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김요한목사

주일설교-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Joyfule 2024. 5. 12. 23:12

 

주일설교-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고전16:22절)

 

성경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내레이터로 기록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서사적인 이야기 속에 내가 끼어들려면 문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양의 문이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요10:7)

그런 의미로 볼 때에 고린도교회는 아직 그 문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어디에서 어디로 옮겨 놓으셨는지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믿고 서로 받은 은사를 자랑하는 젖먹이들이 되로 말았습니다.

아직 그들에게는 사랑이 없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된 채로(고전13:1)

교회라는 간판만 걸고 그들의 이름을 위해 열심히 공적을 쌓아 올리는 중입니다.

제가 지금 누구의 말을 하고 있는지 여러분들은 짐작해 보세요.

그건 과거의 제가 그랬듯 아직도 그 자리에 머무는 동무교회들이 즐비합니다.

 

바울이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하고 막말을 쏟아 붓는 것은 만일 새 언약으로 그들 가운데 임재하고 계시는

그리스도와 그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끊임없이 오고 또 오시며 결국

오시고야 마는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도 그 신앙생활이 아무 걱정 없이

잘 되면 내 손에 장을 지지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대로 둘리가 만무입니다.

제가 요즘 은퇴한 다음에 병중에 있으면서 아침마다 설교를 하여

많은 이들을 팬덤으로 모아 아이들의 꽃동산을 이루고 있는 한 목사를

추적하며 그의 영적인 지식을 지적하면서 때로는 로마서로 때로는

요한복음으로 때로는 히브리서로 그의 시선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솔직한 제 심정은 바울과 같이 만일 그리스도를 사랑할 줄 모르면 저주를 받는다

하든지 아니 당신 지금 스코어로 당장 죽으면 불 못행이라고 말해 주고 싶습니다.

그건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아직 사망아래에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용기를 가지고 세상을 이기자고 독려를 하는

설교를 계속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아직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을

모르고 있어서 진리 안에 자유와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이 뭔지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천국이 하나 밖에 없는 나라라면 그 나라의 방송이 페이크라든가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지 못하고 광야에서 헤매는 수준이라면 진리에 의해 제재를 받아야 합니다(고전14:32)

목사의 설교가 잘 못 되었거나 고린도교회의 수준 같은 성령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떠들고 있는 것이 남의 나라 이야기와 같이 귓전으로 흘려보낼 수가 없습니다.

그건 우리의 이야기이고 수많은 영혼이 연자 맷돌을 돌리는 꼴이 되고 있으며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여 그를 따라 음부의 구덩이에 다 빠져 들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그에게 많은 질문 중에 우리가 믿는다고 하거나 사랑한다고 할 때에 그 동기가

우리에게서 출발하는가 아니면 우리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는가 하는 겁니다.

반드시 이 물음에 대한 질문을 해야만 그가 진리를 아는 사람이라고 인정이 될 겁니다.

 

성경의 약속은 우리가 하나님께 그 은혜로 말미암아 붙잡힌 것을 우리가

말씀을 듣고 알고 그 방법을 깨닫고 난 다음 그 붙잡힌 것을 붙잡는 원리입니다.

아담 안에 죄로 말미암아 죽은 자들이 하나님을 믿고 주를 사랑할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자 된 그것을 잡으려 달려가노라”(빌3:13)하고 진술합니다.

계시의 영이 없어 자신이 율법과 싸우고 있는 죄와 사망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믿고 그를 사랑해 보려고 고아와 같이 끙끙대는 사람은 주께 붙잡힌 자신을 모릅니다.

그러나 진리의 복음을 들으므로 계시의 영을 받은 사람은 자신이 이미 그리스도께

붙잡혀 십자가에서 함께 죽고 함께 다시 살아나 그 부활과 연합이 되어 주와

함께 하늘에 앉혀 있음을 보게 됩니다(엡2:6) 우리는 이를 믿는 믿음은 오직 은혜이며

하나님의 선물인 줄 알고 구원을 받았노라고 고백하고 시인하고 있는 겁니다(엡2:8)

내가 예수를 믿어 십자가에 죽고 다시 살아 하늘에 앉힌 것이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께

붙잡혀 죽고 다시 살아 그 자리에 이끌려 올라갔음을 듣고 믿어 성령의 인침을 받습니다.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에서도 우리가 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께 믿고

따라가서 붙은 것이 아니라 이미 붙여 놓으신 주의 말씀을 수용하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너희는 나의 가지가 되어라 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지라고

선포하시므로 너희는 내가 붙잡았다고 알려 주시므로 우리는 그 붙잡힌 것을 지키려고

그 안에 머물며 그 약속을 지켜 그 안에서 주의 생명을 얻고 사랑을 받게 되는 겁니다.

