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이 예수를 믿지 않는 이유
둘째 이유 ? 교회의 반 유대주의:
유대인이 예수를 메시야로 믿지 못하는 두 번째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교회’ 때문이다. 교회가 유대인을 예수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유대인을 자신들의 반유대주의를 통해 핍박하고 박해하고 추방하고 학살하였다. 종교혁명 이후 개신교회는 유대인에 대해 적대적임과 동시에 또 철저히 무시하고 비난하고 낮추어 보고 드디어는 2차 대전 중 홀로코스트를 통해 집단 학살하였다. 오늘날 우리 교회는 유대인에 대해 철저히 무관심하고 무지하다. 유대인이 예수를 믿지 않는 첫째 이유는 유대인의 메시야관 때문 이지만 이런 교회의 반유대주의가 유대인을 예수로부터 멀어지게 한 더 큰 이유이다.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내용 중 2차 대전 중의 유대인 학살 즉, 나치 독일에 의해 유대인 600만이 학살된 홀로코스트가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 대부분의 성도들을 포함하여 - 이 유대인 학살이 아돌프 히틀러라는 정신병자, 독재자에 의해 일방적으로 뜬금없이 행해진 것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결론은 이것이다. 홀로코스트는 결코 어느날 갑자기 역사 속에 나타 난 것이 아니다. 홀로코스트는 역사를 통하여 세기와 세기를 거듭하며 무려 2,000년 간, 장장 20개 세기를 통하여 쌓여져 온 유럽 사회와 교회의 반 유대주의, 반 셈주의 (Anti-seminism) 가 그 시점에 누적되어 분출한 것 뿐이다.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 마이클 L. 브라운이 쓴 “우리의 손은 피로 물들었다” ( Our hands are stained with blood) 에서 몇 대목을 인용한다.
콘스탄티누스 대제 시절 AD 325년의 니케아 공회의에서는 “이제 우리는 혐오스러운 유대인 무리들과 공통점을 갖지 않을 것이다” 라고 선언하며 안식일을 일요일로 바꾸었다.
AD 347 ? 407년 시대에 활동한 위대한 설교자 John Chrysostom 은 설교 도중 왕왕 이렇게 언급하였다.
“ 일을 시키기에도 부적합한 이 짐승, 도살에나 적합한 이런 짐승, 유대인이 고통당해야 하는 것은 유대인 그들의 운명이다. 우리는 이들과 눈조차 맞추지 않아야 하고 더더욱 인사를 나누고 지내는 사이가 되어서는 안된다. 이들은 온 세계의 암병이고 부패 그 자체이다. 이들 유대인의 영혼에는 악마가 깃들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유대인과 그 회당 모두를 증오해야 한다. ” 이는 교회의 초기 시절 위대한 설교자로 숭앙 받았던 사람의 설교 내용이다.
AD 613 년 경 스페인의 유대인 추방 상황을 보자. 당시 스페인에 살고 있던 모든 유대인들은 침례 받기를 거부하면 즉시 그 나라를 떠나야 했으며, 이런 추방령이 내려 진 몇 년 후까지 떠나지 않고 남아 있던 유대인들은 기독교도들의 지시에 불응했다고 모든 재산을 몰수 당한 뒤, 노예로 공표되었다. 7살 이상의 유대인 자녀는 부모로부터 떼어 내 강제로 기독교 가정에서 교육받게 하였다.
1096년, 1차 십자군 전쟁 때, 십자군은 에루살렘 주위의 도시들을 먼저 거룩하게 한다는 명분 으로 20,000 여명의 유대인을 예루살렘 근처 지역에서 이슬람 교도들과의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 미리 학살하였다.
1146년에서 1147년 사이 제2차 십자군 전쟁 예루살렘 공방전에서 십자군은 이슬람과 싸우는 도중 유대인 회당에 피신해 모여 있던 유대인들을 불을 질러 모두 타 죽게 하고 유대인들이 회당내에서 화염에 싸여 죽어 가고 있을 때, 회당을 빙 둘러 서서 “그리스도를 경배합니다” 라는 찬송을 불렀다. 망토와 앞가슴을 가리는 흉패에 커다란 십자가를 그려 넣은 복장을 입은 채로, 역시 십자가를 그려 넣은 방패를 손에 쥐고 말이다. 왜, 이런 만행을 저질렀냐고 ? 물으신다면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유대인이기 때문에!!
