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의 신비주의 수피즘
알 가잘리 이후 이븐 알 아라비(1165~1240년)가 더욱 정교히 다듬은 수피주의는 절정기를 맞는다. 알 안달루스의 무르시아(현제 스페인에서 태어난 스페인계 아랍인 그는 세비아에 살았으나 30세가 된 1193년 처음 스페인을 떠나 튀니지로 여행하였고 37세 되던 해 수피가 되어 동방으로 떠난 후 1202년 메카순례를 하였으며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이집트, 히자즈, 이라크, 소아시아의 여러 곳을 돌아다녔고 다마스쿠스에서 생을 마쳤다. 무히 앗 딘 무함마드 빈 알리 빈 알 아라비가 그의 이름이다. 그의 뛰어난 직관력과 사고력으로 무려 500편에 달하는 방대한 저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중에서도 수피주의의 백과사전격인 저서 메카의 열림과 지혜의 보석들은 그를 가장 위대한 수피 중의 한 사람으로 손꼽히게 하였다. 그의 사상은 수피주의 신지학을 대표한다. 그는 메카의 열림에서 모든 존재는 본질적으로 하나이며 그것은 곧 신성한 존재의 현시라는 존재의 단일성 이론을 내놓았는데 그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신은 초월적 존재이다. 하지만 모든 창조는 신의 현시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모든 사물은 신과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 이는 그가 이해한 대로의 수피주의를 체계화한 이론이다. 그는 자신의 사고가 신으로부터 온 내면의 빛이라고 생각했고 이론의 본질은 한마디로 말해 신과 인간의 결합을 믿는 것이고 신의 모든 창조물이 곧 신의 현시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물론 그것이 신과 창조물을 동일시한 것은 아니다. 실재와 속성, 다시 말해 신과 우주 사이에는 어떤 차이도 없다는 의미이다. 신이 모든 창조물을 내재하고 그것과 동일시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존재의 일원론 교리의 핵심이다.
메카에서 만난 한 페르시아 여인을 통해 깨닫게 된 사랑에 대한 찬미를 담아낸 갈망의 해석자를 보면 그의 사상의 근저에 사랑의 중심적 진리이자 우주의 역학 원리로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이러한 사랑의 포용성과 관념 때문인지 그는 다른 종교에 대해서 비교적 관대한 입장이었다. 모든 종교가 하나의 진리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다고 본 것이다. 신비주의 체험으로 종교형태는 비록 외형적으로 다를지라도 하나라는 신념을 가졌던 것이다. 특히 그는 신이 모든 피조물에 내재하고 그것과 동일시 된다고 말하였다. 그래서 그는 몇 세기에 걸쳐 무슬림과 기독교 학자들로부터 범신론자라는 비난을 받았으며 일부 무슬림 지역에서는 그를 거부하기도 하였다. 이븐 알 아라비의 철학은 실증철학의 범주를 훨씬 벗어나는 것이었다. 신께서는 그를 사랑하는 예배자들에게 가능한 한 온갖 형태의 신앙으로 스스로를 드러내 보이신다. 신께서 어떤 형태로 오더라도 수피주의 신도들의 마음은 그분이 한 분뿐이며 그리고 그분만을 사랑하는 신앙으로 모든 것늘 수용할 수 있다고 이븐 알 아라비는 가르치고 있다. 위 책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시로 그의 사상을 표현하였다.
나의 마음에는 모든 형태의 것이 가능할 수 있네.
수도자의 은신처, 우상들을 위한 신전.
양떼들을 위한 목장, 신도들의 카아바신전.
토라와 꾸란.
사랑은 내가 잡고 있는 신념이네.
그 과정이 어디로 돌려진다 해도
사랑은 여전히 나의 신념이고 믿음이네.
이븐 알 아라비는 완전한 인간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수피이다. 그는 무함마드의 인성과 속성을 이론적으로 연구해서 완전한 인간 교리를 내놓았다. 그는 무함마드를 알 인산 알 카밀 로 보았다. 그가 예언자 계급의 봉인이자 수장일 뿐만 아니라 신의 로고스 라는 것이다. 무함마드는 완전한 인간으로서 신과의 일체를 체현한 본보기였다. 신은 그를 통해 꾸란 을 계시했으며 그는 신의 형상이자 우주의 원형이 되는 하나의 소우주, 즉 완전한 인간으로 우주와 세계가 운행하는 축으로 작용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븐 알 아라비는 완전한 인간을 대우주 안에서 최고, 최선의 모든 것을 반영한 수우주로 정의한 것이다. 무함마드는 신만을 사랑했고 신에게서 사랑을 받은 완전한 인간으로 인간 존재가 진정으로 지향해야 할 전형적 인물이라고 그는 말한다.
이븐 알 아라비는 인간의 삶에는 세 가지 위대한 여정이 있다고 말하였다. 첫째는 물질세계에 태어나게 되는 신으로부터의 여정 이고 둘째는 우주적 지성과의 결합에 이르기 위해 영적 도정을 수행하는 신에게로의 여정, 그리고 세째는 신 안에 머물며 결코 끝나지 않는 신 안에서의 여정이다.