따라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라는 말과는 성경이 너희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는

물음과는 엄청난 간격이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인간들은 자신에게 호의적이며 유리하면 좋아하는 법인데 이를 사랑한다고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고양이가 쥐 생각하면서 사랑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그건 like일 뿐 love는 아닙니다. 주를 사랑하는 사랑은 그 사랑에 붙잡힌

것을 알고 그 사랑 안에 머무는 계명을 내가 붙잡고 지키는 겁니다(요14:21)

고린도교회는 아직 이와 같은 새 언약 곧 새 계명을 모르는 천방지축 어린이입니다.

주께 붙잡힌 사실을 모르고 또 주께서 그들 안에 임재하심(고후13:5)을 모르는 영린이입니다.

 

오늘 주일 날 교회를 가는 사람들 붙잡고 당신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느냐고 물으면 다 사랑한다고 대답할 겁니다. 특별히 설교자들에게 당신 진짜

주님을 사랑하느냐고 물으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르치며 오직 예수하면서 아멘 할 겁니다.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고 어찌 이런 고생스러운 사역을 하겠냐고 반문하겠지요.

그렇지만 과연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 붙잡혀 어디에 있다가 어디로 옮겨졌는지를

알고 있는가 그리고 그 자리로 붙잡힌 것을 붙잡으려고 나아가는 방법을 알고 있는가

또 주께서 나의 계명을 지켜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고 한 말씀을 이해하고 있는가(요15:10)

이 질문에 확실한 대답을 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체험에다가 풍월을

읊는 신학이나 신앙의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다른 이들의 책을 열심히 읽은 것뿐입니다.

따라서 베드로가 주를 사랑한다고 고백한 것이 주께서 원하시는 대답인 것처럼

주를 사랑한다던 베드로의 고백처럼 나도 주님을 사랑한다고 눈물을 찔끔하지 마세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을 통해 우리를 거듭나게 하셔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시므로 우리를 어디에다 옮겨 놓으시고 그리로 부르고

계시는지 성경을 통해 파악하세요. 섣불리 고린도교회처럼 주를 사랑합니다 하고

방방 뛰는 감성적 열광주의에 빠지지 말고 주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주님이 지금

어디에 계시며 왜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를 성전을 삼으시고 내주 역사하시며

나 여기에 있노라 하고 자신을 드러내시고 그 영광을 비추시는가를 추적하세요.

그리스도는 우리를 그와 함께 이끌고 하나님 우편에 않으신 만유의 왕이시며

또한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의 구주가 되셔서 우리를 그 사랑으로 붙잡고 계십니다.

우리 안에 임재하시고 또 주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빛으로 구원으로

생명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오시고 또 오시는(coming) 사랑의 구주이십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해 너희 속에서 생명과 사랑과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사랑하므로 그를 붙잡을 줄 모르면서 너희가 잘 되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는 막말을 그의 서신 말미에 같다 붙여 놓은 겁니다.

우리가 먼저 주를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그 사랑을

보이시고 우리는 말씀을 듣고 아! 내가 그 사랑에 완전히 당했구나 하고 녹아웃이

되어 그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므로 성령이 임재하여 하늘가는 밝은 길을 보고

바울과 같이 그리스도께 붙잡힌 그 나를 붙잡으려고 그리스도를 따라 달리는 겁니다.

그 길에서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시고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겠다(마28:18-20)고

약속하신 그 새 언약의 계명을 항상 펴보면서 오늘 날 내가 주님 안에 주님이

내 안에 계시므로 내가 주님을 사랑하여 이 계명을 지키면 주께서 내게 나타나심을

알고 시시때때로 간절히 주의 이름을 부르며 그 사랑을 고백하므로 주의 생명과

하나님의 형상의 영광이 우리의 후광이 되어가도록 주를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