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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는 물에 새기고 - 오승희

Joyfule 2013. 12. 20. 10:14

 

 

은혜는 물에 새기고 - 오승희

 

천안 근처로 염색을 하러 갔었습니다. 염 액을 뺄 느티나무 가지를 구하려면 내를 건너가야 하는데 간밤에 내린 비에 물이 좀 불어 있었습니다.

위쪽으로 조금 올라가니 징검다리가 놓여 있었습니다. 누가 무거운 돌들을 이곳에 옮겨 놓았는지 고마운 일이네요. 징검다리가 없었으면 건너가는 것을 아예 포기했거나 건넜어도 옷이 젖어 낭패스러웠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린아이들처럼 폴짝폴짝 뛰어 건넜습니다.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지요.
이제 것 사는 동안 나는 이런 다리를 몇 번이나 건넜을까요. 그럴 때마다 나에게 징검다리를 놓아 주었던 사람들을 생각해봅니다. 빠르게 흐르는 물살처럼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주춤거리는 나를 겁내지 말고 건너보라고 손을 잡아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수는 돌에 새긴다지요. 다급할 때 요긴한 도움을 받았지만 사는 일이 급해 고마움을 그만 물에 흘려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부터라도 기억을 더듬어 챙겨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의료보험 같은 것이 생길 조짐도 없던 아주 오래전 일입니다. 임신 말기에 갑작스런 하혈로 성모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었습니다. 전치태반(태가 자궁입구를 막고 있는 경우)으로 급히 수술을 해야 하며 태아도 아직 숨을 쉬고 있으니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름도 생소한 인큐베이터는 서울 같은 대도시에도 세브란스병원과 명동성모병원, 국립의료원, 이렇게 세 곳밖에는 없다고 했습니다. 아이를 그 곳에 넣어 키우려면 족히 조그만 집 한 채 값은 든다는 것입니다.

 

그 때 우리 형편은 아직 사글세를 면치 못한 처지였습니다. 원무과 앞에서 몹시 난감 해하는 남편에게 집도를 하신 의사 선생님이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어떻게 되겠지요.” 했답니다.  아이는 두 달을 인큐베이터에 있었습니다. 원무과에서 일주일 마다 보내오는 청구서에는 소문같이 그렇게 어마어마한 금액은 아니었어요. 빚을 좀 지기는 했습니다만 아이는 무사히 퇴원을 했습니다. 퇴원인사를 하는 저희내외에게 의사선생님은 어렵게 살아난 아이니 잘 키우라고만 하셨지 별다른 말씀은 없었습니다. 한참 후에야 알았어요

 

의료보험제도가 없던 그 시절 병원 직원들이나 받는 혜택을 저희가 받을 수 있도록 의사선생님께서 주선해 주셨다는 것을.
또 있습니다. 큰아이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 대한화재장학회에서 일 년치 장학금을 주셨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고맙다는 인사를 간 저희에게 그때 회장이셨던 권사님께서 “나에게 인사 할 것 없어 다음에 딴 아이에게 갚으면 되지” 그렇게 말씀하시며 사년 치 전부를 주지 못해 미안하다 하셨어요.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은 몰라도 되지만 다른 사람들은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이 세상  인심이라는데 그분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외에도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보증을 서준 사람, 사는 일이 너무 답답해 의기소침해 있을 때 등을 두드려주던, 지금은 연락조차 끊긴 친구, 찾아보니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징검다리를 놓아 주었습니다.
나도 누구에게 징검다리가 되어준 일이 있었으면 좋으련만, 누구의 돌 같은 마음 판에 새겨져 있지나 않는지 모르겠네요.
  이 염치없는 사람이 소중한 은혜들을 물에 흘려버리고 말았으니 돌에 새겨둔 서운함도 지워버려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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