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들이 예수를 부정하는 스물여섯 가지 이유
1. 히브리 문자는 곧 숫자, 이유도 26가지
유대인들은 예수를 메시아가 아닌 한 시대의 랍비로 여기면서 예수를 믿지 못하는 26가지 이유를 내건다. 왜 하필이면 26가지일까? 도대체 26이란 숫자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26이란 숫자의 비밀을 풀려면 먼저 히브리어의 특징을 알아야 한다. 히브리어는 자음만 있는 언어이다. 숫자가 따로 존재하지 않으며 문자로 숫자를 표현한다. 이처럼 히브리어는 자음 자체가 고유의 숫자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히브리어 단어는 각 문자의 수를 더해 그 단어를 숫자로 특징짓기도 한다.
예를 들면 ‘진리’라는 히브리어 ‘에메트’는 알레프, 멤, 타브로 이뤄져 있다. 알레프는 1, 멤은 40, 타브는 400이다. 이를 모두 합하면 441이고 이 숫자를 합하며 9가 된다. 고대 근동지방에서 진리를 상징하는 숫자는 9이다. 그러면 거짓을 표현하는 숫자는 무엇일까? 거짓이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쉐케르이다. 쉰은 300, 코프는 100, 레이쉬는 200을 뜻한다. 각 글자의 고유 숫자를 모두 합하면 600이 되고 다시 모든 숫자를 합하면 6이 된다. 고대 근동지방에서 거짓을 상징하는 숫자는 6이다.
토라라는 단어를 살펴보면 타브는 400, 바브는 6, 레이쉬는 200, 헤이는 5를 나타낸다. 이 수를 모두 합하면 611이 된다. 토라 안에는 613계명이 있다. 토라라는 단어에 ‘∼안에’라는 전치사 ‘버’를 첨가하면 ‘버토라’(토라 안에)가 된다. 토라라는 단어의 고유숫자 611에 전치사의 고유 숫자 2를 더하면 613이 된다. 즉 토라에는 613계명이 있게 된다.
이런 것들이 유대인이 예수를 믿지 못하는 이유와 관련이 있을까? 물론이다. 유대인들의 설명을 들어보자. 성경에서 하나님은 많은 이름으로 등장한다. 각 이름은 하나님의 속성을 드러내고 있다. 결코 여러 하나님이 있다는 뜻이 아니다.
그 중 하쉐임(여호와)이라는 우리에게 익숙지 않은 단어가 있다. 유대인들은 여호와라는 단어를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다. 우리도 윗사람을 지칭할 때 이름이 홍길동이라면 ‘그분의 함자는 홍자 길자 동자를 씁니다’라고 한다. 이같은 맥락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어찌 함부로 부를 수 있느냐는 논리를 펼치는 것이 유대인이다.
즉 완전히 구별된 이름으로 하쉐임을 사용하고 있다. 하쉐임이 갖고 있는 단어의 고유숫자를 살펴보면 요오드는 10, 헤이는 5, 바브는 6, 헤이는 5이다. 이 숫자를 모두 합하면 26이 된다. 이 때문에 유대교 학자들은 하나님 이름의 명예를 기리며 지키기 위해, 유대인들을 기독교 선교사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지 않는 이유로 26가지를 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2. 삼위일체론 철저히 부정
유대교인들은 기독교가 유대교를 완성한 종교가 아닌 전혀 다른 종교라고 간주한다. 타낙흐(구약성경)에서는 개인 구원을 위해 다윗의 후손 메시아를 믿는 신앙을 언급한 구절이 없다고 주장한다. 즉 다윗의 후손 메시아에 대한 믿음 또는 신앙이 사후의 삶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논리다. 유대교인들은 다윗의 후손인 예수가 인류의 죄를 위해 죽고 구원할 것이라는 점, 기독교인들이 예수에게 전가하는 자신들의 죄의 문제에 대한 개념을 성경에서 찾을 수 없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죄의 근원과 죄에 대한 해결책이 다르다. 유대교의 신은 인류에게 선을 향하는 성향과 악을 향하는 성향 사이에서 선택할 자유의지를 주었다. 타낙흐의 말씀으로 악을 향하는 성향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천사는 신의 메신저로서 자유 의지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사단은 신의 대적자가 될 수 없다고 유대교는 가르친다.
유대교는 절대 유일한 신의 단일성을 믿는다. 삼위일체론은 이방 로마 황제 콘스탄틴에 의해 설립된 가톨릭 공의회에서 세워진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신에 대한 유대식 이해는 이방 황제들과 이방 교회 공의회가 아닌 시내산에서 나타난 신의 계시와 토라,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에 의해 형성된다. 이 때문에 예수를 삼위일체의 성자 하나님으로 예배한다면 그 예배는 우상 숭배를 금한 말씀을 범하는 것이다.
