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시야 Uzziah
히) '웃지야' עזיה , '웃지야후' עזיהו -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다"
헬) '오지아스' ωξιας
1. 유다 왕 아마샤와 왕비 여골리야 사이에서 태어난 제 9대 유다왕이다. 그의 본명은 아사랴1인데, 왕하 14:21; 15:1, 6-8, 17, 23, 27에서는 아사랴란 이름이 사용되었다. 웃시야란 이름은 왕하 15:13, 30, 32, 34 그리고 대하 26: 1-27:2에서 사용되었다. 이 두 이름의 히브리어 표기는 자음 한 자만이 다를 뿐이다. 아사랴란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도우신다"이다. 이 두 이름의 어원이 유사하기 때문에 서로 교호적(交互的)으로 사용되었던 것 같다.
비록 그 정확한 연대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으나, 열왕기와 역대기의 기록에 의하면 웃시야는 52년 동안 유다를 통치하였다고 나타나 있다(B.C.약 783-742년; 왕하 15:2; 대하 26:3). 그러나 52년이란 기간은 아마도 선왕인 아마샤(아마 약 15년 정도) 그리고 아들인 요담(약 10년 정도)과 함께 통치했던 기간이 중복된 것 같다, 웃시야는 아버지인 아사랴를 거역하고 살해해 버린 유다 백성들에 의하여 열여섯 살 때 왕으로 추대되었다(왕하 14:21; 15:2; 대하 26:1). 예수님의 족보에서는 웃시야가 요람의 아들로 나타나 있다(마1:8-9).
열왕기서의 저자는 겨우 웃시야의 통치에 대한 개요와 업적만을 기록하였다. 곧 웃시야가 하나님을 경외했으나 산당만은 제거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그 일로 인하여 문둥병의 징벌을 받았다는 사실만을 간략하게 진술하였다(왕하 15:1-7). 그러나 역대기의 저자는 이와 달리 매우 자세하게 웃시야의 행적을 기록해 놓았다(대하 26장). 곧 웃시야는 통치 초기에 하나님께 의지하여 선정을 베풀고 유다를 번영케 했다. 그러나 그의 권세가 높아지자 교만에 빠진 웃시야는 제사장들만이 할 수 있는 성소의 분향을 직접 행하려다가 문둥병에 걸리고 말았다(B.C. 750년경). 결국 이 일로 인하여 그는 공적인 왕직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요세푸스의 Ant. 와 후기 랍비들의 전승에 의하면, 웃시야가 죄를 짓던 그 순간에 지진이 일어나 유다 땅을 황폐케 만들었다고 한다. 참조. 암 1:1; 슥 14:5). 그 후 웃시야는 홀로 떨어진 '별궁'(대하 26:21)에 거하였다. 그러나 그의 영향력과 권세는 그가 살아 있을 때까지 계속되었을 것이라고 많은 학자들은 추측하고 있다, 웃시야는 열왕의 묘실 바깥에 장사되었다(26:23; 참조. 왕하 15:7). B.S. 1세기경의 비문에도 웃시야의 장례에 관한 기록이 나타나 있다.
비록 성전에 분향하려는 큰 실수를 범했으나, 웃시야는 오랫 동안 유다를 잘 다스렸다, 그가 통치하던 기간 동안 이룩했던 유다의 번영은 솔로몬 통치 이후 가장 큰 번영이었다.
2. (히. '웃지야') 우리엘의 아들이며 사울의 아버지인, 레위 지파 그핫 자손이다( 대상 6:24).
3. (히. '웃지야후') 요나단의 아버지. 요나단은 다윗 왕의 재산을 맡아 관리하던 감독이었다(대상 27:25).
4. (히. '웃지야') 이방인 아내를 위했던 에스라 시대의 제사장이다(스 10:21).
5. 아다야의 아버지. 아다야는 바벨론에서 귀환한 후 예루살렘성 내에서 살았던 인물이었다(트 11:4).
아가페성경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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