1478년 경 스페인의 종교 재판과 그 당시 스페인의 유대인 탄압 상황은 훨씬 더 비인간적이다. 먼저 모든 유대인은 재산을 그냥 놔 두고 이 나라 스페인을 당장 떠나야 했다. 유대인이 만약 가톨릭으로 개종을 하면 추방은 면해졌다. 그러나 대부분 유대인들은 추방을 면하기 위해 표면적으로만 개종하는 척 했을 뿐 집에서 몰래 유월절을 지키고 무교병을 먹고 또 다른 유대 풍습을 지속하였다. 이런 유대 절기를 몰래 지키거나 유대 풍습을 지속한 것이 발각되면 붙잡아다 고문하고 사실을 자백하게 했다. 유대인이 고문을 못이겨 이번에는 진실로 개종하고 교회에 나가겠다고 다짐하면 이런 절차를 밟아야 했다.
‘남자나 여자나 개종을 다짐한 유대인은 맨발에 허리까지 벌거 벗은 상태로 모자도 없이 성당까지 걷게하고 행진을 시켰다. 영적 어둠에 있다는 증거로 손에는 불 안 붙인 양초를 들게하고 성당에 도착하면 신부가 “부정한 너희들에게 이제 십자가의 싸인을 준다” 라며 이마에 십자가 싸인을 그려 넣었고 매질한 후, 집에 벌거 벗겨 돌려 보냈다. 이런 일을 매주 금요일 똑 같이 6주일을 계속해야 했다.’
이런 교회들의 반유대주의와 시민들의 반 유대 정서가 세월을 거쳐 누적되어 쌓이면서 결국은 저 야만적인 홀로코스트로 이어 진 것이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이렇게 질문 할 것이다. 아니, 나치당은 진정한 크리스천이 아니지 않았냐고. 물론, 우리는 안다. 독자 여러분도 알고 나도 알고 있다. 나치 장교와 관료들이 진정한 크리스천, 거듭난 성도가 아니었으며 오늘 우리 성도와는 아주 다른 부류였다고 우리는 주장할 수 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나치 장교도 나치 정부 요인도 다 기독교인 즉, 루터파 개신교인이거나 가톨릭교인이었던 것이다. 기독교란 말은 그리스도를 중국어로 ‘기독’ (基督)으로 표기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곧 그리스도교를 의미한다. 그리스도교는 영어로 Christianity 이며 교인은 크리스천이다. 오늘날 가톨릭을 개신교와 구분하기 위하여 가톨릭은 로마가톨릭으로, 그리고 우리 개신교는프로테스탄트Protestant 라 부르고 있지만 유대인들이 보기에 기독교 즉, Christianity 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종교이다. 즉, 유대인들이 보기에는 나치도 교회 다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루터교든, 가톨릭이든 예수를 구주로, 그리스도로 믿음을 고백한 사람, 강제 노동 수용소라는 자신의 ‘직장’에 출근하기 전에, 즉, 유대인을 가스실로 처넣는 ‘업무’를 수행하기 전에, 집에서 가족과 함께 아침을 먹으며 식사 기도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드리고 나오는 그리스도인인 것이다.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나치 전범들은 유대인 학살의 핑계를 대며 파렴치하게도 마르틴 루터를 인용해 자신을 방어하기도 하였다. 그들의 증언을 통해 보면 우리가 개신교의 위대한 개혁가로 기억하고 있는 마르틴 루터 조차 연설과 강연과 저술을 통해 유대인을 폄하하고 모독하고 핍박한 것은 다른 가톨릭 사제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음을 우리는 알게 된다. 마르틴 루터는 이렇게 말하였다.
“ 첫째, 이들은 성경의 겉표지 조차 읽을 자격이 없다. 그 첫 페이지를 읽을 자격은 더더욱 없다. 이들의 회당은 불 태워 없애 버려야 하며 이들의 집도 부수고 무너뜨려 버려야 한다. 탈무드와 기도책을 빼앗아 버려야 하고 랍비들을 위협하여 그 가르치는 행위를 즉각 중단시켜야 한다. 고리대금업을 당장 중단시키고 여행의 자유를 박탈하여야 하며 이 천한 게으럼뱅이들을 일터로 몰아 내어 그 이마에 땀 흘려 자신들의 빵을 직접 벌게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누구든지 유대인을 보거든 얼른 성호를 긋고 ‘저기 악의 화신이 온다’ 라고 말해야 한다”
우리는 나치를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말 할 수 있지만, 유대인은 나치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기독교인으로 알고들 있으며 또한, 반 유대주의가 ‘교회’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고 있다. 또 우리 개신교인들이 마르틴 루터를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것을 유대인도 알고 있다.
