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김요한목사

육신의 이스라엘은 어찌 되는가?

Joyfule 2024. 5. 11. 01:15

 

육신의 이스라엘은 어찌 되는가?

 

 로마서 9장은 하나님의 작정에 관한 말씀입니다.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한 그릇으로 하나는 천히 쓸 그릇으로

만드는 권한 있듯(롬9:21) 하나님께서 그 아들 독생자를 주실 자들을 작정하십니다.

귀한 그릇 천한 그릇은 금수저 흙수저 이야기가 아니라 무엇이 담기느냐는 겁니다.

그리스도가 담기면 질그릇에 보배(고후4:7)가 담겨 영광과 존귀를 담은 귀한 몸이 됩니다.

로마서 10장은 작정이 된 자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말씀이 귀로 들려 귀의 입에 있고 그 말씀을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성령과 함께 시인하므로 구원에 이르는데 주의 이름을 호소할 수 있게 됩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알면 알수록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부요함으로 수치를 당치 않는 구원을 현재적으로 받는다는

이 말씀이 귀하고도 귀하게 여겨집니다. 지난 날 예수 이름으로 나아갈 때...하고

철모르게 소리소리 외쳤던 기억을 뒤돌아보며 쓴 웃음을 짓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11장은 그 섭리의 결과를 바울이 상세하게 진술하고 있습니다.

 

Q. 육신의 이스라엘을 영영 버리신 건가요?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롬11:1)

 

A. 바울은 단호하게 아니라고 증언합니다.

이스라엘 사람 곧 아브라함의 자손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이방인의 구원을

위해 잠시 닫아 두셨지만 반드시 그 중의 남은 자들을 구원하십니다(롬11:25-26)

그리스도를 만난 바울 자신이 유대인이므로 유대인을 버리지 않을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 사람인 내가 확실한 하나님의 자녀라면 같은 한국 사람에게도 소망이 있습니다.

다 같이 하나님의 선민에 들지 못한 이방인의 처지임에도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다른 한국 사람들도 당연히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만 알면 예수가 죽으면 모든 것이 다 끝나 버립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가 십자가에 죽는다는 사실만 알뿐이므로 은 30을 챙깁니다.

어쩌면 지금도 예수의 십자가의 죽으심만 알고 그 후의 영광이 임재하지

않은 사람은 예수를 사고팔고 하는 기독교 장사를 하고 있을지 누가 압니까?

또 오순절 이전의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의 모습을 보세요. 다 부인하고 도망갑니다.

그러나 오순절 이후 그리스도와 그를 통해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놀라운 확신을 갖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작동하므로 자신을 부인하므로 자신의 소유와 목숨까지도 드리게 됩니다.

 

바울은 육신의 예수를 만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만난 다음에 예수가 하신 일로 인해 영원히

죽을 일이 없는 남편이신 그리스도와 한 몸 한 영이 된 것을 알았습니다.

육신으로 오신 예수는 그의 증거를 통해 아! 이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구나

하고 믿게 되지만 그리스도는 말씀을 듣고 구주로 모셔 만남으로 믿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자신을 믿는 자들에게 ‘그래 이제 나를 믿느냐?

곧 나를 부인하게 될 텐데, 다 나를 버리게 될 텐데 말씀하십니다.

또 심지어 자신을 믿는 자들에게 자신을 의탁하지 않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요2:23-25)

 

여러분에게 질문합니다. 그리스도를 만났는가요? 그로 인해 하나님을 만났는가요?

사실은 한국 사람인 나는 성경과 전혀 상관이 없었던 사람이 아니었든가요?

그렇다면 같은 한국사람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택함을 받은 자로서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듣기를 기다리고 있겠는가 생각을 해 보기를 바랍니다.

예수로 복음통일?  어린아이가 벌거벗고 칼을 찬 것 같은 소리 작작하세요.

오직 예수 복음이란 말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가 내 안에 오심이 복음입니다.

그래야만 의가 내 안에, 영원한 생명이 내 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내 안에 비칩니다.

