 충분한 보상을 받을 거라는 부모의 기대가 숨겨져 있다. 돈을 버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이는 이들은 돈이 부족한 이들만이 아니다. 부자가 되면 될수록 더 큰 부자를 원한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미 부자인 의사들조차 야간진료를 자원하고 휴일도 문을 열며 24시간 운영하는 병원도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미 많은 부를 모아두었지만 더 쌓아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쌓아둔 돈이 없어도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면 먹고 사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섰음을 보여주는 OECD 회원국이며 매년 무려 340조원이 넘는 예산을 관리하는 나라이다. 노숙자도 술병 때문에 사망하지, 먹을 게 없어 굶어죽지는 않는다. 일할 의욕만 있다면 얼마든지 먹고살 수 있는 일자리는 널려 있다. 다만 많은 돈을 편하게 벌려고 하기 때문에 일자리가 없다고 아우성을 치는 것이다. 그래서 동남아시아에서 학사학위를 받은 근로자조차 우리나라에 들어와 노동일이라도 하려고 줄을 서는 실정이다. 3D직종은 우리나라사람들이 기피하기 때문에 외국인 근로자들의 차지가 된지 오래이다.

 

필자의 제자 중의 한명은 억대연봉의 외국계 보험회사에서 설계사로 일하고 있다.  그 회사는 아침 일찍 출근하여 자정이 가까워야 퇴근하는 워커홀릭으로 유명하다. 그 제자는 대학 다닐 때부터 신앙심이 돈독하였지만 그 회사에 입사하면서 기도하고 말씀을 읽을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 그러자 그냥 주일예배만 참석하는 수준으로 신앙이 전락했다. 그래서 필자는 그 제자에게 충분히 기도할 수 있는 회사로 옮길 것을 제안하였다. 그렇지만 회사를 포기하면 수억원의 수입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했다. 보험설계사가 보험에 가입시키면 수당을 2,3년에 걸쳐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도 이직을 강력하게 요청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최근 그 제자는 용기 있게 그 회사를 포기하고 충분히 경건생활을 보장하는 다른 회사로 옮겼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나님을 위해 돈을 과감히 포기하는 크리스천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월급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면 과도한 근무시간에도 불구하고 회사를 옮길 것이다. 그래도 직장인이라면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있다.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은 점포에서 하루해를 보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전에 점포 문을 열면 자정이 가까워져야 닫는 곳이 대부분이다. 일 년에 두 번 명절날을 제외하고는 휴일도 없으며 주일에도 가게 문을 열고 부부가 번갈아가며 예배를 드리러 간다. 종업원은 휴가를 보내도 주인은 쉬는 법이 없다. 가게 문을 닫으면 그만큼 수입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런 이들에게 기도할 시간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많은 크리스천이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한다.

 

그렇지만 기도할 시간을 내기위해 점포 문을 일찍 닫거나 느슨하게 일할 수 있는 직업으로 바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돈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잘라 말하셨다. 직장 때문에, 점포 때문에 기도할 시간을 낼 수 없다는 것은 하나님보다 돈을 더 섬기기 때문이다. 필자도 사역수입이 없기에 생업으로 아내와 화장품 방문판매를 하며 살고 있지만, 점심을 먹고 나가 오후 6시가 넘으면 일을 마친다. 최소한의 시간동안 판매활동을 하기 때문에 수입이 적어 가난하게 살지만, 기도할 시간을 줄이면서 영업시간을 늘일 생각이 없다.

가난하지만 하나님이 생존에 필요한 생계비를 주시리라는 믿음으로 먹고사는 걱정이 없다. 바빠서 기도할 시간을 낼 수 없다는 것은 믿음이 없다는 반증인 셈이다.

 

돈을 버느라 기도를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돈을 쓰느라 기도할 시간을 내지 못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새벽처럼 출근해야하는 직장인이라면 아침기도를 하지 못하는 이유를 인정할 수 있다. 그렇지만 퇴근 후에 집에서의 기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사실 자정이 가까워도 점포 문을 열고 있어야 하는 자영업자와는 달리 직장인은 상대적으로 퇴근시간이 빠르며, 주5일 근무가 일반화된 작금에 주말이나 주일에도 기도할 시간이 적지 않다. 그렇지만 시간이 남아돈다고 기도하는 것은 아니다. 직장인들이 퇴근하면 집으로 돌아가기보다 친구들을 만나 음식점이나 노래방 등의 유흥업소를 전전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백화점이나 할인매장을 배회하는 여성들도 많다. 월급을 두둑하게 받는 이들일수록 돈을 쓰는 시간이 그만큼 필요한 셈이다. 친구들을 만나 밥이나 술을 마신다면 귀가시간은 자정이 되어서일 것이다. 귀가하자마자 침대에 쓰러져 자명종이 시끄럽게 깨우는 새벽이 오는 게 고통스러울 것이다. 백화점이나 할인매장을 순회하는 것도 두세 시간이 걸리는 게 보통이다. 그 시간동안 쉴 새 없이 걸어 다니면 눈도 피곤하고 다리도 무거워지게 마련이다.

