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색 부부(補色夫婦) - 강봄내
쪽빛 하늘에 누런 색 땅이 조화로운 아침이다.
모처럼 투피스 한 벌을 지어 입으려 감을 뜨러 나사점엘 갔다. 그 곳에는 여러 가지 옷감들이 많은데도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엔 아래 위가 같은 동색(同色) 계통으로 골라보았다. 너무 단조로워선지 산뜻한 맛이 없어 그만두었다. 다음으로 고른 게 스커트 감으로는 남색, 재킷 감으로는 노란 색으로 골라보았다. 밝고 환하다. 하지만 상의가 노란 색이면 너무나 두드러져 보일 것 같아서 그것도 그만 두었다. 아래 위 색을 맞추는 게 부부가 서로 이해하며 살아야 되는 것처럼 쉽지 않았다.
한참만에야 상의로 노란 색 바탕에 남색 무늬가 다문다문 박힌 보색(補色)으로 배색된 것으로 고를 수 있었다.
마침 잘 아는 의상실이 있어 허리는 잘록하게 쏙 들어가고, 쟈켓의 깃은 남색으로 얌전하게 아물려 예쁘게 지어 달라고 부탁했다.
우리 부부는 여러 가지로 정반대인 점이 많다. 남편은 건장하면서도 듬직한 체구이고, 나는 야위고 가냘파서 바람에도 날아갈 듯하다. ‘얼굴도 남편은 달덩이처럼 크고 둥근 반면, 나는 조그맣고 긴 편이다. 남편은 빌딩이 우뚝 솟은 도시서 자랐고, 나는 소들도 한가로운 시골서 자랐다. 성격도 남편이 불처럼 급한 반면, 나는 강물처럼 느린 면이 있다. 행동도 반대여서 남편은 여러 면으로 많이 생각하고 세심하게 재는데, 나는 이거다 싶으면 겁 없이 대들어야 속이 시원한 형이다. 취미도 달라서 남편은 스포츠나 오락이고, 나는 예술 쪽이 좋다. 이런 보색 부부(補色夫婦)인 우리를 보고 어른들은 천생배필이라 했다.
신혼 시절엔 사랑이란 안경을 쓴 때문인지, 무뚝뚝한 남편이 무게 있어 보이고 불같이 욱하는 성격이 박력 있어 보였다. 팔자걸음도 양반의 후예처럼 보이고, 담배 연기를 푸- 하고 내뿜는 것도 낭만을 아는 사람처럼 멋있어 보였다. 나도 남편이 좋은 배우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 해, 두 해 결혼생활을 하면서 느껴지는 것은 이상하게도 남편의 멋있었던 점들이 차츰 단점으로 보이는 것이다. 뚱뚱한 체구가 미련하게 보이던 담배 피우는 모습이 결단력 없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다.
남편은 나보고 순진하여 좋다더니 철없는 여자라 말하고, 낭만적이라 멋이 있다더니 눈물만 많아 이성을 찾지 못한다고 핀잔이다. 규모 있어 마음에 든다더니 느슨함이 없어 피곤하다고 불만이고, 날씬해서 좋다더니 약해서 살림에 지장이 있다고 한다.
우리 부부는 보이지 않는 의견 대립이 많았다. 톱니바퀴가 ⍌⍍의 연속으로 된 것처럼 우리도 요철로 된 부부이다. 남편의 뾰족한 성격엔 내가 부드럽고, 남편이 유한 부분엔 내가 뾰족하다. 서로의 뾰족한 성질을 받아주지 못하고 맞부딪치면 대립이 되는 것이다. 처음엔 서로지지 않으려고 닭이 싸움하듯 숙일 줄 몰랐다. 자신과 다른 점을 단점이라 했다. 한 걸음만 늦추면 톱니바퀴 돌아가듯 결혼생활도 부드러워질 것을, 모난 부분으로 맞서느라 쇠소리만 나고 힘은 배나 들었다.
천생배필이라는 남들의 말에 코웃음이 나왔고, 결혼 전 궁합이 잘 맞는다던 어른들의 말에 공감할 수 없었다. 성격 차이로 이혼하는 예가 바로 이런 경우구나 하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도 속을 모르는 남들은 우리보고 참 잘 만난 한 쌍이라 했다.
동색 부부(同色夫婦)가 부러웠다. 비슷한 모습, 비슷한 성격으로 무난하게 사는 부부들이 무척 행복해 보였다. 그들은 평생 싸움을 모를 것 같았다. 평이함 속에 정신적으로 여유 있게 살 것 같았다. 그들은 큰 복을 받은 사람들이라 여겼다.
언젠가는 남편이 내가 좋아하는 모습의 사람으로 변해주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생활했다. 또 변하도록 유도하며 일 년, 이 년 지냈다. 그러나 남편은 변하지 않았다. 변했다면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다.
세월은 쉼 없이 흘렀다. 십여 년을 사는 동안 지혜가 생긴 것일까. 자신을 볼 수 있는 혜안이 열린 것일까. 내가 남편을 보는 눈이 잘못된 것이다. 남편은 남편대로, 나는 나대로 창조주가 지어주신 모습이 있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것은 아마도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에서 터득한 것 같다.
나에게는 두 아들이 있다. 둘이는 한 뱃속 아이인데도 외모가 판이하다. 똑같은 방법으로 지도를 하는데도 성격이 다르고, 행동도 습관도 다르다. 심지어 일찍 자고 늦게 자는 것까지 따로따로 닮는 것을 보고, 타고난 품성은 창조주의 분야라는 것을 알았다.
창조주는 우리 가정에 꼭 맞는 부부를 맺어준 것이다. 똑같은 사람끼리 만나면 한곳으로 빠져서 가정의 조화를 이룰 수 없음을 안 것이다. 서로 부족한 점을 메워주라고 적당한 배필로 맺어준 것임을 이제야 깨닫는다. 천생배필이라는 어른들의 말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
친구 부부가 동색 부부라서 부러워했는데, 그들은 생활은 무난하지만 너무 밋밋하여 재미가 덜하다고 한다. 아주 다른 두 개체가 모여 가정을 이룰 때 빚어내는 조화의 멋을 모른다고 한다.
서로 부딪치며 사는 사이, 우리 부부는 생각의 폭이 넓어졌나 보다. 내가 옳은 것 같더라도 한 발 물러서며 남편을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져본다. 남편은 나의 모난 부분을 넓은 마음으로 푸근히 감싸주고 있다. 서로 다른 모양으로 태어나서 사랑하게 되었음을 알고 감사하고 있다.
의상실에서 투피스를 찾아왔다. 남편 색으로 여겼던 남색으로 만든 스커트는 허리가 꼭 맞았다. 노랑 바탕에 남색 무늬로 남편 모습이 다문다문 박혀 있는 재킷은 바느질을 꼼꼼하게 잘 했다. 특히 남색 깃으로 옷매무새를 얌전하게 아물려 준 것이 마음에 든다.
투피스를 입고 거울을 본다. 정반대의 보색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남색은 더욱 무게 있게, 노란 색은 더욱 산뜻하게 서로 상대편을 돋보여주고 있다.
오늘은 새로 맞춘 투피스를 입고 남편과 외출을 하고 싶다.
수필가. 한국수필로 등단. 한국수필작가회회원 . 작고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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