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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땅의 역사 1.

Joyfule 2014. 3. 26. 10:09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땅의 역사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님 승천 이후 온 세상을 떠돌며 방황했습니다. 그들의 땅 또한 여러 민족들에게 유린당하며 긴 세월을 보냈습니다. 이 땅의 역사를 살펴보고, 정치 상황과 성전 문제를 통해 시대를 분별하고자 합니다.

   

AD 70년 :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

AD 66년경 유대인들은 로마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했지만 로마의 장군 타이투스(디도)는 4년간 예루살렘을 포위한 후에 70년에 도시를 함락했습니다. 예수님의 예언대로 예루살렘 성전도 이때 파괴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떠나서 가실 때에 그분의 제자들이 성전의 건물들을 보여 드리려고 그분께 나아오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아니하느냐?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서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지 아니하고 다 무너지리라, 하시니라. (마 24:1~2)

 

AD 135년 : 마지막 유대인 반란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유대교 예배 제한법을 공포하고 유대 성전이 있던 자리에 이교 사원을 세우겠다는 발표를 했을 때 시몬 바 코츠바가 이끄는 무리들의 반란이 3년간이나 이어졌습니다. 이 반란의 진압 과정에서 58만 명이 사망했고, 굶주림과 질병으로 사망한 이들까지 합치면 100만 명이 훨씬 넘는 숫자가 죽었다고 전해집니다. 살아남은 사람들도 로마 제국 전역으로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AD 135~640년 : 로마 지배 시기

이 시기에 예루살렘 폐허 위에 세워진 도시 앨리아 카피톨리나에는 유대인이 들어오면 죽인다는 로마의 칙령이 발표되었고, 그곳에 이교의 사원이 건축됩니다. 유대 지방은 이름 자체가 '시리아 팔레스티나'로 바뀌게 되는데, 이 이름에서 '팔레스타인'이라는 지명이 나왔습니다.

성경에는 출애굽기와 이사야서에 팔레스티나라는 지명이 등장하며, 요엘서에도 팔레스타인이 나옵니다. 2세기경의 기록에도 현재의 이집트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사이 연안에 정착해 유대인들에 맞서 살아가는 바닷가 주민들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지금의 팔레스타인 땅인 요르단 서안과 가자지구, 그리고 이스라엘이 독립 후 차지한 지역 모두가 역사적으로는 팔레스타인의 땅으로 그들은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 복잡하고 골치아픈 지역은 유대인들과 오랜 세월 분쟁을 겪어 왔는데, 몇몇 성서학자들의 분석대로, 여호수아가 하나님으로부터 모두 진멸할 것을 명령 받았으나 다 처리하지 못한 지역에 해당합니다.

 

AD 640~1090년 : 이슬람교 시대

640년경 이 지역은 이슬람교 세력에 의해 점령당합니다. 서방세계와 연결돼 있던 로마와는 달리 이슬람 세력은 모든 접촉을 단절했고, 모든 곳에 아랍 문화를 건설했으며 자신들의 종교를 강요했습니다. 예루살렘에는 바위 돔 사원(오마르 모스크)과 엘 아크사 사원이 들어섰습니다.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마호메트)가 승천할 때 밟고 올라섰다는 바위가 있는 예루살렘은 이슬람교의 성지 메카에 이어 두 번째로 중요 성지가 됩니다.

 

AD 1090~1291년 : 라틴 시대

이 혼란의 시기에 팔레스타인 지역은 회교도 터키인들과 십자군 원정이라는 이름으로 로마 가톨릭이 예루살렘 성지를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탈환하기 위해 싸웠습니다. 1099년, 십자군은 예루살렘을 잠시 빼앗았지만 그 후 다시 아랍에 빼앗기고 재차 공격이 반복되었습니다.

 

AD 1250~1517년 : 맘루크 시대

이 시대에는 이슬람교 맘루크 왕조를 공격하여 죽이고 내쫓은 터키인 살라딘의 후손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다스렸습니다. 팔레스타인, 이집트, 시리아에 47명의 통치자가 존재했던 혼란의 시기였습니다.

 

AD 1517~1917년 : 오토만 터키 시대

오토만 터키 제국은 지중해 동쪽 연안과 북아프리카의 많은 지역을 점령했습니다. 그들이 팔레스타인 지방을 점령한 이 시기에는 다른 민족의 침략은 거의 없었으나 국지적 전쟁은 많이 있었습니다.

1566년, 예루살렘의 현존하는 성벽이 재건되었고, 이슬람 문화는 더욱 강화됩니다. 예루살렘은 세 종교의 성지입니다. 특히 유대교는 솔로몬 성전과 스룹바벨 성전 이후 헤롯이 재건한 제3차 성전이 로마에 의해 파괴되었으므로 반드시 예루살렘에 다시 지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이 지역의 갈등은 끝까지 이어질 것입니다. 성전에 대한 설명은 따로 살펴보겠습니다.

