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들은 왜?
7-21. 왜 예배자들은 아미다를 시작할 때와 마칠 때 앞뒤로 세 걸음씩 움직일까?
아미다(묵도)를 낭송하기 시작할 때 예배자들은 앞으로 세 걸음 갔다가 마칠 때 다시 뒤로 세 걸음씩 돌아 오는 풍습이 있다.
이 행동은 하나님을 만왕의 왕으로 비유하는 데서 생겨났다.
즉 왕에게 숙연하게 나아갔다가 뒤로 물러날 때에도 절대 등을 보이지 않고 경건하게 물러나는 것이다.
이 중요한 기도를 시작할 때 앞으로 나아가는 행동은 아브라함에게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의 생명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가까이 나아가’ 기도하엿다(창 18:23).
7-22. 왜 케두샤(Kedusha) 부분에는 발을 모으고 꼿꼿이 설까?
탈무드에 보면, 묵도의 케두샤 낭독 시간에 예배자들이 서서 발을 모으고 꼿꼿이 서는 풍습이
에스겔 선지자의 환상에서 비롯되었다고 나와 있다(Berachot 10b).
이 환상은 에스겔이 본 네 마리의 짐승을 설명하는 부분이며, “각각 네 얼굴과 네 날개가 있고,
그 다리는 곧고”라고 기록되어 있다(겔 1:6~7).
“거룩 거룩 거룩”이라는 말을 할 때에도 예배자들이 발끝으로 서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이는 ‘위를 향해 뻗어가고자 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7-23. 왜 케두샤 기도를 할 때 유대인들은 뒤꿈치를 세 번 들까?
이 풍습은 이사야 6장 3절에 나오는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라는 성경 구절과 관련이 있다.
여기에서 ‘카도쉬’ 즉 ‘거룩하다’라는 말이 세 번 반복되는데, 이런 경우는 신성한 이름이 세 번이나 반복되므로
사람들은 온 몸을 하나님께로 뻗는 것이 옳다고 카발라 학자들이 제안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7-24. 왜 종교 의식에서 코하님이 회중을 축복할까?
민수기 6장 22~27절에 보면, 코하님(Kohanim, 제사장들)은 이스라엘 자손을 축복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제사장의 축복기도는 히브리어로 ‘비르캇 코하님(Birkat Kohanim)’이며,
이 축복기도를 하는 의식은 ‘두크닝(duchening)’으로서 ‘강단’을 의미하는 ‘두칸(duchan)’에서 비롯되었다.
성전의 제사장들은 매일 강단에 올라 모여 있는 회중을 향해 축복기도를 하였다.
지금도 예루살렘에 있는 여러 회당에서는 매일 아침 이러한 풍습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이외에 사는 유대인들은 신년, 대속죄일, 유월절, 초막절, 오순절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영적으로도 민감한 명절에만 이 풍습을 지키고 있다.
참고로 결혼식이나 바 미츠바, 바트 미츠바와 같이 기쁜 일이 있을 때에도 랍비들이 축복 기도를 한다.
7-25. 왜 제사장의 축복기도를 할 때 손과 손가락을 벌릴까?
코하님은 축복기도를 할 때 양팔과 손을 앞으로 뻗은 후 손가락을 정면으로 펼친다.
이 때 양손의 새끼손가락과 넷째 손가락을 다른 손가락에 닿지 않게 벌려 V모양을 만든다.
이 관습은 탈무드가 아닌 ‘미드라쉬 랍바(Midrash Rabba)’에 설명되어 있다.
즉, “나의 사랑하는 자(이스라엘)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서 우리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 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구나(아 2:9)”에서 ‘창’은 제사장의 어깨와 팔, ‘창살’은 제사장의 손가락을 상징한다고 본 것이다.
후기에는 손가락을 벌린 손 자체가 성직자를 상징하는 표시가 되기도 하였다.
제사장 묘비에도 이 표시가 새겨진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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