사실 그의 사상과 논리에는 스토아 철학, 신플라톤 사상, 쉬아 이스마일파의 이론, 알 할라즈의 영지주의 등 여러 이론들이 녹아 있음을 쉽게 알수 있다. 이러한 것들을 존재의 일원론 속에 간단히 담아낸 것이다. 많은 정통주의 신학자들이 그의 이론에서 표현된 신의 성욕과 인간과 신의 일치와 관련해서 이것은 분명히 유일신 사상에 위배되는 불경스런 표현이라고 분노를 터뜨렸다. 그렇지만 그는 신의 초월성을 일관되게 주장하였고 특히 그의 존재의 일원론 사상은 이슬람권 전역으로 퍼져나가면서 그는 수피주의 역사상 가장 주목받을 만한 아랍인 수피의 반열에 올랐다.
그의 가르침은 아랍에서뿐만 아니라 페르시아와 터키에서도 큰 영향을 끼쳤다. 아마도 후기 수피주의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기독교, 유대교의 신비주의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특히 그의 존재의 일원론 이론은 그 후 무슬림사회에서 샤리아를 준수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퇴색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만약 모든 사물이 곧 신이라면 지상에서 신의 계시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은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관용주의와 열린 사상은 범신론적 여지를 크게 넓혀놓았고 실제로 무슬림세계 전역에 퍼져있던 수피들이 이슬람교와 무수한 지역의 토착종교 전통들을 조화시키게 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하였다. 오늘날 많은 학자들로부터 그는 알 가잘리와 더불어 수피주의 이론의 두 대가이자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로 존경받고 있다.
이븐 알 아라비가 시를 통해 그의 사상을 전하였던 것과 같이 많은 수피 시인들이 이슬람 문화의 발전, 특히 10세기부터 시작된 페르시아 문화의 발전기 이후에 대단한 공헌을 하였다. 수피주의 생성 초기에는 물질적 소유나 세속적인 안락을 멀리하는 금욕주의를 토대로 발전하였지만 그 뒤에는 내적 생활과 명상에 기초하여 시 문학속에 표현되는 상징주의 형식을 개발시켜 나가게 된다. 따라서 후대 이슬람의 위대한 문학 유산들은 이러한 수피주의자들의 상징주의 형식의 시에서 상당한 직접적인 영감을 받는다. 동부 이란은 수피들에게 매우 관대했다. 그런 연유로 아랍어보다도 페르시아어가 문학 언어인 곳이면 어디에서나 페르시아,터키, 인도, 중앙아시아 등 수피들의 시는 무슬림들을 고무시켰다. 특히 동부 이슬람세계가 13세기에 몽골의 침략으로 황폐화되자 그 이후 페르시아어로 쓴 수피 시인들의 시는 무슬림들에게 신선한 위안과 삶의 아름다움의 비전을 제공할 수 있었다.
그 중 유명한 시인으로서는 먼저 호라산 헤라트의 압달라 안 안사리(1088년 사망)를 들수 있다. 그가 즐겨 사용했던 수피주의의 시적 상징들은 장미, 연인, 술, 황홀경, 술꾼, 신 등이었다. 다음으로는 파리드 알 딘 이따르(1230년경 사망)가 있다. 그는 1220년 동부 이란이 몽골의 침략으로 멸망할 것이라고 믿었던 호라산의 수피였다. 그는 수피 스승들의 일화와 격언을 수집했고 이븐 알 아라비와 같이 범신론적 경향을 띠었으며 한편 수피 중의 수피라고 생각하던 알 할라즈의 추모에 헌신한 시인이었다. 그는 성자 회고록을 집필하여 두 안눈을 비롯한 수피 성인들에 대한 기록을 전하였다. 그의 가장 걸출한 작품으로는 신비적 서사시인(새들의 연설)을 꼽을 수 있다.
아랍어로 신비주의 시를 쓴 가장 위대한 시인은 이븐 알 아라비의 친구이며 카이로 출신인 오마르 빈 알 파리드(1181~1235년)이다. 그는 메카와 메디나에서 15년을 보낸 후 카이로로 돌아와 성자로 받들어졌다. 그는 신에 대한 사랑을 읊은 주옥 같은 신비주의 시들을 남겼는데 그의 손자인 알리가 이를 수집하여 디완으로 발간하였다. 이븐 알 파리드는 기인 같은 삶을 살면서 당시의 군주 말리크 알 카밀의 면담도 거절하고 온갖 세속적 인연은 떨쳐버린채 오직 수피 쉐이크로서의 생을 살며 도취된 수피주의의 무아지경 속에서 신비주의 시를 썼다고 전해진다. 그는 일어났다 앉았다 하다가는 죽은 사람처럼 옆으로 누워 계속 열흘간을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말도 하지 않으면서 미동도 하지 않은채 보내곤 했다고 한다. 이븐 알 파리드는 신학자나 철학자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높은 신지학의 수준에서 사색을 하고 시를 지었다. 즉 학구적인 방법이 아니라 무아지경의 수단을 통해 시를 쓰고 신과 교통을 하였다. 산문으로는 표현하기가 적절하지 못하거나 어려운 주제들이 시로는 가능하였다. 그는 동시대 인물인 수피 성인 이븐 알 아라비처럼 범신론적 경향을 보였으며 시 작의 긍극적 목표는 당연히 신과의 합일인 파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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