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를 돌아보며 - 김의순
흔히 종교에서 육체는 유한하고, 영혼은 영원하다고 말한다. 하여 죽음은 영원한 삶의 시작이라고 하질 않는가.
그렇다면 사람은 육체인가, 영혼인가. 난 절대자의 심오한 섭리를 알 수 없다. 흔히 의학적으로 생명을 말할 때. 심장의 박동과 뇌의 가능을 말하는데, 혹시 영혼은 의학적인 용어로 쓰이는 뇌를 말함인가?
인간만이 축복으로 받았다는 뇌의 값은 얼마인가 할 때, 그 값은 지대하다.
신은 인간에게 뇌세포 하나 짐승보다 더 주시고, 많은 것을 요구하며 부리신다. 세상을 이끌도록 고용하시고 사태를 막으라 하신다. 그리고 끊임없이 노력해라, 연구해가, 적선해라, 착해라 하며 선과 악의 금을 그어 놓고, 넘으면 응징하는 벌을 마련해 놓으신다.
그리고 수시로 죄를 묻고 회개를 요구하며 질책하신다.
짐승에게는 고운 털과 가죽으로 살을 가리게 하셨으나, 사람은 벌거벗은 몸 하나 가릴 옷도 스스로 지어 입도록 하신다. 거기서 인간은 빈부의 차가 생기고 차등이 생기지만, 짐승은 자연 그대로 호사스럽고 비교 없이 평등하지 않은가.
인간은 조금만 나태하면, 헐벗고 굶주리고 자칫 죄에 빠지기 쉽다. 그리고 그 뇌가, 즉 정신이 박탈될 때는 짐승만도 못하여 움직이는 살덩어리의 고통으로 전락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은 이상에 의한 수치심과 도덕성을 함께 요구하신다.
사람이 뇌의 손상을 입든지, 활용을 게을리 했을 때는, 격이 짐승보다도 못해질 수 있다. 이는 아프리카 오지인들의 원시생활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어느 주일미사 때 주보에 '죽음체험'이란 피정이 실려 있었다. 나는 그 피정에 참석했다.
피정장에 들어서니 테이프에선 은은한 연도가 흘러나왔고, 검은 천에 흰 글씨로 쓰인 만장도 여러 폭 걸려 있었다.
그리고 제대 앞에는 검은 천으로 덮인 관이 높직이 놓여 있어서 마치 초상 때 사도예절을 연상케 했다. 300여 명의 교우들이 참석해서 입추의 여지없이 넓은 교육관이 비좁았다.
지도 신부님의 명 강의와 함께 오전 프로그램이 끝나고, 오후에는 '죽음체험' 순서가 있다고 했다. 난 극약처방을 쥐고 절망해 있을 때라서 숙연한 마음으로 임했다.
난 아까부터 자꾸만 제대 앞에 검은 천으로 덮인 관을 주시했다. 혹시 저 관 속에 한 사람씩 들어가서, 절맥 상태를 가상하고 영혼의 절규를 듣고 나오는 체험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했었다.
헌데 지도 신부님은 교우들은 모두 일어서게 하고, 눈을 감고 마음을 비우고 정신을 고요히 하고 전신의 힘을 쏙 빼라고 했다.
장내는 물밑처럼 고요한데 은은한 음악과 함께, 지도 신부님은 조용하고 낮은 음성으로, 자신의 육체를 돌아보라고 했다. 무겁고 육중한 듯, 가라않은 듯 하면서도 질책하는 듯, 타이르는 듯, 호소력이 깃든 설득력과 다시 흔들어 깨우는 듯한 절절한 말씀이 폐부로 스며들었다. 모두 살아온 여정을 돌이켜보는 반성의 절규였다.
그리고 사차원적인 영혼의 세계보다 현세에 놓인 육체의 구석구석을 훑어보라고 했다. 그 동안 육체가 내게 봉사해온 참 의미와 공로를 돌아보라고 했다.
뇌와 심장은 말할 나위 없거니와, 이목구비와 오관이며 오장육부와 사지에서 손톱 발톱이며, 작은 모세관에 이르기까지 나를 위해 공헌하지 않은 곳이 없다.
눅눅한 신발 속에 갇혀서 눈에 뜨이지도 않고, 생각에서도 멀리 있는 발까지도 눈물겹도록 고맙지 않은 부위가 없었다.
어리석고 미숙한 생각이며, 허약하고 옹졸한 마음으로 저지른 잘못으로 내 육체는, 늘 고달픈 날을 살았다.
또 내 박복한 운명을 지고 오면서 끊임없는 영육의 갈등으로 내 눈은 많은 날을 눈물에 젖게 했으니, 이 또한 육체를 혹사시킨 일부였다. 또한 삶이라는 드라마의 삽화를 그려내기 위해서, 일생동안 전신을 혹사시켜 가며 비틀거리는 영혼을 바로 세우기에 안간힘을 써오던 육체가 아니던가.
세상을 모두 헛된 것이니, 하늘의 만나를 구하라는 교회.
육신은 유한하여 무상하다고, 영생을 구하라던 교회가, 오늘 피정에선 육체를 돌아보게 했다. 영육의 가상 고별식은 숙연하고 경이로웠다.
유한하여 더 값지고 살뜰한 육체.
육신이 헛되단 말에 난 저항을 느낀다.
육신이 아니면 어느 입으로 하늘을 찬미하고 섬길 것인가.
수필가. 한국수필로 등단. 수필문학상수상. 수필집 '아직도 그곳에는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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