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김요한목사

이방인에게 말하노라

Joyfule 2024. 5. 8. 21:52

 

 

이방인에게 말하노라(롬11:13-18)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와 그 섭리의 결과를 알아야만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세계역사를 볼 수 있는 세계관이 생깁니다.

구원에 있어서 이스라엘이라고 덤이 있지 않음 같이 이방인도 마찬가집니다.

하나님은 목사나 장로 등의 직분이나 모태신앙의 체면을 봐 주지 않으십니다.

인간들이 당을 지어 우리는 이렇게 믿겠습니다 한다고 오냐 하지 않으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영에 의해 아버지 하나님께 연결이 되었나가 관건입니다.

사람들이 교회문턱이 천국의 커트라인이나 되는 것처럼 전도의 기준을 삼습니다.

로완이라는 사람이 쓴 ‘상처입은 앎’이라는 책과 같이 어설픈 신앙지식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율법과 성전을 위탁받은 이스라엘의 넘어짐을 보면서 또 마지막 때의

교회 라오디게아의 교회의 모습을 보고는 과연 전도가 무엇인지 고민이 됩니다.

과연 자신이 진리의 성령에 의해 포도나무에 붙은 가지가 되어 있는지 체크해 보세요.

 

Q. 바울이 이방인에 말한 내용이 무엇인가요?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이는 혹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롬11:13-14)

 

A. 바울은 복음이 이방인에게 먼저 간 다음에 다시 유대인에게

돌아올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방인의 사도가 된 자신의

직분을 영광스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가르' 곧 ‘고로, 그러므로’하고 시작합니다.

복음을 가진 자들은 자신의 인생 곧 사명을 가진 직분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야 합니다.

목사가 마지못해 떠밀려서 설교를 준비하는 일은 정말 고달픈 일입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성령 없이 목회를 하는 것이 인생의 최고 고역이라는 말이 나돌 정돕니다.

로완이라는 사람이 말한 영성도 결국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이심을 믿고 그 안에서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라는 피력합니다.

그럼에도 나사렛 목수의 아들이신 예수가 십자가에 죽으신 것만 알고 죄 사함

그리고 구원을 받아 천국에 간다고 믿는 사람에게 성령이 내주 역사 하실까요?

 

사역에 있어서 직분과 구원에 대한 확신으로 다른 사람을 기분 나쁘게

만드는 것도 전도의 한 방법입니다. 이는 그를 구원하고자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제가 목회를 할 때에 말씀을 받지 않고 교회의 일이나 하면서 뱅뱅

도는 사람을 젖혀 놓고 한 동안 괄시(?)를 해서 분통을 터뜨리게 했습니다.

지금도 저는 비록 목사이지만 당신 지금 그대로 죽으면 불 못이라고 말합니다.

주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사는 재창조가 없으면 죄 가운데서 죽을 수밖에 없다(요8:24)고

말씀하시는 걸 보면 사망을 가진 자는 둘째 사망 불 못에 간다는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 밖에 모른다면 정말 상처뿐인 앎이 되겠지요. 그 자리에서 죽으면 지옥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런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는 한 동안 약을 올리기도 해야 합니다.

물론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라면 냉정이나 교만이나 거만하고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얼마나 많은 목회자들이 예수만 알므로 나이 들어 내 외상을 입고 신음을 하고 있습니까?

 

Q. 이스라엘의 버림의 이유와 받음의 조건이 무엇인가요?

 “그들이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롬11:15)

 

A. 유대인이 그리스도를 버리므로 세상에 복음이 전파되어

하나님과 화목이 됩니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는 것 곧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 그리고 내 안에 살아계심을

영접하는 것이 바로 사는 길이며 구원의 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 그와 연합이 되는 세례(침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진짜 고통과 상처만 가득한 신앙지식일 뿐인 겁니다.

그 자리는 죄의 자리이기 때문에 죽으면 불 못이기에 질병을 줘서 하나님께서

단독면담을 하도록 하셔서 평생 밀린 숙제를 병원이나 요양원에서 하게 하십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가 다시 살아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 하나님을 앙망하는

신앙의 원리는 아담 안에 죄와 사망을 가지고 태어난 모든 민족에게 동일한

구원방법입니다. 율법과 성전을 가진 유대인에게도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Q. 신앙은 왜 가지보다 뿌리가 더 중요한가요?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롬11:16)

 

A. 뿌리가 거룩하면 가지도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처음 익은 곡식 가루는 첫 열매의 가루입니다. 첫 열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는 근본에서 나온 분이기 때문에 그래서 거룩하십니다.

따라서 그 가루로 만드는 떡 덩이도 거룩합니다. 구약은 이것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죽었다가 다시 산 자로 주님을 생명의 떡으로

먹으므로 그 거룩하심에 참예하여 영광에 나아가서 끝내 사랑에 이르게 됩니다.

따라서 신앙은 믿고 앙망한다는 의미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 대속의 은총을

믿고 진리의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뿌리는 하나님이시므로 그 뿌리가 거룩하시니 그 거룩함에 연결이 된 가지도

거룩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십니다(벧전1:16)

 

Q. 접붙임이 곧 구원의 원리인가요?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A. 그렇습니다. 이방인인 우리는 그리스도 안으로 부름을 받아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생명을 얻어 그 영광에 접붙임을 받아야 구원입니다.

뿌리는 이스라엘이나 이방인이나 모든 민족 어느 누구도 같은 뿌리입니다.

그리스도를 거부하므로 꺾이어진 유대인의 자리에 이방인이 접붙임을 받았습니다.

참감람나무의 뿌리의 진액을 받아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천국잔치에 참예를 합니다.

금등대의 밑판에서 가지를 따라 올라오는 기름에 의해 불이 켜집니다.

바울은 우리의 구원을 식물의 접붙임에 비유하여 설명하는 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결국 성령의 기름 부음에 의해 그리스도와 하나로 연합이 되는 것이

바로 구원이며 하나님과 분리가 되었던 자리에서 하나님의 생명에

연결이 되어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이게 안 되면 버려진 가지가 되고 맙니다.

거기서 생명을 주시되 풍성하게 주시는 말씀이 성립이 되고 적용이 됩니다(요10:10)

 

 따라서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존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롬11:18)

이스라엘은 약속을 먼저 받은 것에 대한 선민의식이 대단했습니다.

우리가 거듭났다고 의롭게 되었다고 그 생명을 얻는 자 되었다고 그 가지들을

향해 자긍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에 의해 그의 가지로

편입이 되어 그 새 생명을 얻은 자들이기 때문에 남에게 교만할 수도 비굴할 수도

없는 존재입니다. 거저 그리스도의 의해 그리스도의 가지가 되었을 뿐입니다.

자연의 원리대로 뿌리가 가지를 보전하는 것이지 가지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가지는 가지답게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합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은 그 뿌리의 진액을 제대로 받기 위해 뿌리의 조직과 성분에

자신을 잘 맞추어 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으로 그 나무에

붙었다는 걸 확인이 되었으면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므로 그 조직과 성분에

맞추는 거룩함과 영광과 하나 됨과 온전함에 이르는 영성으로 열매를 맺도록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