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이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2장8-9절)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강조를 할 때에 많이 사용하는 성경구절입니다. 행위가 아니라 은혜라는 말이죠. 그 은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이룩하신 하나님의 구원이 우리에게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 총량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 은혜를 세 단계로 구분하면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신 것(엡2:1)과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시고 하늘에 앉힌 사실입니다(엡2:6) 엡1:20절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신 말씀을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다고 말씀합니다(엡2:1) 이 말씀을 엡2:5절에서 반복합니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무덤에서 다시 사신 것과 아담 안에 죽었던 우리 안에 다시 사신 것을 구분할 줄 알아야 진정한 복음을 깨달은 사람이 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 우편에 앉혔다는 사실도 믿어 질 겁니다. 그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의 총량을 파악하게 됩니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2:2-3) 이것이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의 삶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의 38선이 분명해야 합니다. 사망과 생명, 빛과 어둠, 마귀와 하나님, 저주와 복, 어제와 오늘, 옛적과 지금이 분명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억지 논리를 펴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부하는 자들 위에 하나님의 진노가 머물고 있습니다(롬1:18, 요3:36b)
왜요? 그곳은 사망이며 어둠이며 사단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그곳에 있는 사람들 곧 우리 밖에 있는 사람들을 자비로운 음성으로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의 구원은 자비(긍휼)에 끊임없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풍성한) 사랑으로 인함입니다(엡2:4) 그 사랑으로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셨습니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엡2:5) 이 말씀은 하루에도 수백 번씩이라도 반복할 부활신앙의 고백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를 살리신 일에 우리는 손끝도 댄 적이 없습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다음에 함께 일으키셨다는 말은 그리스도 안에 새 생명을 가진 자가 그 분과 함께 부활의 생명으로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머리가 일어나니 몸도 따라 일어나는 거죠.
그리고 난 다음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엡2:6)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늘입니다. 바울이 올라간 삼층천이죠. 바로 하나님의 보좌 앞입니다. 여기까지 우리가 한 일은 일 푼어치도 없습니다. 오로지 긍휼과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은혜가 어떤 원리로 우리의 구원이 되는 걸까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고 세례를 받으므로 주와 하나가 된 상태에서 되어 집니다(롬6:3-4) 베드로의 설교 내용과 같습니다. 회개 예수 그리스도 이름 안에서 세례(침례) 죄 사함 그리고 성령의 선물로 그리스도와 한 영 한 몸이 되는 겁니다(행2:38) 성도는 운명적으로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지면 포도나무에서 끊어진 가지처럼 됩니다(요15장) 돌감람나무 가지를 참 감람나무에 접붙이신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롬11:17) 에베소서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의 원리를 확실하게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이 감정에 치우쳐 어리광을 부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들을 귀 있는 분들은 들을 수 있기를... 하나님께서 일방적인 은혜를 베푸신 그 목적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베푸신 그 풍성한 자비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지극히 풍성한 은혜의 소식을 오고 오는 세대에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만약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 우리가 일한 것에 대한 삯이라면 그 분의 자비와 풍성한 은혜가 우리를 통해 나타나겠습니까? 구원은 우리의 행위로 획득한 것이 아니고 100%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 선물이 크면 클수록 선물을 주신 하나님을 자랑하고 높이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리심을 받고 그 분과 함께 하늘에 앉은 이 구원을 위해서 육체의 행위를 빌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털끝만큼도 육체의 수고에 빚진 것이 없습니다. 믿음이라 말함은 육체의 행위 반대의 개념으로 믿음이라고 하는 겁니다. 따라서 그 믿음 자체를 행위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그 믿음까지도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따라서 어떤 육체도 자랑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백 번씩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죄에 대해 죽고 그 의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해 살았다는 고백을 되뇌어야 합니다(롬6:11) 거기서 성령의 감동으로 주의 생명이 역사하여 독수리 같이 주를 앙망하며 올라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의 총량을 마음으로 믿고 입술로 고백하기를 쉬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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