한편, 역사를 통하여 교회가 유대인을 핍박한 유형은 다음 세 가지이다. 첫째, 개종 (Conversion), 둘째, 추방(Expulsion), 셋째, 박멸 (Annihilation) 이 그것이다. 먼저 유대인에게 개종을 강요한다. 가톨릭으로 개종하겠다 그러면 살려는 둔다. 다만, 위와 같은 굴욕적인 절차를 통해서만 개종이 이루어진다. 개종을 거부하면 추방이다. 너희는 ‘우리 교인들과 더불어 같이 살 자격이 없다’ 라는 것이다. 추방이 별 의미가 없다면 최종 방법 즉, 파이널 솔루션 - 전멸, 학살,박멸이다. ‘너희는 살아서는 안된다’ 이다. 개개인 유대인을 학살한 것이 아니다. 마을 전부, 공동체 전부, 그 나라에 사는 유대인 전부를 문자 그대로 전멸시킨 것이다, 이것이 반 유대주의의 마지막 해법, final solution 이다. (다니엘 보트킨; Why Jews don’t believe Jesus? 유투브 동영상 참조; 자막 번역은 다음 카페 ‘옛적 그 선한 길’ 제공)
위와 같은 것들이 지난 2,000년간 교회가 유대인에게 자행 해 온 반유대주의이다. 1940년대의 홀로코스트는 절대로 어느 날 갑자기, 나치에 의해 역사 속에 등장한 것이 아니다. 셰익스피어가 ‘베니스의 상인’에서 악질 고리대금업자 유대인 샤일록을 등장시키기 훨씬 이전인 중세 시대부터 유럽 사회와 유럽 교회는 유대인들을 게토에 몰아 넣어 따로 살게 했고, 다윗의 황색 별을 가슴에 달고 다니게 만들었고, 대놓고 손가락질 하고 린치를 가하고, 정당한 직업을 갖지 못하게 했다. 셰익스피어가 유달리 반 유대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연연히 이어 내려져 온 당시의 전반적 사회 풍조가 그러했던 것이다.
나는 여기에서 이 모든 반 유대주의의 근저에 있는 유럽 사회와 유럽 교회의 유대인에 대한 반감의 근본적 원인을 고찰할 시간과 지면이 부족하다. 요점은 이것이다. 2,000년간 교회는 유대인을 증오하여 왔고, 유대인은 교회를 배척하여 왔다. 유대인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교회가 저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다.
만약 앞선 페이지에서 인용한 ‘시온의 의정서’ 가 진실로 존재하는 문건, 즉 유대인 장로들에 의해 실제 만들어 진 사실적 문건이라면 유대인과 유대인의 장로들은 2,000년 간 일방적으로 당해 온 교회로부터의 핍박을 이제 금권으로 복수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또 이런 정도까지 교회가 유대인을 핍박해 온 것이 사실이라면, 유대인의 마음속에 저런 불타는 복수심이 깃들여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전혀 없겠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한편,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사탄이 교회와 유대인을 멀어지게 만들어 왔다고. 그리하여 두 증인의 출현을 막아 왔다고. 유대인을 미혹하고 교회를 타락시키고 둘 사이를 이간질 시키고, 그래서 유대 교회와 이방인 교회가 하나 되는 것을 한사코 거짓말로 막아 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오늘 우리의 교회는 이 시대 로마 가톨릭과 예전의 교회와 얼마나 다른가? 나는 오늘 우리의 교회는 철저히 유대인에 대해 무관심하고, 따라서 무지한 편이라 생각한다. ‘Gates of Eden’ 이란 웹사이트를 운영하며 “Why Jews don’t believe Jesus?” 란 글을 쓴 Daniel Botkin 은 오늘날 소위 신학 대학을 나왔다는 사람도 교회의 반유대주의, 반셈주의가 무어냐고 반문하고 있다고, 이런 유대인에 대한 무관심한 현실을 개탄하고 있다. 중세와 근대 이전의 유럽 교회가 반 유대주의를 낳은 것은 나는 일차적으로는 그 당시 교인들의 무지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그 당시의 교인들은 성경을 직접 읽을 수 있는 길이 없었고 성경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사제들에 의해 원천적으로 봉쇄되었던 것이다. 모든 성경은 라틴어로만 씌여 졌고 따라서 일반 민중은 성경을 주더라도 읽을 수 없었다. 성경은 신부, 사제들의 전유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성도들은 어떠한가? 집집마다 관주 성경, 한영 대역 성경, 개역 한글, 개역 개정 몇 권씩은 있는 형편이며 딸내미 성경책 따로, 와이프 성경책 따로, 한 집에 성경 서 너권씩은 다 가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오늘의 유대인을 성경속의 유대인과는 전혀 다른 ‘하늘에서 문득 떨어진 별종’ 쯤의 인간 부류로 생각하고 있다면 이제 이런 무관심을 버려야 할 때이다. 적어도 우리 거듭난 성도들은 각자가 자신의 성경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중세의 가톨릭 교인들과는 차원이 다른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오늘 이 시대는 우리 거듭난 성도들이 두 증인 된 유대인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이해하고, 보듬고, 싸 안고 가야 할 ‘마지막 때’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하여 우리 성도들의 밝은 행위를 보고 유대인이 예수님께로 돌아 오는 - 그런 빛과 소금의 역할을 우리 교회와 성도가 공동으로 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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