 

AD 1800년대 후반 : 시온주의의 태동

시온은 이스라엘의 산 이름으로 헤르몬 산의 가장 높은 부분을 말합니다. 도시 이름이기도 한 시온은 예루살렘에서 가장 높은 도시로 '다윗의 도시'로도 통하는 곳이며 이스라엘의 가장 중요한 상징적인 곳입니다. 시온주의(시오니즘)란 팔레스타인 지역을 이스라엘의 땅으로 회복시키려는 운동이자 사상을 뜻합니다.

이 시기에 천년왕국을 믿는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이 거룩한 땅으로 돌아가는 일에 대한 관심을 자극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성전을 회복하고 환난을 거쳐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받아들이는 일은 성경의 수순이기 때문입니다. 서구 사회의 기독교인들의 재림에 대한 열망이 나타난 결과입니다. 이 시기에는 예언적인 문학작품들이 출현해 서양 교회들의 설교와 선교 분위기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자기 땅을 잃은 유대인들의 꿈같은 고토 회복에 자극을 주었습니다. 바론 로스차일드는 팔레스타인 농업 식민지 계획을 주창했는데 이 계획이 유대인들에게 매혹적으로 다가왔습니다.

1861년, 팔레스타인을 식민화하기 위한 모임이 런던에서 결성되었고, 독일과 프랑스에서도 같은 움직임이 있었는데,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고국 땅이 이슬람 세력이 아닌 유럽 강대국의 지배하에 들어가면 그 땅으로 이민을 간다는 생각이 퍼지게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그 땅을 자기들에게 영원히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늘 읽어온 그들은 회당에서 오랫동안 드려온 "내년에는 예루살렘에서..."라는 기도가 실현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일어난 유대인 출신 장교 알프레드 드레퓌스(A. Dreyfus) 대위가 군사적 추문 사건의 희생양이 되어 파면당하고 죄수가 되어 악마섬에 갇히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는 몇 해 후에 무죄로 누명을 벗지만, 나라 잃은 민족의 입장에서 당한 이 일로 유대인들은 어찌 보면 당연한, 독립국가 설립을 꿈꾸게 됩니다.

오스트리아의 언론인 테오도르 헤즐(T. Herzl)은 드레퓌스 사건을 1894년에 신문에 크게 다루었습니다. 또한 그는 1897년에 제1회 시온주의자 의회를 소집했습니다. 서방국가에서 온 유대인 지도자들은 이 의회에서 "시온주의는 유대 민족이 팔레스타인 법에 보장되는 조국을 만들기 위해 투쟁한다"는 요지의 결의문을 발표했습니다.

이런 움직임들의 결과로 1907~1908년에는 최초의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에 유입되었습니다. 1914년에는 9만 명이 넘는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 이주해 살게 되었고, 40여 개 이상의 농업 개척지가 설립되었습니다.

 

AD 1917년 : 밸푸어 선언

영국의 외무장관 아더 밸푸어(A. J. Balfour)는 독일과의 전쟁에 영향력 있는 유대인들의 후원을 얻기 위해 영국 내각의 승인을 받은 선언문을 발표합니다. 이스라엘의 독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이 선언은 마른 뼈들이 서로 소리를 내며 연락하는 과정과 매우 흡사하다고 하겠습니다.

세계적인 유대인 거부 바론 로스차일드(B. Rothschild) 경에게 전달하는 방식의 이 선언문에는 이스라엘 재건에 관한 결정적인 내용이 수록되었습니다.

"영국 정부는 팔레스타인에 유대 민족의 모국을 건설하는 것에 호의를 갖고 있으며 이 목표의 성취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현재 팔레스타인에 있는 비유대인 공동체의 공민권과 종교적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나, 다른 나라에서 유대인이 누리는 권리와 정치적 지위를 침해하는 일이 행해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유대인들의 이주로 황폐한 팔레스타인 땅이 비옥하게 바뀌어가자 그곳의 아랍인들은 점점 악의를 품기 시작했습니다. 1929년에는 영국인들의 지배에 대항하는 대규모 폭력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고, 이런 난동은 1936년까지 끊이지 않았습니다. 영국은 이런 환경에서 유대인들을 보호했고, 독립국가를 이룰 때쯤에는 유대인들의 자주국방력은 아랍인들의 틈바구니에서 버티기에 충분하게 되었습니다.

 

AD 1918년 : 영국의 이스라엘 점령

영국의 알렌비 장군은 영국 왕의 정부를 대표해 거룩한 땅 예루살렘으로 진군하여, 총 한 방 쏘지 않고 터키의 항복을 받아냅니다. 터키인들은 알렌비(Allenby)의 이름을 Allah-bey, 즉 '알라신의 예언자'로 보고 즉각 땅을 내주었다고도 합니다. 이후로 이스라엘 독립까지 약 30년간 영국령으로 있던 이 지역은 오늘날의 이스라엘과 요르단 서안지구(West Bank), 가자지구(Gaza Strip)를 포함하는 일대였습니다.

