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들은 왜?
7-26. 왜 축복기도를 하고 있는 코하님의 손을 보는 것이 금지되어 있을까?
탈무드(Chagiga 16b)에 보면, “제사장이 회중을 축복하고 있을 때 제사장의 손을 보는 사람은 그 눈이 약해질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그러한 이유 때문에 축복하는 손을 보지 않는다.
또 다른 이유는 코하님이 축복문을 낭송할 때에 누군가가 자신의 손을 자세히 쳐다 보고 있음을 느끼면 방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7-27. 왜 토라를 읽은 후 이를 높이 들까?
토라를 낭독하는 동안에는 회당에 모인 사람들에게 토라가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으므로
아시케나지 유대인들은 토라를 낭독한 후에 토라 두루마리 조금 풀어 회중 앞에서 높이 든다.
이 때 회당에 모인 회중은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선포한 토라는 다음과 같다”라고 말한다.
이와 달리 세파르디 유대인들은 토라를 낭독하기 전에 토라를 높이 들어 보여준다.
토라 낭독자는 그날 읽을 토라 부분을 가리키고 회중은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선포한 토라는 다음과 같다”라고 말한다.
7-28. 왜 기도하면서 가슴을 칠까?
평소에도 기도하면서 가슴을 치는 사람이 있지만, 특히 대제일에는 기도 중에 ‘우리가 죄를 지었으니’
또는 ‘우리가 범죄하였으니’라는 말을 할 때마다 오른손으로 심장이 있는 왼쪽 가슴을 친다.
이렇게 가슴을 치면서 기도하는 것은 기도의 내용을 다시 한 번 더 생각하고 진심으로 참회하기 위한 것이며,
어떤 고통을 느끼기 위한 행동은 아니다.
7-29. 왜 십계명은 기도서에 포함되지 않을까?
2차 성전시대에는 제사장들이 아침 희생제물을 드린 후(안식일 포함)에 성전 안의 ‘Hewn Stones 뜰’로 가서 십계명이 포함된 기도를 했다.
성전 기능이 회당으로 들어오면서 이러한 십계명 낭송은 생략되었다.
십계명 낭송이 생략된 것은 아이러니컬한 면이 있다.
즉 일부 종파 특히 사마리아인들은 ‘십계명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직접 받은 것이므로 매우 중요하지만, 토라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유대인들은 이들의 잘못된 신념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오히려 탈무드시대부터 십계명을 기도서에서 삭제하게 되었다.
7-30. 왜 ‘파미슈트 디 요쯔레스’라는 이디시어를 쓸까?
‘파미슈트 디 요쯔레스(farmisht di Yoitzres)’는 ‘기도순서가 헛갈렸다’는 뜻이다.
마지막 단어 요쯔레스는 히브리어로 요쯔롯(Yotzrot)이다.
‘샤카릿(아침)’ 예배에는 두 개의 기도순서가 있는데, 이 기도들은 하나님을 창조주로 부르므로 ‘요쯔롯(Yotzrot, 창조)’이라 한다.
첫 번째 기도에서는 하나님을 ‘빛과 어둠을 만드신 조물주’로 부르고, 두 번째 기도에서는 하나님을 ‘천체를 지으신 조물주’로 부른다.
그런데,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들은 이 두 가지 축복기도를 서로 혼동하는 수가 많았다.
따라서 사람들은 이 두 기도를 ‘파미슈트 디 요쯔레스’로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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