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가로막는 네 가지
-김 진홍 목사-
우리들 크리스천들에게 있어 은혜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받은 은혜를 지켜 나가는 것과 더 향상시켜 나가는 것 역시 중요하다. 실제로 많은 크리스천들이 지난날에 받았던 은혜를 계속하여 지켜 오지를 못하고 도중에 이런저런 사연으로 받은 은혜를 잊어버린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내가 만난 한 크리스천은 젊은 시절에 20일 금식기도를 수차례나 하고, 아홉 가지 은사를 골고루 체험하고, 열성을 다하여 교회를 섬기던 분인데 지금은 타락하여 술로 세월을 보내면서 교회에 아예 나가지도 않는 분이 있다.
또 어떤 크리스천은 지난 날 체험하였던 신앙 간증을 들어보면 대단한 내용인데 지금은 영적인 침체에 빠져 겉으로만 크리스천이지 살아가는 삶의 내용은 세속인처럼 행동하고 살아가고 있는 크리스천들이 있다. 카톨릭 교회에서는 그런 신도들을 냉담신도라 부르고 개신교에서는 ‘시험에 들은 교인’이라 부른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신앙생활을 침체하게 만들었을까? 받은 은혜를 잊어버리게 하는 것이 무엇이며, 받은 은혜를 지켜 나감에 방해가 되는 것들은 무엇일까? 그리고 은혜를 가로막는 것들이 무엇일까?
받은 은혜를 잊게 하고 은혜생활을 누림에 가로 막는 것들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습관적으로 혹은 지속적으로 죄를 범하는 것이다.
둘째는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이다.
셋째는 염려와 근심에 사로잡혀 있을 때이다.
넷째는 게으름에 젖어 있을 때이다.
우리들 신앙인들은 은혜를 받는 것이 먼저 중요하지만,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지켜 나가는 것 역시 중요하다. 받은 은혜를 지켜 나가지를 못하고 잊어버리게 하는 것들이 있다. 그 첫째가 죄이다.그리고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는 것이다. 지은 죄를 회개함이 없이 계속하여 범할 때 아무리 큰 은혜를 받았을지라도,그 은혜를 지켜 나가지를 못하고 타락의 길을 걷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죄를 짓지 아니하고 살아가기를 원하시지만, 그보다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더 나무라신다.
인간은 약하기에 너, 나 할 것 없이 죄를 범하게 된다. 성경이 우리들에게 거듭거듭 책망하는 것은 ‘죄를 지었더라도 왜 회개하지 않고 그 죄를 계속하여 짓고 있느냐’에 대함을 책망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한하시기에 우리가 지은 죄를 회개하고 자백하면 ‘그 죄를 기억도 하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요한일서 1장 9절)
그러나 우리는 미련하여 마음으로는 이 말씀을 믿으면서도 우리의 생활은 유혹을 극복하지를 못하고 죄 짓기를 반복한다. 그런 나날이 계속되는 동안에 우리는 한 때 받은 은혜를 쏟아버리게 된다.그래서 힘없는 크리스천이 된다. 마치 자신의 힘을 잃은 삼손과 같은 처지로 전락하게 된다.
우리들 크리스천들이 은혜를 받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받은 은혜를 지켜 나가는 것 역시 중요하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한 때 받았던 은혜를 지켜 나가지를 못하고 영적으로 침체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4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죄를 짓고는 그 죄를 회개하지 못한 체 그 죄에 머물러 있는 경우이다.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인 우리들이 애초에 죄를 짓지 않고 살기를 원하시지만 그러나 육신이 약하여 짓게 된 죄를 회개하지 못하고 계속 그 죄에 머물러 있는 것을 크게 나무라신다.
둘째는 누군가를 미워하는 미움을 품고 있을 때에 은혜생활을 지속하여 나갈 수 없게 된다. 미움이 있는 곳에는 성령께서 역사하실 수 없다.사랑이신 하나님의 영 성령은 사랑이 깃든 자리에 머무르시고 역사하시지, 미움이 있는 곳에서는 역사하실 수 없다. 그래서 미움은 은혜를 가로 막는 적이 된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에서 이르시기를 제사를 드리다가 형제를 미워하는 바가 생각나거든 먼저 가서 형제와 화해를 한 후에 제사를 드리라 이르셨다.
하나님께서는 미움을 품은체로 드리는 제사를 받으실 수 없으시다.
그러기에 미움은 우리들의 영혼을 좀 먹는 독소가 된다. 미움은 미워하는 상대를 해치기 전에 먼저 미움을 품은 자신을 해치게 한다.사랑이 있는 곳에는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미움이 있는 곳에는 사탄이 역사한다. 우리는 교회 생활하는 중에 같은 크리스천들 사이에서 듣게 된다. "ㅇㅇ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말을 듣곤 한다.그러나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70번에 7번까지도 용서하라 이르셨다. 용서할 수 없는 상대를 용서하고 미움이 사랑으로 바뀌어 질 때에 사랑의 하나님은 역사하신다.
우리들 크리스천들이 받은 은혜를 지켜 나가지 못하게 하고, 은혜생활을 누림을 가로막는 요소들이 있다. 앞에 글에서 두 가지를 적었다.
오늘은 세 번째 이유를 쓰고자 한다.
바로 염려와 근심에 사로잡혀 있을 때에 받은 은혜를 지켜 나가지 못하게 된다. 염려와 근심은 우리 영혼에 파고드는 좀 벌레와도 같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3장에서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일러 주실 때에 염려와 근심이 가지는 폐해에 대하여 일러주셨다.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가시떨기 위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마태복음 13장 3~22절)
이 말씀이 일러 주는 바와 같이 세상에 속한 이런저런 염려는 우리들의 받은 은혜가 자라지 못하고 시들게 하는 원인이 된다. 그래서 요한복음 14장에서는 염려와 믿음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하라 이르신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한복음 14장 1절)
그래서 신앙생활은 선택이다.염려와 근심을 선택할 것이나 아니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선택할 것이냐,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