 

AD 1933~1945년 : 히틀러에 의한 탄압

1933년에 독일 총리가 된 나치당의 아돌프 히틀러(A. Hitler)는 유대인 포로수용소를 조직적으로 세워 유럽의 많은 유대인들을 이주시켰으며, 열등한 인종으로 취급하여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1945년까지 600만 명이나 학살했습니다.

 

이에 온 백성이 응답하여 이르되, 그의 피가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임하리이다, 하니라. (마27:25)

 

AD 1930~40년대 : 독일 패망과 아랍 국가들의 독립 러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연합군은 유대인들을 포함한 포로들을 석방합니다. 이후 유럽 이외 지역에 있던 부유한 유대인들의 도움은 흩어진 백만 명 이상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 정착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32년에 이라크가 독립했고, 1943년에 레바논이, 1944년에 시리아가 독립합니다. 1945년에는 이스라엘 재건에 강한 적개심을 품은 이집트,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사우디 아라비아, 예멘, 트랜스요르단이 아랍동맹을 맺습니다. 1946년에는 시리아와 트랜스요르단이 독립합니다. 이 시기를 전후로 1919년에 아프가니스탄이, 1922년에 이집트, 1952년에 리비아, 1956년에 수단, 1960년에 니제르와 차드 등, 1961년에 쿠웨이트, 1967년에 남 예멘이 독립하였습니다.

 

AD 1947년 : UN의 팔레스타인 분할안

UN은 평화를 위해 팔레스타인 지방을 유대인과 아랍인들의 나라로 분할할 것을 가결합니다. 예루살렘은 가톨릭과 개신교, 그리고 이슬람교에게까지 거룩한 도시로서 완전 개방하는 국제도시로 선포됩니다. 이 분할안에 유대인들도 불만이 있었으나 정치적 목적으로 찬성했고, 아랍인들은 반대했습니다. 이때 내란을 두려워한 30만 명가량의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은 집을 버리고 피난민 신세가 되어 자기 나라를 떠나 도망치는데, 국제연합이 임시 천막을 세워주었고, 그것이 이 난민들의 영구한 집이 되고 말았습니다.

 

AD 1948년 : 이스라엘 독립(5월 14일)

영국이 팔레스타인 위임 통치를 끝내자 이스라엘 정부는 정식으로 65만 이상의 이구를 지닌 이스라엘 국가를 설립합니다. 마른 뼈가 드디어 하나의 커다란 군대를 이룬 것입니다. 물론 아랍 세력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고, 아랍동맹은 이스라엘에 선전포고를 하게 됩니다. 이때 일어난 독립전쟁(제1차 중동전쟁)에서 수는 많아도 무기력한 아랍 군대들은 수천 명이 희생하면서 저항한 이스라엘에게 패하여 이스라엘은 더 많은 영토를 차지하게 됩니다. 예루살렘 서쪽 지역은 이때부터 이스라엘이 점령했고, 1950년부터 정치적 수도로 삼았습니다(행정수도는 텔아비브임).

이스라엘은 1949년에 네게브 사막을 포함한 팔레스타인 땅 2천 평방 마일을 차지하며 총 7천 평방마일의 영토로 확장합니다. 그해에 유엔군이 이스라엘의 공공질서를 확립하는 데 도움을 주도록 허용되지만 아랍인들은 유엔의 결의를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이 해에 70~80만 정도의 팔레스타인 피난민들은 인근 아랍 국가들로 이주합니다.

1948년 회복의 역사는 바빌론으로부터의 회복이 아닌 두 번째 회복, 즉 온 나라로 흩어진 민족들이 모이는 것에 관한 예언의 실현입니다.

 

그 날에 [주]께서 다시 자신의 손을 두 번째 세우사 자신의 백성 중의 남은 자들 곧 남게 될 자들을 되찾되 아시리아와 이집트와 바드로스와 구스와 엘람과 시날과 하맛과 바다의 섬들로부터 되찾으실 것이요, 또 그분께서 민족들을 위하여 기를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쫓긴 자들을 모으시며 땅의 사방에서부터 유다의 흩어진 자들을 함께 모으시리라. (사 11:11~12)

 

AD 1964년 :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설립

아랍연맹의 촉구로 피난민들에 의해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PLO(Palestine Liberation Organization)가 창설됩니다. 반(反) 이스라엘 전선인 이들의 목적은 유대인들을 그 땅에서 몰아내고 자신들만의 독립된 팔레스타인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들은 1970년까지는 요르단에, 이후로는 레바논에 근거지를 두고 팔레스타인 점령지에서 게릴라식으로 투쟁했습니다. PLO는 1974년에 이르러 국제적인 인정을 받게 됩니다. 1988년에는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선언했고, 이스라엘의 존재를 암묵적으로 인정했습니다.

91년 마드리드 평화협상과 93년 오슬로 협정에 따라 팔레스타인 건국운동이 성취되는데, 팔레스타인 정부가 들어선 후에는 오히려 PLO의 존립은 불확실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