주말이나 주일이 반가운 이들은 자동차에다 먹고 마실 것을 잔뜩 싣고 휴양지로 떠나지 않으면 좀이 쑤신다. 돈이 없으면 집에서 뒹굴뒹굴하며 TV 리모컨만 못살게 굴겠지만 지갑에 지폐가 두둑하며 신용카드가 빼곡한 터라 몸이 근질근질하다.

이처럼 돈을 벌고 소비하는 시간을 줄이지 않는다면 기도할 시간은 없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노동시간이 많은 나라로 유명하다. 휴일에도 집보다 회사에서 보내는 게 더 편안하게 느낄 정도이다. 그래서 평생 일만하다가 이 땅을 떠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시골에 가면 80세가 넘은 노인들이 뙤약볕에서 일을 하고 있다. 각종 지병으로 일을 하면 안 되는 처지인데도 평생 일을 해온 습관 때문에 노는 땅을 그냥 놔두지 못한다. 그렇게 죽는 날까지 일을 하다 영혼을 준비하지 못한 채 이 땅을 떠나는 것이다. 사실 자신이 번 돈을 자신이 다 쓰고 죽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처럼 돈을 벌고 소비하는 일에 정신이 팔려 일생을 허비하는 이들이 대다수이다. 여기에 크리스천들도 예외가 아니다. 기도는 시간이 남아서 하는 게 아니라 시간을 쪼개내어야 한다. 돈 버는 시간도 아끼고 수입이 줄어드는 것을 감수해가며 기도시간을 내야한다. 그렇지 않다면 기도시간을 낼 수가 없다. 돈을 소비하는 시간도 마찬가지이다. 돈을 소비하는 시간을 즐겁지만 하늘의 보화를 쌓아두지 않는다면 영혼이 즐거운 시간은 이 땅에서만 유효할 뿐이다.

 

기도를 방해하는 것을 제거하라.

기도할 시간이 없다는 사람도 하루에 두세 시간 TV 드라마나 뉴스는 꼭 챙겨본다. 매일 몇 시간씩 인터넷으로 게임을 하거나 서핑을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요즈음은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니면서 대화를 하거나 게임을 하고 음악을 듣는 게 대세이다. 그들도 마찬가지로 기도할 시간이 없어 못하고 있다는 말이 되돌아오고 있다. 기도습관을 들여야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전에 성경의 위인들이 살던 시대는 농사를 짓거나 목축업을 하던 시대라, 일이 끝나면 딱히 할 일이 없어 해만 지면 잠자리에 들기 일쑤였다. 그렇지만 요즈음은 밤이 되면 즐길 일이 더 많아진 시대에 살고 있다. 자정까지 점포 문을 열어놓는 것은 물론이며 24시간 영업하는 음식점, 영화관, 유흥업소가 즐비하다. 쾌락을 즐기는 문화가 늘어날수록 기도를 못하게 하는 방해꾼들이 많아진 셈이다. 기도를 방해하는 것들을 제거하지 않고 기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성인들에게 TV는 기도를 방해하는 최고의 방해꾼이다. 새벽에 일찍 출근하기 때문에 기도할 수 없다고 당당하게 핑계를 대는 이들조차 밤에 기도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궁색하다. 저녁을 먹고 쉬다가 잠자리에 들기 전에 1시간 이상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저녁 9시가 넘어서는 황금시간대에는 볼거리가 풍성하다.

뉴스나 드라마는 한번 보기 시작하면 눈을 뗄 수 없다. 특히 드라마는 볼수록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신이 통제할 수 없다면 TV를 없애야 한다. 사실 TV는 자녀들의 공부에 치명적인 해악을 주는 물건이지 않은가? 컴퓨터도 기도를 방해하는 데 일등공신이다. 인터넷에 들어가면 새로운 세상이 열려있다. 재미있는 정보나 게임이 널려있고 친구들이 부르는 데 이겨낼 재간이 없다. 사실 현대인으로서 TV나 컴퓨터 없이 산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기도습관을 들이기만하면 세상의 즐거움도 크게 힘을 쓰지 못한다. 그렇지만 기도습관을 들일 때까지는 눈물을 머금고 이를 악물고 버텨야한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천국을 간절히 소망하는 자만이 들어갈 수 있다. 그렇지만 TV나 컴퓨터를 하나님보다 더 가까이 두고 있다면 천국은 언감생심이다. 그래서 천국에 들어가는 자들은 아주 소수일 뿐이라고 성경에 말한 이유이다.