교회에서 전하는 말씀 중에 예수만 있고 그리스도가 실종이 되어 구원도 나타나지

않고 알쏭달쏭한 퀴즈게임 같은 말씀을 듣다 소위 이단이라는 곳에 몰려가고 있습니다.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믿으므로 십자가의 도가 적용이 되어 나는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이라는 믿음의 정체감을 가진 자들이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겁니다.

 

Q. 하나님께서 엘리야의 고발에 대해 무슨 대답을 하셨나요?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 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고발하되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롬11:2-3)

 

A. 엘리야에게 너만 남은 것이 아니라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는 사람을

칠천이나 남겨 두었다고 대답하십니다. 7*1000이면 완전하고 충만한 수입니다.

바울은 미리 아신 자들 곧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가 이스라엘에 대해 대적하여 송사한 사실을 거론하여 설명합니다.

엘리야의 고발장을 보면 거짓선지자들만 남겨두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들을 다 죽였습니다. 그리고 제단을 헐어버리고 하나님의 선지자인

엘리야 자신을 찾아 죽이려 한다는 내용입니다. 언제나 이와 같은 현상이 나타납니다.

 

지금 이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를 전하는 주의 종들이 여론의

몰매를 맞습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장님과 싸워서 결코 이길 수 없다는 말과 같죠.

예수만 알고 그의 표적만 좇는 장님과 귀머거리 그리고 벙어리 개들을 한 번 보세요.

칠천이라면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장성한 자들이었습니다. 지금도 다다익선이 복의

전부인 양 몰고 가는 하나님의 신앙 안에 있는 우상숭배자들이 전 세계에 가득합니다.

세속의 물결에 떠내려가며 거짓말을 지어내는 거짓선지자들은 다산과 다수확의

신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며 백성들을 미혹하는 그들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거짓선지자란 의식을 스스로 갖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거짓선지자는 자신이 거짓선지자임을 꿈에도 알지 못하는데 심각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에도 엘리야와 같은 참 선지자를 칠천을 남기신 하나님이십니다.

자신 만이 진리의 지식을 가진 것처럼 생각하지 말고 또 자신 만이 어려운 길을

간다고 여기지도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비경제적이신 분이 아닙니다.

이미 온 세상에 쫙 깔아 놓으셨습니다. 여기만 나만 하면 볼 것 없이 이단입니다.

어찌 예수의 영을 자신만이 받았다는 무식으로 사람들을 모아 미혹하는가요?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시므로 그의 영으로 그리스도인이 된다(롬8:9)는

사실을 바울이 만방에 선포하였거늘 도대체 예수의 영을 무슨 재주로 바로 받나요?

예수는 그 안에 아버지 하나님이 계시고 성령으로 사역하신 분입니다.

우리는 진리의 성령으로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아버지 하나님을 부르고 있습니다.

 

Q. 남은 자들의 특징은 어떠한가요?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도다”(롬11:5)

 

A. 그때나 지금이나 은혜로 택한 자 곧 남은 자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심과 섭리 안에 있는 사람은 엘리야나 예레미야처럼 입이 근질거립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하나님의 은혜로 될 터인데 자신이 가만히 있고 싶으나

하나님의 말씀의 감격으로 그냥 있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서 의롭게 되어 성령 안에서 빛나고 높은 보좌로

향하여 주의 이름을 부르며 나아갈 수 있음을 생각만 해도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복음을 위하여 섬기는 것이 자신이 사는 길이기 때문에 살기 위해서 계속합니다.

누가 저더러 어찌 매일이다 시피 글을 쓰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제가

살기 위해서 매일 쓴다고 대답을 합니다. 그게 바로 제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안중근 의사가 일일불독서하면 구중형극이라고 말했는데 하루라도 안 쓰면

제 입의 말이 거칠어지고 마음에 혼돈과 공허가 몰려오기 때문에 살기위해 씁니다.

빵 장수는 빵을 판매하는 장사로 그 수입을 먹고 사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저도 로마서를 위시해서 세미나를 해서 복음장사를 해보려고 시도해 봤지만

하나님께서 막으셨습니다. 지금 카페에 회원이면 드래그까지 하도록 열어뒀습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드리는 것이며 이게 살아가는 힘의 원천이며 생존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의 사역자들은 자존적이며 자생적인 것처럼 보여야 합니다.

누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누가 없애 버리려고 한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