율법이 예수가 오기 전까지 잠깐의 가정교사였으며 이후 그로 인해 성취됐다고 주장하는 기독교의 논리는 신이 이스라엘을 선택했고 그들에게 구별된 삶, 하나님을 증거하는 삶을 위한 영원한 안내자로 주신 토라에 위배된다(신 28:46)고 유대인은 믿는다. 또 선지자들은 토라의 법들이 메시아 시대는 물론 다윗의 후손 메시아가 나타난 이후에도 계속 유효할 것이라고 선포했다는 것이다(겔 37:25).
토라는 신이 유대 민족들과 함께 영원한 언약을 체결했다고 가르친다(레 26:40∼45). 기독교인들이 예레미야 31장31∼34절에 근거, 신이 이스라엘과 언약을 끝내고 이방 기독교인들과의 새 언약으로 대체했다고 주장하는 ‘대체신학’을 반대한다. 유대교인들은 이 구절이 이스라엘의 집과 유다의 집과 연관이 있지 이방인 또는 기독교인들과 관계없다고 주장한다. 예레미야가 말한 새 언약 사건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고 유대인들은 믿는다.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예레미야의 새 언약의 수혜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유대교는 기도, 회개, 선행이 죄에 대한 신의 용서를 확보한다고 가르친다. 죄를 구속하기 위해 피를 요구하고 예수의 피가 짐승의 제사 피를 대체했다고 가르치는 기독교는 유대교 입장에서 볼 때 매우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그것은 죄사함에 대한 신의 능력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유대교는 고의적인 죄에 대한 짐승 제사(피)를 허락하지 않는다. 오로지 고의가 아닌 부지중에 지은 죄에 대해서만 허락한다. 유대교에서 희생의 피는 토라에서 구체화돼 있는 흠 없는 짐승으로부터 취해져야 한다. 사람의 피는 사용될 수 없다.
3. 하나님의 구원 계획 기독교와 이해 달라
유대교나 기독교 모두 사후 세계의 실존과 심판을 가르친다. 그러나 유대교와 기독교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대해 완전히 다르게 이해한다. 유대교는 메시아에 대한 신앙이 앞으로 오는 세상에 대한 구원과 상응한다고 믿지 않는다.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믿는 것과 구원이 연관된다고 말하거나 암시하는 하나의 구절도 구약성경에서 찾을 수 없다고 지적한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때만 구원된다고 믿는다.
유대인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토라에는 다윗의 아들 메시아에 대한 믿음이 구원을 가져온다는 어떤 개념도 없다. 토라는 말한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신 10:12∼13) 유대인에게 신은 존경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두려움의 대상인 아버지로 비유된다. 신은 사랑과 경외를 함께 요구한다는 것이다.
토라는 이스라엘의 구원은 신에 대한 사랑과 경외를 통해서, 토라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을 통해서라고 명백히 밝히고 있다. 토라는 이스라엘이 ‘생명을 선택하기를’ 권고한다. 구원을 이루는 그 외의 어떤 방법도 타낙흐에 언급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토라는 이스라엘이 구별될 것을 요구한다. 타낙흐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생명을 선택하도록’ 권면한다(신 30:15). 타낙흐의 말씀은 윤리와 거룩함이라는 두 쌍둥이 기둥으로 구성된다. 거룩함으로 세워져가는 원리로서 생명과 죽음 사이를 분리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생명과 죽음의 분리는 음식과 결혼, 그리고 시간의 법에서 드러난다.
토라의 법들은 생명과 죽음이 의미적으로 육신적으로 구별돼야 한다고 가르친다. 음식과 결혼과 시간은 사람이 사는 일반적인 삶의 영역 속에 있다. 토라는 유대인들이 육체적인 존재뿐만이 아니라 영적인 존재로서 이 세계를 보는 것을 요청한다. 구별된 사람으로 구별된 음식을 먹으며 구별된 삶을 살 것을 토라는 요구한다.
시간 자체를 신이 구별되게 했다는 관점에서 유대교인들은 안식일을 구별하고 지킨다. 그 어떤 종교나 철학도 시간을 이처럼 심오한 방식으로 보지 않는다고 유대교인들은 자랑스러워한다. 결혼도 구별된 가정을 세우는 예식이다. 신 앞에서 서약하는 것은 신의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는 가정이 되고 신을 사랑하는 자녀를 양육하는 교육장으로 가정을 세우겠다는 다짐이다.
음식과 음식을 먹는 방법 또한 구별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예를 들면 유대인들은 우유와 고기를 함께 먹지 않는다. 왜냐하면 죽은 짐승으로부터 나온 것과 살아있는 짐승으로부터 나온 것을 함께 먹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시간과 결혼 및 음식을 먹는 가운데서도 삶과 죽음을 구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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