 

기도를 방해하는 것은 이것뿐만 아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기도할 수 없다. 술을 마시면 기도에 집중할 수 없다. 술에 취해서가 아니라 한잔을 마시더라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술은 혼자마시는 게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 담소를 하면서 마시게 된다. 저녁부터 시작된 술자리는 노래방을 순회한 자정이 넘어서야 파하게 되는 데 언제 기도할 시간이 있겠는가?  또 어떤 이는 휴대폰을 친구 삼아 살아간다. 시간만 나면 문자를 주고받거나 통화하는 게 일상생활이다.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트위터 등을 이용하여 무궁무진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이들의 대화에 참여하거나 지켜보면서 하루해가 뜨고 진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마트폰을 하루 종일 손에서 놓지 못하는 이들은 기도할 수 없다. 스마트폰과 하나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취미생활 때문에 기도를 못하는 이들도 많다.

 

 애완동물도 기도를 방해하는 훼방꾼이다. 잠시라고 가만히 있지 못하게 한다. 또한 틈만 나면 TV의 바둑 채널을 보거나 바둑책을 끼고 살며, 보이지 않는다 싶으면 어느새 기원에서 삼매경에 빠져있다. 이른바 바둑마니아이다. 마니아는 바둑에만 있는 게 아니다. 낚시, 등산, 테니스, 골프 등 취미나 스포츠에 빠져 다른 일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있다면 기도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기도를 방해하는 치명적인 저격수는 수면부족이다. 아시다시피, 작금의 현대인들은 올빼미족들이다. 자정이 넘긴 시간에 시내에 나가보라. 불야성을 방불케 할 것이다. 각종 향락문화나 인터넷게임, 혹은 영화 등에 빠져 자정이 넘어 잠자리에 든다면 새벽기도시간에 말짱한 정신으로 기도하는 것은 차치하고 일어나기조차 힘들 것이다. 다음 날의 기도를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어 충분한 수면을 취하는 것은 필수적인 행위이다. 그렇지만 욕망과 쾌락을 자극하는 이 시대의 유혹에 넘어가 기도를 잃어버린 크리스천이 너무 많다.

 

물론 자신이 그동안 좋아했던 것들을 끊는 게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이는 방탕한 삶에서 경건한 삶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기도습관을 아예 들일 시도조차 못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고 무슨 재미로 사냐는 것이다. 그런 심정을 토로했다면 바빠서 기도할 수 없다는 말이 거짓이라고 실토한 셈이다. 시간이 없어서 기도할 수 없는 게 아니라 기도가 삶의 우선순위에 밀려 있기 때문이다. TV나 컴퓨터, 낚시나 등산, 술이나 휴대폰이 먼저이고 하나님이 다음이다. 어째든 기도를 방해하는 것들을 제거하지 않고는 기도습관을 들일 수 없다. 하나님은 자기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다 우상이라고 말씀하셨다. 자신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라고까지 말씀하셨을 정도이다. 기도를 방해하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 때문에 기도하지 못한다면 우상을 섬기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기 때문이다.

기도습관을 들여야 하는 이유는 세상에는 기도를 못하게 하는 것들로 넘쳐나기 때문이다. 기도습관이란 비행기의 자동항법장치처럼 자동적으로 기도를 해주게 해주는 장치이다. 기도시간만 되면 자신도 모르게 눈이 떠져 기도장소로 가는 자신을 발견되게 되며 일상생활 중에도 무시로 기도를 하게 된다. 이처럼 기도습관을 들이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원하는 기도를 하는 것을 불가능하다. 기도란 영적인 세계로 들어가는 수단이지만 영적인 세상은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억지로라도 기도를 해야 영적인 통로가 열리고, 지속적인 기도로서 영적인 세상을 깨달으며 영적 능력을 얻고 풍성한 신앙의 열매를 맺게 된다. 기도습관을 들이는 것은 크리스천에게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사항이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기도습관을 교회에 오가는 신앙행위로 바꾼 이들이 적지 않다.

 

물론 교회에 가면 기도도하고 예배도 드리겠지만, 형식적인 신앙행위로는 성경에서 요구하는 믿음의 경지에 오를 수 없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영적 능력의 경지에 도달하려면 쉬지 않고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말하자면 처음부터 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훈련을 하는 선수처럼 철저한 기도훈련을 해야 한다. 그렇지만 동네 체육관에서 취미로 운동하는 사람처럼 손쉽게 기도를 하는 이들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 많다. 적당히 기도하더라도 아무런 은혜가 없다면 이 역시 힘든 일이다. 그렇지만 어려운 기도습관을 들여서라도 엄청난 보화를 발견할 수 있다면 그 길을 가야한다. 신앙의 목적은 정신과 도덕을 고취하려는 취미생활이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분과 평생 동행하며 천국에서 영원히 함께 살 자격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